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마비 부르는 엉터리 신호등...“400m 길에 7개, 얼마 못가 또 빨간불”

김보경 기자 2024. 3. 16.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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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경기도 신도시 내 한 아파트 단지 앞 도로에서 정지 신호에 차들이 멈춰 서 있다. 400m 남짓한 이 도로에는 신호등만 7대가 설치돼 있다. 짧은 구간에 신호등이 여러 개가 있다 보니, 이 일대는 수시로 차량 정체가 빚어진다. 주민들은 “출퇴근 시간엔 400m를 통과하는 데 30분 넘게 걸린다”고 불평했다. /고운호 기자

지난 13일 오후 7시 경기 파주 운정신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 앞 왕복 4차선 도로. 400m 남짓한 도로에 신호등 7대가 설치돼 있었다. 한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자 차량은 50여m를 주행하다 다음 신호등에서 멈춰 섰다. 15초가 지난 후 파란불이 켜졌다. 그사이 아파트 단지 출입구에서 나온 차가 도로로 합류하면서 약 100m 차량 정체가 벌어졌다. 주민 김종영(43)씨는 “신호등마다 파란불이 켜지는 시점이 달라서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게 일상”이라며 “출퇴근 시간에는 이 구간을 통과하는 데 30분 넘게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이지영(35)씨는 “작년부터 아이들 등굣길이 위험해지는 문제도 생겨 주민들이 꾸준히 민원을 넣고 있지만 해결되는 게 없다”고 했다.

전국 도로 곳곳에서 어긋난 신호등 체계로 인한 교통 혼잡이 일어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주민 민원의 40%가량은 교통 관련이고, 이 중 상당수가 신호등 민원이라고 한다. 매년 수천 건의 민원이 접수되는 셈이다. 신호등은 위험을 방지하고 차량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혼란 없이 설치·운용하는 게 원칙이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혼잡이 가중되는 곳이 많다. 경찰 관계자는 “특히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신도시는 사람들이 입주한 후에 도로나 신호 체계가 만들어져 어긋나는 일이 잦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무질서한 신호 체계는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14일 오전 8시 경기 용인시 동백중학교 앞 약 300m 도로엔 신호등이 세 곳에 설치돼 있었다. 이 중 하나는 파란불이 30초간 켜졌지만, 나머지 둘은 1분 30초 동안 파란불이 들어왔다. 연동되지 않는 신호등 때문에 차량이 멈추는 바람에 도로 전체가 막혔다. 이 구간에서 교통 안내 봉사 활동을 하는 박모(76)씨는 “개학한 3월부터 유독 차와 학생이 많아지면서 혼잡이 심해졌다”며 “어린이들이 건너는 횡단보도까지 신호 대기하는 차가 진입해서, 아이들이 차를 피해 길을 건너야 한다”고 했다. 아파트 경비원 이모(68)씨는 “3월 들어서면서 갑자기 길이 자주 막히길래 처음에는 사고가 난 줄 알았다”며 “하루 이틀이면 괜찮아지겠지 싶었는데 매일 이러니 아침에 교통정리를 할 때마다 힘들다”고 했다.

뜻밖의 장소에 신호등이 설치돼 혼란을 겪기도 한다. 경기 동두천시 일반산업단지 인근 왕복 4차선 도로에는 정지선 없이 놓인 신호등이 있다. 김모(21)씨는 “분기점도 사거리도 아닌 직선 도로 중간에 뜬금없이 설치된 신호등을 보고 당황했다”며 “빨간불이 켜졌는데 정지선이 없으니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몰라서 급정거하는 바람에 사고가 날 뻔했다”고 했다.

경찰은 신호등 문제를 인지해도 바로 대책을 마련하긴 어렵다고 했다. 신호등 설치·관리는 지자체가, 신호체계는 관할 경찰서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자체 관리 부서와 합동해서 최대한 문제 해결을 하려 하지만, 차량 몰림 현상까지 막긴 어렵다”고 했다. 지자체 관계자는 “민원이 제기되면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문제가 있는 곳이 통상 교통량이 많은 지역이라 변화를 느끼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유정훈 교수는 “교통량과 통행 속도를 고려해서 교통 신호 연동 체계를 시간대와 상황에 따라 달리해야 이상적이지만 예산 등 문제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부자연스러운 차량 흐름은 사고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민원이 있다면 빨리 현장 조사를 마무리해 조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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