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감식하는 법의인류학자, 얼마나 고귀한 직업인가
[아무튼, 레터]
사진 속 여자는 왼손에 해골을, 오른손엔 ‘버니어 캘리퍼스’라는 측정 도구를 들고 있다. 법의인류학자 진주현씨는 지난 15년간 하와이에 있는 미 국방부 전쟁 포로 및 실종자 확인 기관(DPAA)에서 근무해 왔다. 전쟁 때 실종된 군인의 유해를 발굴하고 감식해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신원 확인은 모두 ‘뼈의 증언’ 덕분이다. 시간의 침식을 견뎌낸 뼈는 주인에 대해 많은 사실을 기억한다. 성별, 나이, 키, 병력은 물론 어떤 음식을 주로 섭취했는지도 알고 있다. “뼈를 통해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애타게 기다린 누군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으니 뼈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예요.”
진주현씨는 피란민의 손녀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1950년 12월 6일 흥남철수 작전 때 미군 배를 타고 남쪽으로 떠나 이듬해 1월 12일 전남 여수에 도착했다고 한다. 기묘한 인연이다. 그들의 손녀가 미국 국방부에 취직해 한반도에서 실종된 군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다니. 그녀 앞에 놓인 뼛조각들은 한때는 살아 숨 쉬는 젊은 청년이었다.
진주현씨가 ‘발굴하는 직업’(마음산책)을 펴냈다. 그 책을 읽다가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6·25 때 미군에 배속된 카투사 김동성 일병의 사연이다. 어린아이들과 아내를 뒤로하고 참전한 뒤 소식이 끊긴 그는 장진호 전투 때 목숨을 잃었다. 신원을 확인해 2020년 한국으로 유해를 송환했는데, 진씨의 블로그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안녕하십니까. 김동성 일병의 손자 김덕환입니다. 어릴 때 할머니와 아버지 손잡고 이산가족 찾기에 따라간 기억도 납니다. 못 찾아서 많이들 슬퍼하셨습니다. 할아버지를 저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나이가 곧 쉰입니다....” 그동안 겪은 마음고생이 한 번에 날아갔다고 한다. 누군가의 아들, 아버지, 남편을 늦게나마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 얼마나 고귀한 직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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