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영광 다 내려놓고 ‘신인 걸그룹’으로 바닥부터 기었죠”
[이혜운 기자의 살롱] 환갑의 걸그룹 ‘골든걸스’ 인순이·박미경·신효범·이은미
“나를 막는 껍질을 깬 한국의 거장. 네 명의 디바는 다 이뤄낸 순간 잃을 게 없는 것처럼 새롭게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일본 마이니치 신문 1면에 익숙한 얼굴이 실렸다. 인순이(67)·박미경(59)·신효범(58)·이은미(58). 평균 나이 60.5세, 무대 경력은 모두 155년에 달하는 보컬계의 신(神)이 모여 4인조 신인 걸그룹 ‘골든걸스‘로 데뷔한 것이다.
원더걸스·트와이스 등을 만든 프로듀서 박진영의 기획으로 이들은 6개월간 합숙 훈련을 하며 매일 10시간씩 춤과 노래를 연습했다. 그리고 지난달 4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콘서트.
“안 해본 도전은 다 실패야/ 망설인 기회는 다 낭비야~”(데뷔곡 ‘원 라스트 타임’).
그들의 완벽한 춤과 노래에 다양한 연령의 팬 4500명이 열광했다. 10대 손자뻘 관객을 본 인순이가 농담을 던진다. “할매들 춤 잘 추지?”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디바들’, 각각의 히트곡만으로도 왕년의 팬을 모으는 이들은 왜 걸그룹으로 뭉친 것일까. 구태여 K팝풍의 춤과 발성법을 도입한 까닭은 무엇일까. 전국 12개 도시에서 순회공연 중인 이들을 지난달 27일 만났다.
◇”나를 감싼 껍질, 깨고 싶었다.”
시작은 박진영과 박미경의 식사 자리였다. 같은 소속사에서 한 그룹으로 데뷔할 뻔했을 만큼 친했다.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박미경이 1970년대 조지 벤슨의 노래 ‘디스 메스큐레이드’를 부르는 것을 보고 박진영은 ‘파워풀 한 목소리 넷으로 모인 걸그룹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박진영의 제안에 네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반문했다. “미쳤어?”
-환갑에 걸그룹 도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박미경(이하 박) :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슬럼프를 심하게 겪었어요. 제가 6살 때부터 음악 학원에 보내며 가수의 길로 인도한 분이에요. 어머니를 잃자 세상을 잃은 것 같았죠. 그때 갱년기도 오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무대도 사라졌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요. 그 모습을 본 진영이가 혼내며 말하더라고요. ‘누나, 계속 그렇게 살 거야? 어머니가 보면 어떨 것 같아? 박미경 목소리 이대로 끝내?’ 그 말을 듣는 순간 한 방 맞은 것 같았어요. 오기도 생기고, 다시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 들고.”
신효범(이하 신) : “몇 년 전에 폐렴과 갱년기가 같이 오면서 많이 아팠어요. 제 삶은 폐렴 전과 후로 나뉩니다. 젊었을 때는 운동을 잘하고 좋아하는 액티브한 삶이었어요. 노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게 탈이 나요. 그때 저는 음악과 별거 상태였어요. 한동안 유기견·유기묘를 돌보며 전원생활에 몰두했지요. 음악 산업에 대한 상처도 컸어요. 가수를 포기한 적은 없지만, 불러주는 무대가 없었죠. 순수한 재미를 느끼며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제안을 받았어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죠.”
이은미(이하 이) : “음악의 한계가 없다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하는 음악들이 다 비슷해진 것 같았어요. ‘이 껍질을 내가 깰 순 없다. 다른 동료 가수들, 그리고 박진영의 프로듀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인순이(이하 인) : “하기 전까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매일 8시간씩 36일 걷고 와서 몸이 회복되기 전이었어요. 승낙한 이유는 ‘새롭겠다’예요. 일단 한 발을 떼야 우리가 목표한 곳에 갈 수 있잖아요.”
-반응이 안 좋아 명성에 흠집이 날 수도 있다는 불안은 없었나요?
신 : “방송 하나 흥하고 망하는 게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 네 사람으로 실패할 수 없다’고도 생각했고요. 이들의 기본기와 근성을 알거든요. 망하도록 내버려둘 사람들이 아니에요.”
박 : “혼자 하는거였으면 안 했을 거예요. 같이하니까 하겠다고 했어요. ‘잘됐다. 내가 묻어서 갈 수 있겠다’.”
