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서서 읽기’의 종말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서 한 동네 서점 주인이 분개해 올린 게시글을 보았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사지 않고 서서 완독(完讀)한 후, 그 사실을 책 사진 등과 함께 자랑스럽게 자기 소셜미디어에 ‘인증’하는 사람들에 대한 질책이었습니다. 서점은 도서관이 아니고 책을 사지 않고 읽기만 하면 손때 묻은 그 책은 악성 재고로 남을 것인데, 그 사실을 소셜미디어에 자랑하듯 버젓이 올리는 건 서점 주인과 출판사,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동의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는데 그 중 특히 기억에 남은 건 이런 의견입니다. “서점에서 책 구입 전 허용되는 읽기의 범위는 목차와 서문 정도다.”
오랫동안 서점은 서서 읽는 독자들에게 너그러웠습니다. 일본어에는 책을 구입하지 않고 서점서 서서 읽는 행위를 이르는 ‘다치요미(立ち読み)’라는 단어도 있을 정도이니, 주머니가 가벼워 책 살 형편이 되지 않는 이들이 서점에서 몰래 책 읽는 일은 보편적이면서 웬만하면 용인되는 행위였던 셈이지요. 제게도 서서 책을 읽고 있었더니 서점 주인 아저씨가 의자를 권하며 편하게 앉아서 보라고 하던 초등학생 때 기억이 따스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곳간이 넉넉해야 인심이 나는 법입니다.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문체부가 조사한 ‘2021년 국민 독서 실태’에 따르면 성인 연간 독서율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 47.5%로 2013년 71.4%에 비해 가파르게 하락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점 주인이 서서 읽는 독자들을 마냥 반길 수는 없겠지요. 결국 우리 시대의 ‘서서 읽기’란 일부 대형 서점에서만 허용되는 제한적 행위일 겁니다. 그리고 조만간, 사람들이 서서 읽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무(無)독서’의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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