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차르’가 된 푸틴과 잘 지내자는 사람들
언제까지 대러 관계에 목매나
자유진영 붕괴 꿈꾸는 푸틴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맞설 때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10만여 명의 시위대가 2011년 집결했다. 이들은 법을 바꿔 대통령에 재출마하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당시 총리)과 앞서 자행된 부정 총선에 항의했다. 크렘린궁 앞에서 “푸틴은 도둑놈이다” 같은 구호를 외쳤다. 지금의 러시아라면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당시 푸틴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던 젊은이가 최근 의문사한 알렉세이 나발니다.
푸틴은 반정부 시위를 미국이 부추겼다고 몰아갔고 이듬해 결국 재선됐다. 그 후 러시아의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보는 대로다. 15~17일 치러지는 푸틴의 다섯 번째 대선엔 경쟁자가 없다. 감옥에 갇혔던 나발니는 약 한 달 전 갑자기 죽었다. 얼마 전 열린 그의 장례식 때 모스크바 거리엔 많은 추모객이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이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공포가 저항심을 압도한, 스산한 풍경이었다.
푸틴은 선거도 하기 전인 지난 13일에 국영 매체와 긴 인터뷰를 통해 당선자처럼 다음 임기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 핵 위협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의 핵무기 시스템은 그 어느 나라보다 현대적이다.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땅따먹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공산주의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는 자유주의라는 개념 자체를 혐오한다. 유럽과 미국을 이기고 옛 영광을 되찾길 꿈꾼다. 푸틴의 정신 세계가 가장 잘 드러난 자료로는 2007년 뮌헨안보회의 연설이 꼽힌다. 그는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냉전 후 세계에 치를 떨면서 여러 차례 소리를 친다. “미국은 모든 영역에서 선을 넘고 있습니다. 누가, 도대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본 북유럽 국가들은 서둘러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방패’ 아래로 들어가고 있다. 푸틴은 아마 나토를 부수고 싶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나토 회원국인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등 국경 너머 소국(小國)에 탱크 몇 대만 밀고 들어가면 된다. 나토의 강력한 힘은 ‘한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은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조약 5조’에서 나온다. 바다 건너 작은 나라를 위해 미국이 핵전쟁을 불사할까. 요즘 우크라이나에선 “탈린(에스토니아 수도)을 위해 미국이 뉴욕을 핵 위험에 내몰까”란 말이 유행이라 한다. 미국이 주저하는 순간 나토는 무력화될 것이다.
한국은 어느새 러시아의 손아귀가 가장 가까이 닥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푸틴은 북한으로부터 우크라이나전에 쓸 포탄을 받고 북한에 무기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북·러가 대놓고 밀착하는데도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보내는 나라의 ‘빈 창고’를 채워주는 우회적 방법으로만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다. 대러 관계와 국익에 대한 고려 때문이라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한국의 방식을 ‘수줍게’라고 표현했다.
무늬뿐인 대선 후 출범할 푸틴 5기는 러시아가 ‘차르의 권위주의’로 폭주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푸틴은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의 생명을 가볍게 소모하는 권위주의 독재자의 특질을 답습하며 종신 집권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도 한국이 러시아와 잘 지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학자인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는 러시아의 확장을 경고한 2018년의 책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에서 ‘자본주의는 불변이고 민주주의는 필연이라는 가정’을 경계한다고 썼다. 자유 진영의 승리가 자동으로 보장되지 않으므로 더 강하게 결집해 권위주의에 맞설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북한을 경제·문화·사회적으로 압도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우월함을 증명한 국가다. 사력을 다해 러시아와 맞서는 우크라이나를 더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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