이 : “저도 우리가 함께한다는 걸 포기하기 어려웠어요. 네 사람의 목소리가 합쳐지는 건, 즐거운 자극이 될 수 있겠구나.”
인 : “‘이 프로젝트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그렇게 먼 생각을 하고 시작하진 않았어요. 넷이 만나 색다른 일을 하니까 재미있을 것 같았죠.”
◇디바에서 걸그룹으로
‘골든걸스’는 합숙에 들어갔다. 가족을 제외하고는 누군가와 살아본 적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을 먹고 자며 날마다 10시간씩 춤과 노래를 연습했다. 10대들도 힘들다며 못 견디고 떠나는 지옥 훈련과 같았다.
-갈등은 없었나요?
신 : “처음 제작진과 회의할 때 말했어요. ‘우리가 30대였다면 불가능할 텐데, 50대라 가능하다.’ 배려와 포용을 깨우친 나이니까요.”
박 : “효범이는 서로 오해가 생길 법한 상황에서 중간자 역할을 자처해요. 은미는 장군처럼 ‘얘들아 가자!’ 하는 추진력이 있고요. 인순이 언니는 너무 너그러워요. 선배로서 일침을 가하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늘 말을 아끼고 저희가 까불어도 귀엽게 봐주죠. 저는 6남매 중 맏딸이라 ‘이래도 좋고, 저래도 괜찮아’라는 성격이고요.”
합숙 기간 그들은 뉴진스의 ‘하입보이’, 아이브의 ‘아이엠’ 등의 춤과 노래를 연습했다. 가수로는 까마득한 후배인 미쓰에이의 멤버 페이 앞에서 심사를 받기도 했다.
-춤출 때 구멍인 사람이라면?
박 : “넷이서 처음 연습한 곡이 미쓰에이의 ‘굿바이 베이비’예요.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하는 동작이죠. 연속으로 30번인가 연습하는데, 물도 안 마시고, 쉬지도 않았어요. 날씨가 더웠을 때라 끝나고 수건을 짜는데, 좀 과장하면 물이 철철 흐르는 거예요. 누구도 군소리를 하지 않았어요. 그때 느꼈죠. 이 사람들 진짜 프로다. 책임감으로 끝까지 하는구나.”
이 : “제 개인 연습량이 10이라면, 네 사람이 같이 맞춰보는 것까지 40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저는 평생 솔리스트였기 때문에, 누구와 맞춘다는 게 익숙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조율을 못 해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깎아먹으면 안 되잖아요. 민폐 안 끼치려고 했죠. 팀에 잘 녹아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어요.”
인 : “걸그룹 ‘희자매’로 데뷔했지만, 동선을 바꾸며 노래 부르는 게 어려웠어요. 자꾸 부딪히기도 하고.(웃음)”
◇동생이자 프로듀서 ‘박진영’
그들의 연차라면 곡을 녹음할 때 따로 디렉션(방향 제시)이 필요하지 않다. 수십 년을 밥 먹고 노래만 한 사람들이다. 완벽에 닿는 순간, 본인들이 안다. 그러나 그들은 평균 열 살 어린 프로듀서 박진영에게 창법까지 지적받았다. “성량이 너무 커요! 소리를 앞쪽에서 내야 해요!”
그 말을 들은 인순이의 반응은 “오케이. 해볼게”였다. 신효범도 답한다. “처음이라 그래, 연습하면 나아질 거야.”
-네 분 다 박진영과는 오랜 누나 동생 사이지요.
박 : “진영이가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어요. 저는 여섯 살 많은 같은 소속사 가수였죠. 진영이는 진짜 해맑고 하고 싶은 게 많던 아이였어요. 무슨 이야기만 하면 항상 입이 딱 벌어져요. 명랑하고, 쾌활하고, 아는 게 정말 많은 친구였죠. 뽐내는 것도 좋아하고. 엄청 긍정적이에요. ‘얜 나중에 뭐가 돼도 되겠다’ 싶었죠.”
-프로듀서로는 어땠나요?
