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27] 노마드
‘배회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노마드(nomad)’는 정한 거주지 없이 다른 땅을 찾아서 유랑하며 사는 사람들을 뜻한다.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 북서부의 사하라 사막 등지에서 거주하며, 과거에는 부족 생활을 했으나 근래에는 가족 단위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생활은 단순하다. 아침에 남편은 양 떼를 몰고 집을 나가고, 아내는 집안일을 한다. 집에 남은 아이들은 무료하다. 양의 새끼들을 보다가 지겨워지면 좀 더 멀리 나가서 여우를 잡아 데리고 논다. 크기가 작고, 귀가 큰, ‘어린 왕자’의 친구로 등장하는 바로 그 여우다. 실제로 생텍쥐페리는 사하라사막에 불시착했을 당시 여우를 관찰하고 소설 속 캐릭터로 등장시켰다.
노마드가 사랑하는 건 ‘거리’와 ‘공간’이다. 한동안 머물다가 또 다른 가고 싶은 곳으로 이동한다. 살다가 떠날 때면, 집과 물건들은 그대로 두고 간다. 그러면 뒤에 오는 노마드가 그곳에 들어와서 또 얼마간 생활하다 떠난다. 유랑하다가 길에서 다른 노마드나 외지인을 만나면 서로 소통하며 정보를 얻는다. 글을 배운 적이 없지만 소통에 문제가 없다. 오로지 만나는 사람들과 하는 대화로 언어를 배우는 기술이다. 그래서 노마드는 보통 너덧 가지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 짧은 대화와 일상의 관찰이 이들의 문학이다.
‘노마드’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클로이 자오 감독의 2020년 영화 ‘노마드랜드(Nomadland)’, 그리고 무엇보다 팬데믹 이후에 등장한 ‘디지털 노마드’의 개념으로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용어다. 노트북과 스마트폰 하나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노마드 시티’를 계획하는 도시들도 생기고 있다. 사무실의 일부 책상을 공유하는 ‘호텔링’이나 임대 공유 사무실, 일정 기간 숙소를 빌리는 ‘에어비앤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네트워크 개념이 실제로 노마드 방식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근래에는 노마드가 많이 줄었다. 건강과 자녀 교육 문제, 그리고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서 생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와 생활 방식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유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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