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발레리나’ 공연, 결국 무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문화계 측근으로 꼽히는 스타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45) 볼쇼이 발레단 수석무용수의 내한 공연이 결국 취소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푸틴의 발레리나’가 서울에서 공연하는 일을 용인할 수 있느냐를 놓고 논란(본지 4일 자 A1·20면)이 있었다. 국제정치를 둘러싼 논란으로 예술 공연이 취소되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기획사 인아츠프로덕션은 15일 “관객의 안전과 아티스트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기획하여 여러 상황을 고려, 오랜 기간 준비해 왔으나, 부득이하게 (자하로바가 출연하는) ‘모댄스(Modanse)’ 2024 내한 공연을 취소하게 됐다”고 밝혔다. ‘모댄스’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인 코코 샤넬의 삶을 다룬 발레 작품.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내달 17~19일과 21일 무대에 올릴 예정이었다. 예술의전당도 이날 “기대하셨던 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며 공연 취소와 티켓 환불 공지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우크라이나 태생인 자하로바는 세계 무용의 오스카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을 두 차례 받은 세계적 스타 무용수다. 해외에서 러시아 발레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푸틴의 최측근인 발레리 게르기예프 볼쇼이 극장 총감독과 함께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찬성했고, 집권 통합러시아당 연방의원을 두 차례 지냈으며, 권력 기관인 국가문화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푸틴의 문화계 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자하로바 내한 공연이 결정된 후 공연계 안팎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길어지는 전쟁과 희생자들을 생각할 때 지금 내한 공연은 부적절하다”는 우려와 “예술은 정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는 반박이 엇갈렸다. 러시아 예술가들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던 서방에서도 미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은 “러시아 예술가들은 푸틴에게 반대하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최악의 시기일수록 러시아 최고의 발레와 연극을 보고 문학작품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이 그들과 연대하는 방법”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공연기획사는 “자하로바는 전쟁 후에도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고 했다.
기획사와 극장이 밝힌 공연 취소의 1차적 이유는 안전 문제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 관객이 많이 입장하는 극장 내부에서의 안전 문제를 고려해야 했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또 “예술의전당이 먼저 기획사 측에 공연 취소를 요청했고, 오랜 시간 긴밀한 협의 과정을 거쳐 취소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실제 해외에서는 러시아 예술가 공연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진 사례도 적지 않아, 시설물 안전 우려도 무시할 수 없었다. 기획사와 예술의전당은 15일 오전 9시 동시에 인터넷으로 공연 취소 공지를 띄웠다.
안전 문제와 별개로 비등했던 반대 여론을 공연 취소의 근본적 이유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4일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러시아의 부당한 침략을 정당화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을 경시하는 것과 같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범죄를 저지른 러시아 정권 및 그 문화계 인사들과의 문화 협력은 중단해야 한다”는 공식 입장문을 발표했다. 다른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논란이 된 뒤 공연 반대 민원이 여러건 접수됐다”고도 했다. 여기에 예술의전당은 협의 과정에서 기획사에 대관료 전액을 환불해주기로 했는데, 이 또한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결국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는 상황에서, 대관료를 회수해 손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공연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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