박 : “세계 1위로 까탈스러웠어요. 저희를 본인 회사 연습생 취급하며 훈련시켰죠. 하하하. 30여 년간 남매처럼 지내왔지만, 앨범 작업을 한 건 처음이에요. 프로듀서로 만나니 왜 진영이가 이 산업에서 최고가 됐는지 알 수 있었어요. 밀당을 너무 잘해요. 미션(임무)을 던지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걸 끄집어내요. 나중에 녹음한 걸 들어보면 ‘아, 이 사운드를 내기 위해 그랬구나’ 깨닫게 돼요.”
인 : “가수는 디렉팅대로 가는 거예요. 진영이는 제게 ‘리듬 타는 것과 성량을 줄이라’고 해요. 맞는 말이긴 한데 가끔 화가 났어요.(웃음) 그렇다고 제가 잘못한 건 아니에요. 시대가 다른 거죠. 과거엔 입을 크게 열어 내지르는 창법이었지만, 지금은 입을 작게 열어 속삭이는 창법이에요. 제 시대에는 표정을 풍부하게 노래하라고 했지만, 지금은 표정을 내놓지 않는 것이 세련됐다고 말하죠. 오래 노래하고 싶으면 계속 공부해야 합니다. 후배가 쓴소리를 할 때 받을 줄도 알아야 하고요. 기분은 나쁘겠죠. ‘40년 넘게 노래했는데 감히 날 가르치려 해?’ 이런 마인드로는 발전할 수 없어요.”
신 : “욕 나올 뻔했어요. 저를 이렇게 굴려보고 저렇게 굴려봐요. 원하는 기준을 집요하게 제시해요. ‘덕수궁 돌담길 아래 낙엽 떨어져 굴러가는 소리로 해줘’라고 해요. 욱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기분 나쁘진 않았어요. 우리를 위하는 마음을 아니까 모든 게 ‘오케이’ 되더라고요.”
이 : “본인이 꿈꾸는 소리가 있어요. 눈을 감고 디렉팅을 해요. 자기가 노래 부르는 것처럼 막 이래요. ‘아, 저 친구가 원하는 소리를 최대한 맞춰봐야겠다’. 저는 대중음악가예요. 대중의 선택에 따라 가는 거죠.”
◇경험하고 이해했다, 아이돌의 삶
걸그룹으로 다시 데뷔한 그들은 40여 년 전 첫 데뷔 때 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선배(라지만 까마득한 후배) 앞에서 “안녕하세요! 골든 걸스입니다”라며 아이돌 인사를 하고, 챌린지(댄스 숏폼 영상)도 찍었다. 방송 녹화 전 출근길 촬영, 출국 전 공항 패션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 12월에는 일본 사이타마현 베루나돔에서 열린 뮤직뱅크 무대에도 함께 올랐다.
-K아이돌의 세계, 어땠나요?
박 : “생사를 오가는 현장이더라고요. 우리 때도 바빴지만 이렇게 타이트 하진 않았는데. 새벽부터 밤까지 대기하고, 멤버가 많은 그룹은 바닥에서 쪽잠을 자는 걸 보니 안타까웠어요.”
신 : “누가 더 힘든지 비교하는 건 의미 없어요. 누구나 고충은 있으니까. 우리 때도 힘들었어요. 흔히 ‘착취의 시대’라고 불렀으니깐. 그런데 그들의 일정을 체험해보니 ‘이런 고민을 하고, 이런 마음가짐과 자세로 생활했겠구나’ 느끼게 돼요. 다름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됐죠.”
이 : “‘K팝을 움직이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는구나’를 알게 됐어요. 일본 관객들을 통해 K팝의 위상을 알게 되니, 음악가로서 자존감도 높아지는 기분이었고요.”
-K아이돌 체험 중 가장 힘든 것이라면.
이 : “손하트요. 하트 한 손이 안 올라가더라고요.”(웃음)
-도전으로 가져온 삶의 변화가 있다면요?
신 :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매일 춤 연습을 하다 보니 관절과 근육, 체력이 회복됐어요. ‘도전에 적당한 때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도 너무 좋아요.”
이 : “반대로 저처럼 너무 무리하면 무릎이 안 좋아질 수도 있어요.(웃음) 저는 몸을 아름답게 쓴다는 것이 어떤 건지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춤을 배우면서 느꼈어요. 그래서 안무 선생인 모니카에게 따로 ‘골든걸스가 끝나도 계속 춤을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지금도 잘하지는 못하지만, 이걸 무대 위에서 잘 활용한다면 큰 즐거움이겠다 싶어요.”
