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옆 이승만, 동대구역 박정희... '동상의 정치' 계속되는 이유는?
이념 갈등 커질 때마다 동상 논란 반복
선거 앞둔 '정치적 목적 활용' 경계론도
①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추진.
②다부동전적기념관 백선엽 장군 동상 설치 반대.
③광주 남구의 정율성 흉상 훼손 논란.
모두 작년 한 해 동안 터져 나온 논란이다. 진영에 따라 역사적 평가를 달리하는 인물의 동상을 둘러싼 신경전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논란은 올해 들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가장 최근 사례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놓고 보수·진보 진영이 벌이는 날카로운 찬반 대결이다.
전직 대통령 '공'을 기리려는 찬성 측은 "역사적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의 '과'를 더 중하게 보는 쪽은 "철 지난 구시대 유물"이라며 반대한다. 중앙·지역 정치인들 또한 이 논란에 적극 편승하고 있어, 역사적 인물을 가운데 둔 '동상 정치'는 갈수록 현실 정치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송현광장 이승만, 동대구역 박정희
먼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 서울시는 경복궁에서 멀지 않은 종로구 송현광장(구 미대사관 직원숙소) 일대에 이승만 기념관 등을 건립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가 송현광장에 시민 성금으로 건립한다는 계획을 밝혔고, 오세훈 시장도 최근 시의회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곳"이라고 답했다. 이건희 미술관 외 다른 시설은 없다는 당초 입장이 바뀐 것이다.
건립이 확정되면 기념관과 동상 등 이 전 대통령 관련 시설이 들어선다. 다만 서울시는 "기념관 입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규모, 장소, 시기, 절차 등은 기념재단과 정부 방침이 우선"이라 밝혔다. 미국 워싱턴의 주미 한국대사관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겠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박정희 동상' 건립에 진심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동대구역 광장, 주한미군 기지 캠프워커(남구 봉덕동) 헬기장 반환 부지에 조성 중인 대구도서관을 각각 '박정희 광장'과 '박정희 공원'으로 명명하고, 두 곳 모두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홍 시장은 14일 시장·구청장·군수 정책회의에서 "2·28(대구 학생의거) 자유 정신과 박정희 산업화 정신이 공존하는 사업을 본격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엇갈리는 찬반 논란
전직 대통령 동상을 올리려는 쪽에선 "업적을 제대로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말한다. 김형기 박정희 대통령 동상건립추진단장(경북대 명예교수)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산업화 밑거름인 박정희 정신을 후손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한 목적"이라며 "대구시와 별도로 성금을 모금해 대구·경북이나 광화문 광장 등에 설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시장도 광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동상과 기념관이 많은데, 대구엔 박 전 대통령 기념 시설이 없다는 점을 들어 당위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반발 여론도 만만치 않다.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15일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린 이승만 기념관 반대 집회에서, 한상권 덕성여대 명예교수는 "송현광장에 이승만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은 광주 금남로에 전두환 기념관을 세운다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제주 4·3 희생자 단체는 11일 미국 한인신문에 이승만 동상 건립 반대 전면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인물의 동상이 생기면 '이념 대결의 전장'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무시하긴 어렵다. 지난해 10월 한 50대 남성은 월북 작곡가 정율성 흉상의 목 부위를 밧줄에 묶어 트럭으로 넘어뜨려 입건됐다. 2016년에는 한 대학생이 구미 박정희 생가에 빨간 스프레이로 '독재'라 낙서했고,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의 박정희 흉상이 훼손되기도 했다.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은 반미 감정이 고조될 때마다 시위가 열리는 곳이다.
동상의 정치적 목적
동상을 세우거나 내리려는 이들의 '정치적 목적'을 의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다음 달 총선을 앞두고 지지세력 결집을 위한 '동상의 정치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동상이라는 상징물이 대중에 보이는 효과가 큰 만큼, 갈등·반대 여론을 이용해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는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공과가 있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동상 건립 자체를 무작정 반대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동상은 한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국가공동체 유지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을 본받자는 의미를 담는다"며 "세대를 넘어 살아온 시간을 공유하고 문화적 상징으로서 기념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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