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45] 지금 여기에 머무르기
오래전 노트를 보며, 서른 몇 살의 나는 가지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게 참 많았구나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정작 의아한 건 리스트 대부분을 이뤘는데도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나 자신이었다. 가지고 싶던 건조기, 식기세척기를 사도 시간이 부족한 이유는 뭘까. 효율성을 강조할수록 청결 기준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서른 살에 산 쏘나타가 쉰 살의 벤츠보다 더 만족스러웠던 것 역시 마음엔 벤틀리에 대한 갈망이 싹텄던 탓이다. 버킷 리스트의 문제는 현재를 미래의 목표 달성을 위한 단계로 축소해 현재를 고행으로 만드는 데 있다. 초등학생조차 탈진한 의대 예비반 학생으로 만드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건 과도한 자기 착취다. 자기 착취가 내면화되면 자기 파멸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때 기억해야 할 건 자기 돌봄이다.
문득 지나간 버킷 리스트에 추가되고 수정된 내 열망의 목록을 보며 내가 길이 아닌 러닝머신 위에 서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하고”라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 속 붉은 여왕의 말처럼 넘어지지 않기 위해 계속 달려야 하는 기계 위 말이다. 그곳에서 넘어지지 않는 유일한 법이 쉼 없이 달리는 것뿐일까. 머신에서 내려온다면, 전원을 끈다면 어떨까.
명상은 전원을 끄고 내려오게 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명상의 핵심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직 현재에 머무는 것이다. 이미 걸어온 길을 후회하거나 정상을 보며 불안해하지 않고 지금 내가 걷는 한 걸음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저 한 순간, 한 정점이 있을 뿐이다. 이런 순간이 살면서 우리가 가장 현명해지는 때다. 명상을 하면 오히려 잡념이 더 밀려온다고 생각하는 건 햇살이 비칠 때 먼지가 훨씬 더 잘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남보다 못 가질까, 못 먹을까 두려워하는 잡념이 진짜 나를 가리는 먼지다. 그 먼지를 지워야 비로소 타인과 비교하는 데 젖은 내가 아닌, 진짜 나, 내가 진짜 바라는 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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