[모던 경성]美 메이저리그 야구단 방한, 102년전의 아련한 추억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4. 3.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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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1922년 동아시아 투어로 방한, 용산 철도운동장서 조선팀 23대3으로 격파
15일 메이저리그 개막전 서울시리즈 경기를 위해 입국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주전선수 김하성/연합뉴스

다음주 20일~21일 미국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메이저리그 공식 경기다. 미국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전신)를 통해 야구를 선보인지 꼭 120년만이다.

박찬호, 류현진이 뛰었고 ‘괴물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나서는 LA다저스와 김하성, 다르빗슈 유가 소속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맞붙는다. 야구에 별로 관심없는 ‘냉담자’까지 들썩거릴 만하다. 1만6700석 규모 고척돔의 20일 개막전 티켓은 발매 8분만에 매진됐다. 내일과 모레 국내 팀과 네차례 시범경기를 가질 예정이라 일주일 정도는 야구가 단연 화제일 것같다. TV 중계를 통해 서울과 고척돔이 소개되고, 한국인의 일상이 세계에 전달될 것이다.

◇야구 전래 120년만의 메이저리그 공식경기

작년 7월 중순 메이저리그 사무국 공식발표가 있기 전만 해도 경기가 성사될지 반신반의했다.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이 서울에서 경기를 가진 건 뜻밖에 오래전이다. 물론 친선경기였다.

102년전인 1922년 12월8일 오후3시 용산 만철운동장에서 조선대표팀과 맞붙었다. (‘모던 경성’ 2023년 7월1일 ‘100년전 내한한 미 야구 올스타팀, 조선 軍 무참히 꺽다’참조) 아마추어 선수들로 급조한 팀이었는데, 9회 23대 3으로 참패했다. 3점이라도 얻은 게 다행이지 싶다.

투타 일류인 LA다저스 오타니 선수가 15일 메이저리그 개막전 '서울시리즈' 출전을 위해 입국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월드시리즈 제패한 뉴욕 자이언츠 에이스도

1922년 겨울 경성을 찾은 미 올스타 팀은 그해 월드시리즈를 석권한 뉴욕 자이언츠와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가 포함된 강팀이었다. 그해 10월 말 일본에 건너가 대학 팀과 17차례 경기를 치른 뒤 경기 전날인 7일밤 기차로 남대문역(옛 경성역)에 도착했다. 조선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 경기를 가졌다. 한파가 잠시 물러나 한낮 최고온도가 영상 4.4도까지 올랐다. 티켓값은 5원이 최고가였고 3원, 2원, 1원순이었다. 관객 7000명이 입장했다고 한다.

당시 기사는 이렇게 전한다. ‘개전되기 전부터 모여드는 관중은 넓고 넓은 만철운동장내에 가득하야 조선에서는 별로 보지 못하던 대성황중에 양군은 수만명 관중의 천지를 진동할 듯 열광적 환호하는 가운데 서로 자기의 위대한 포부의 기능을 뽐내게 되었는데,조선 안에 있는 미국 사람들이 고국의 동포를 응원하기 위하여 쳔리를 멀다하지 아니하고 각지에서 모여들어 수백명의 떼를 지어가지고 각기 팔뚝을 휘두르며 굉장히 환호하는 것도 일대 가관이었더라.’(‘조선일보사와 각 단체의 후원으로 壯絶快絶한 국제적 경기’, 조선일보 1922년 12월9일)

미국인 관중까지 몰려들어 일대 응원전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명예의 전당’ 오른 메이저리거 내한

올스타팀엔 뉴욕 양키스 우완투수 웨이트 호이트(Hoyt)가 포함됐다. 1922년에만 19승(12패)을 거뒀고 1923년, 1924년,1928년 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스타였다. 1922년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뉴욕 자이언츠의 1루수 조지 켈리(Kelly)는 팀의 주전 타자로 돋보이는 활약을 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투수 허브 페녹(Pennock)은 1923년 뉴욕 양키스로 옮겨 팀이 4차례 월드 시리즈를 제패하는 데 주역이 됐다. 뉴욕 자이언츠의 케이시 스텐겔(Stengel)은 그해 타율 3할6푼8리를 기록한 강타자였다. 훗날 뉴욕 양키스에서 월드시리즈를 7차례나 거머쥔 명감독이 됐다. 모두 ‘명예의 전당’에 오른 최고의 선수들이다.

