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TV, 거실에 둘까요 말까요... TV 없는 집이 늘고 있다
필수 가전서 탈락하나
TV 없는 집 증가
거실 제일 넓은 벽에 TV장을 붙이고, 그 위에 모셔진 TV에서 나오는 방송을 맞은편 소파에 나란히 앉은 가족이 본다.... 한국 중산층 가정의 이런 ‘국룰’ 풍경은 옛말이 될지 모른다. TV 없는 집이 늘고 있어서다.
우선 TV 판매량이 해마다 줄고 있다. TV 판매는 코로나 팬데믹 초기 잠깐 늘었다가 최근 25년 만의 최저치로 다시 돌아섰다. 지난해 KBS가 수신료와 전기료를 분리 징수하자, “우리 집엔 TV 없다”며 수신료를 면제해달라는 신청이 쇄도했다. KBS는 수신료 징수액이 2022년 6934억원에서 올해 4440억원으로 3분의 1이 날아가게 되자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일부러 TV를 두지 않는 건 10여 년 전 서울 목동·대치동 등에서 유행한 ‘학군지 인테리어’에서 시작됐다. 가족이 마주 앉아 책 읽고 공부할 수 있게, TV 대신 책장과 테이블·의자를 거실 중앙에 두는 ‘TV 없는 거실’이 경쟁적으로 유행했다.
두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마포구의 주부 차모(42)씨도 그런 경우. 그는 “‘바보 상자’ TV와 소파를 두면 거실이 좁아지고 대화도 운동도 부족해진다고 남편을 설득했다”며 “차분한 독서실 카페 같은 미니멀 인테리어의 로망을 실현 중”이라고 말했다.
더 중요한 이유는 미디어 콘텐츠 소비에서 TV의 비중이 갈수록 감소한다는 점이다. 넷플릭스·티빙 같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와 유튜브 이용이 급증하면서다. TV로도 OTT를 볼 수는 있지만, ‘핵개인 시대’의 젊은 세대는 손안의 스마트폰이나 패드로 혼자 동영상을 시청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아내·아이와 사는 기업 임원 김모(49)씨는 집에 TV가 두 대나 있는데도 퇴근 후 저녁 뉴스를 스마트폰 속 유튜브 앱에 접속해 본다. 무선 이어폰은 필수. 그는 “집 안 시끄럽게 TV 틀 필요 없이, 내용을 건너뛰며 혼자 보는 게 편하다”며 “요즘 식구들이 ‘본방 사수’하는 TV 프로그램은 두세 개뿐”이라고 말했다.
대학원생 이모씨는 “휴대폰으로 혼자 보던 드라마나 동영상을 가족이 있는 거실 TV에서 트는 건 서로에 대한 사생활 침해”라며 “독립하면 TV는 아예 안 둘 것”이라고 했다. 실제 요즘 급증하는 1인 가구는 TV를 놓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20평대 아파트 같은 좁은 공간에 휴대성 없는 TV는 거추장스럽다는 것이다. 예비 부부들도 신혼 살림에 TV를 넣을지 말지 갑론을박을 벌이기 일쑤다.
그래도 TV파는 굳건하다. 일산의 한 50대 부부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TV를 없앴다가 결국 8년 만에 다시 들였다”며 “OTT에 비싼 가입비 내고 일일이 콘텐츠 찾아보기도 귀찮다. 소파에 누워 방송국에서 틀어주는 대로 노래 프로 같은 걸 보는 게 진짜 휴식처럼 느껴지더라”고 했다. 또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 지친 이들이, 영화나 게임 즐길 때 몰입감을 높여주는 70인치 이상 초대형 TV나 빔 프로젝터를 찾는 수요는 늘고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