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훈 신부 "서예는 '신경필법'…신부들도 치유 시간 필요"[이수지의 종교in]

이수지 기자 2024. 3.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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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대성당 '갤러리 1898' 서예전
천주교 의정부교구 소속 사제 5명 참여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정성훈 파비아노 신부가 지난 13일 서울 명동대성당 지하 전시장인 '갤러리 1898'에서 뉴시스 인터뷰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서예가 정 신부를 비롯한 한만옥 토마스 신부, 남덕희 베드로 신부, 용하진 실바노 신부, 도현우 안토니오 신부 5명의 사제들은 '십자가 영성'을 주제로 지난 13일부터 합동 서예 전시회를 하고 있다. 2024.03.16.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서울 명동대성당 전시장 '갤러리 1898'에서 열린 전시회 '십자가 영성' 개막식에 참석한 서예가 정성훈 신부는 붓글씨를 쓰면서 묵상한 십자가를 이렇게 표현했다.

"신비를 받아들이고 믿는 이들에게 십자가의 삶은 하느님의 처절하리만치 깊은 사랑을 보게 해 주기에 삶의 힘이며 하느님을 알게 해 주는 지혜입니다."

'십자가 영성' 서예전을 기획한 정 신부는 사순절 동안 기도하며 깊이 생각한 십자가를 표현한 작품 7점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정 신부를 비롯해 한만옥 신부, 남덕희 신부, 용하진 신부, 도현우 신부 등 천주교 의정부교구 소속 사제 5명이 함께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을 새기는 사순시기에 묵상하며 쓴 작품 35점을 선보인다. 기념품들도 직접 쓴 작품으로 제작했다. 판매 수익금은 난민 지원 단체 '착한 사마리아의 집'에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은 한 신부를 제외하고 신부 4명은 1990년대 신학교를 같이 다니며 우정을 쌓아온 사이다.

지난 2015년 연수와 교포사목으로 중국 북경에 파견됐던 신부들은 당시 잠시 중국에 체류 중이던 서예가 이동천 선생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됐다. 신부들은 공교롭게도 평소 서예에 관심이 있거나 서예를 개인적인 취미로 갖고 있었다.

정 신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3년간 서예를 하던 담임 선생님을 만나 방과 후에 배웠던 서예가 취미가 됐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필법과 정신을 배우며 서예는 또 하나의 기도가 되고 있습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40년 넘게 각자 글씨를 써온 신부들은 이동천 선생의 지도로 온 힘을 다해 글씨를 써내려 갔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정성훈(왼쪽 두번째) 파비아노 신부가 지난 13일 서울 명동대성당 지하 전시장인 '갤러리 1898'에서 5인 합동 서예 전시 '십자가 영성' 개막식에 앞서 용하진(왼쪽부터) 실바노 신부, 한만옥 토마스 신부, 남덕희 베드로 신부와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도현우 안토니오 신부는 사역 출장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2024.03.16. pak7130@newsis.com

정 신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고통스러웠던 작업을 떠올렸다. "붓글씨를 쓰는 과정은 고도의 집중과 붓 끝에 힘을 실어야하기에 굉장히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라며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붓에 자신을 맡기고 마음을 비우는 것, 잘 쓰고자 하는 욕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우리 중 용 신부는 한 작품을 쓸 때 1시간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데, 몸무게가 1㎏이나 빠진다고 합니다. 그만큼 온 마음과 정신과 혼을 다해 글씨를 써내려 가는 것이 바로 '신경필법'이지요."

이번 전시는 시기에서 의미가 깊다. 천주교 전례시기 중 부활에 이르기 위한 고통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시기에 열리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개인 서예전을 열었던 신부 5명이 천주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함께 서예전을 기획하고 참여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서예는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인 한국을 비롯해 중국, 대만, 일본, 베트남 등에서 발달해왔고 서양종교인 천주교에서 서예가로 활동하는 사제도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신부들은 각자 오는 2025년 개인전을 열려고 1898전시관 대관을 알아보던 중 사순시기에 한 전시 일정이 갑작스런 취소되어 비게 된 것을 알게 됐다.

정 신부는 "어느 때보다 영성적으로 고양되기 좋은 시기이고, 서예를 통해 영성을 수련하고자 하는 우리의 지향과도 맞는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라며 "꼭 우리를 위해 마련된 것만 같아 뜻을 모아 함께 전시회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정성훈 파비아노 신부가 지난 13일 서울 명동대성당 지하 전시장인 '갤러리 1898'에서 뉴시스 인터뷰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서예가 정 신부를 비롯한 한만옥 토마스 신부, 남덕희 베드로 신부, 용하진 실바노 신부, 도현우 안토니오 신부 5명의 사제들은 '십자가 영성'을 주제로 지난 13일부터 합동 서예 전시회를 하고 있다. 2024.03.16. pak7130@newsis.com


오는 2025년 6월20일부터 9월1일까지 연이어 다섯 신부의 개인전도 열릴 예정이다. 정 신부는 서예를 통해 사람들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를 받길 원했다.

정 신부는 "사실 신부인 우리 역시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서예를 통해 우리는 상처 받은 감정들의 치유를 경험하고, 잡념을 벗어나는 집중을 배우며 특히 작품을 쓸 때 신앙의 큰 덕목인 비움 역시 깊이 체험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한 번씩 붓글씨를 써 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서예는 우리 모두의 DNA에 이미 녹아 있는 보편적 민족 예술성입니다. 기도에 다양한 방법이 있듯 우리 다섯 신부는 붓글씨를 기도로 승화시키고, 이를 통해 신자들에게 치유와 영적 지향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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