1922년 12월8일 경성에서 조선대표팀과 시범경기를 가진 미국 야구 올스타팀. 동아시아 투어를 출발하기 위해 캐나다 밴쿠버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앞줄 양복입은 사람이 단장 겸 감독 허브 헌터. /위키피디아

◇'경성일보 주최 압박했으나 거부’

조선 대표팀은 박석윤(투수) 김태술(포수) 박천병(1루수) 이석찬(3루수) 안익조(중견수) 김정식(좌익수) 마춘식(중견수) 손희운(우익수) 등이었다. YMCA야구단과 각 학교 야구선수를 모아 꾸린 아마추어 연합팀이었다. 경기 주심은 올스타팀과 동행한 메이저리그 심판 모리아티(Moriarty)가 맡았고, 부심은 조선체육회 이사이자 야구인인 이원용이 나섰다.

조선일보는 이날 경기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경기 후원사였기 때문이다. 미 올스타팀 초청을 주도한 이원용(李源容·1896~1971)은 훗날 ‘당시 서울에서 발행하는 일본인 신문의 경성일보와 조선신문사에서 주최권을 상당한 조건하의 양보하라고 극심한 압력을 가하였으나 이에 나는 굴치않고 관철해 나아갔다’(‘야구반세기의 野話’, 신태양 제5권제6호, 1956년6월)고 회고했다.

1922년 12월 방한한 보스턴 레드삭스 좌완 투수 허브 페녹. 7회까지 조선팀 타선을 꽁꽁 묶는 완벽한 피칭을 선보였다. 1923년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페녹은 팀이 4차례 월드시리즈를 제패하는 데 수훈을 세웠다. /위키피디아

당시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좌완 허브 페녹(Pennock)이 투수로 나섰다. 조선팀은 메이저리거 위세에 눌려 7회까지 한점도 내지못했다. 반면 미국 팀은 1회부터 홈런을 날리면서 기선을 제압했다. ‘그들의 기술과 능력을 비교하여 차이가 있던 우리 전 조선군들은 7회까지 한 점도 얻지 못하게 되었음으로 당일의 관람자들이며 선수들은 낙망의 빛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용장맹사의 전투’, 조선일보 1922년12월10일) 조선군은 8회에 반격에 나섰다. 김정식, 마춘식이 잇달아 안타를 치고 나가면서 1점을 얻었고, 9회엔 2점을 더 얻어 23대3으로 끝났다. 1시간 50분간의 대결은 마무리됐다.

미 야구 올스타팀은 이날 저녁 8시 명월관에서 열린 환영연에 참석한 뒤, 다음날 오전10시 남대문역에서 중국 심양(당시 봉천)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만 이틀도 안되는 짧은 체류일정이었다.

미국 올스타팀의 내한 경기를 보도한 조선일보 1922년12월10일자 신문.

◇이원용의 고군 분투

메이저리그 올스타팀 내한 경기를 주도한 사람은 이원용(李源容·1896~1971)이었다. 1920년 조선체육회 설립을 주도한 이원용은 야구 선수이기도 했다. 미 올스타팀과의 경기 때 당초 주장으로 소개됐으나 시합때는 부심을 맡았다. 스포츠기자 이길룡이 ‘군(君)은 현존한 조선야구계의 대선배로 자타가 공인한다’ ‘조선의 야구사를 알아낸다면 알아낼 사람도 군(君)이오, 또 가장 오랜 문헌을 들추자고 하여도 군(君)이다’(‘운동기자열전’, 신동아 1934년3월호)라고 쓸 만큼 초창기 한국 야구계의 전설이었다.

1922년 미 프로야구 올스타팀 초청을 성사시킨 야구선수 이원용

이원용은 박석윤을 앞세워 일본 투어중인 미국 올스타팀 감독 헌터와 만나 교섭을 진행했다. 조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헌터를 졸라 승낙을 얻어낸 이원용은 “사재를 털어” 계약을 성사시켰다. 단 한번의 시합을 위해 일본서 배와 기차를 갈아타며 경성에 오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이번 ‘서울시리즈’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선택한 해외 개막전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세계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졌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김하성을 포함, 일류 선수들이 펼치는 야구 경기를 볼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참고자료

이길룡, 운동기자열전, 신동아 1934년3월호

이원용, 야구반세기의 야화, 신태양 제5권제6호, 1956년6월

홍윤표, 1922년 미국 직업야구단 최초 방한 경기 비화, 근대서지 제17호, 2018년 상반기

이종성, 이원용이 일제강점기 한국 근대 스포츠 발전에 미친 영향, 한국체육학회지 제58권제6호, 2019

대한체육회, 대한민국 체육 100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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