인 : “방송을 20대 딸과 엄마가 같이 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희를 보며 딸들이 ‘엄마도 운동해’라고 했대요. 젊은 친구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도 행복하고 들뜨는 일이에요. 제 또래분들이 방송을 보고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나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말도 기분 좋았고요.”
박 : “다시 무대에서 누군가에게 희망이나 좋은 에너지를 줄 자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제가 힘을 받고, 다시 줄 수 있게 된 거예요. 저 진짜 건강해졌어요.”
◇자기 관리와 과거 이야기
예능은 예능일 뿐, 이들은 국내 최고의 디바다. 인순이의 ‘밤이면 밤마다’,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 신효범의 ‘난 널 사랑해’,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를 들으며 느꼈다. 전성기와 다름없는 고음, 풍부한 감정 표현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콘서트에서 부른 히트곡은 전성기 때보다 더 좋았어요.
신 : “살다 보면 시간이 축적되잖아요. 경험도 많아지고. 그런 것들이 노래에 더 깊게 묻어 나와서 그런 거 아닐까요? 어렸을 때는 그냥 까랑까랑하게 그 음을 잘 내면 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면, 지금은 감정을 담으려고 더 노력하고 있어요.”
-가수의 자질은 재능인가요, 노력인가요?
신 : “이 발성을 갖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보컬 학원도 없던 시절 LP판이 선생님이었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들으며 발성을 연습했고요.”
인 : “저도 뭘 배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이에요. 노력이 80% 이상이죠. 전 언제나 믿어요. 준비와 운이 만나야 빅뱅을 일으킨다는 걸.”
이 : “지금의 소리를 갖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어요. 창법을 만들기 위해 8년 정도 몰입했고, 성대에 상처가 나기도 했어요. 그래도 전 재능이 한 80%를 차지하는 것 같아요. 음악적 표현력뿐만 아니라 무대 장악력, 그걸 즐기는 자세 등이 다 포함돼 있어요. 학생들과 만나면 그런 얘기를 해요. ‘이 세상에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나같이 하는 사람은 없다’ 생각하고 무대에 오르라고. 자신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거든요. 그러려면 무대를 즐겨야 하는데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무대에서의 나와 일상에서의 나는 어떻게 구분하나요?
인 : “집에는 제가 노래하는 사진이 한 장도 없어요. 무대를 끝내고 귀가하면 그냥 세인이의 엄마, 아내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에요. 두 가지를 완전히 분리하려고 해요. 무대는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관객을 위해 존재해요.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 위로와 기쁨도 전할 수 없죠.”
이 : “분리하고 싶지만,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 자신에게 물어봐요. ‘너는 뭘 하고 싶니? 네 만족감은 어디서 오는 거니?’ 인간 이은미와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거죠. 가수들이 무대에서 받는 환호와 위로는 어마어마한 중독성이 있어요. 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공허함을 견디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일과 나 사이의 간격을 지키려고 해요. 조금은 내버려두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이 가장 걱정되는 건 실패할 때 타인의 시선인 것 같은데.
신 : “남들 눈을 왜 신경 써요? 일단 해봐야죠. 옛날처럼 뭐 하나 실패했다고 무너지지 않잖아요. 시도 자체도 존중해주는 시대죠. 제가 예능 ‘불타는 청춘’에 출연했을 때 정말 욕을 많이 먹었어요. 그런데 악플을 보며 생각했어요. ‘귀엽다. 네가 나에 대해 얼만큼 아니?’ 왜 남이 나를 판단하게 만들어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면 돼요. 왜 벌써 ‘망할까 봐’ 두려워해요? 저도 겁은 나요. 그런데 용기가 있었죠. 무언가 시도하는 용기가 아닌, 주저앉아도 괜찮을 용기. 남들이 나를 주저앉히면, 잠깐 앉아도 돼요. 그 김에 쉬다 가죠 뭐.”
인 : “삶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해요. ‘제2의 도약’이라는 표현도 싫어요. 전 언제나 도약하고 있거든요. 남들이 볼 때 좌절의 시기조차, 제게는 양분이에요. 잠시 좌절했다고 사람이 갑자기 누추해지는 게 아니거든요.”
두 시간의 인터뷰는 인생 상담으로 바뀌었다. 삶에서 수많은 빛과 어둠이 존재했을 그들은 “그 모든 순간조차 흘러가는 것, 지나고 나면 모두 반짝이는 인생”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도전을 보며 껍질을 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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