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보수주의 정치인은 다른 목소리 잘 듣는 ‘귀’를 가졌다

곽아람 기자 2024. 3. 16.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Books가 만난 사람] 英 정치전문 언론인 에드먼드 포셋

보수주의

에드먼드 포셋 지음|장경덕 옮김|글항아리|736쪽|4만2000원

“자유민주주의가 번창하는 것은 차치하고 생존이라도 하려면 우파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받아들이는 보수주의자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영국의 정치 전문 저널리스트 에드먼드 포셋(78)의 책 ‘보수주의’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포셋은 스스로를 ‘자유주의 좌파’ 혹은 ‘좌파 자유주의자’로 규정하며, “우리는 우파의 시대에 살고 있다. 좌파는 곳곳에서 퇴조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 아래 보수주의의 역사를 탐색하고, 보수주의를 어떻게 정의할지 고민한다. 포셋은 30년 넘게 ‘이코노미스트’의 워싱턴, 파리, 베를린, 브뤼셀 수석 특파원을 지냈고,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최근 이메일로 포셋을 만났다.

에드먼드 포셋

“좌파는 자신의 포지션에만 너무 집중해 상대의 포지션을 간과한 불쌍한 체스 선수와 같을 수 있다. 우파는 자유민주주의 시대의 선거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 나는 좌파가 그 이유를 이해하고, ‘우리가 그렇게 똑똑한데 왜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가?’ 라고 자문하길 바랐다. 보수주의자들을 위해서는 스스로를 인지할 수 있는 역사를 쓰고 싶기도 했다.”

2018년 영국서 출간된 이 책은 그가 기획한 정치 3부작 중 ‘자유주의’(2014)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프랑스, 영국, 미국, 독일 사례를 중심으로 한 이 책에서 포셋은 ‘보수주의’를 “프랑스혁명 비판에 의존해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근대의 정치 관행”이라 정의한다. 그가 요약하는 보수주의의 역사는 이렇다. “처음에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반대했다가 양쪽 모두와 타협했다. 1945년 이후의 보수주의는 중도 정당으로서 놀랍도록 잘 해냈다. 적당히 자유주의적이고, 어느 정도 포괄적인 민주주의를 지향했다. 1970~1980년대에 들어서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파적 비자유주의가 다시 등장했다. 강경 우파가 중도 우파에 도전했다.”

책은 보수주의자를 두 부류로 나눈다. 1945년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만들고 떠받치는 데 많은 일을 한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가 한쪽, ‘국민(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며 타자에 대한 낙인찍기, 배타적 민족주의 등을 보여주는 ‘비자유주의적 강경 우파’가 다른 한쪽이다. 미국의 트럼프 당선, 영국의 브렉시트 등이 강경 우파들의 득세로 인한 결과물이라는 것이 포셋의 주장이다. “1945년 이후 한동안 강경 우파는 소수이고 극단에 속했지만 1970~1980년대 다시 등장해 힘을 얻었다. 현재는 거대한 주류가 됐다. 극우 자유시장주의자, 자국 우선주의자,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의 동맹인 강경 우파는 심각한 구조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자유주의적 중도파가 핵심 가치를 수호하지 못하면서 생긴 틈새를 치고 들어왔다.”

그는 “온건하고 자유주의적인 보수주의가 승리하려면, 더 크고 명확하게 외쳐야 한다”면서 말했다. “중도 우파의 문제는 중도 좌파의 문제와 동일하다. 그릇된 목표나 그릇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목표와 가치를 옹호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포셋은 성공한 보수주의 정치인들은 음역대가 다른 목소리들을 포용하는 ‘잘 듣는 귀’를 가졌다고 말한다. 영국 총리를 지낸 디즈레일리는 보수적 유권자의 핵심인 잉글랜드 중산층의 정서를 파악하는 ‘완벽한 귀’를 가졌고,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겐 분열된 나라의 목소리를 듣는 ‘섬세한 귀’가 있었다는 것. “진정한 보수주의자, 혹은 진정한 좌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정치적 입장을 종교적 신념이나 비밀 종파의 멤버십처럼 취급하는 것에 알레르기가 있다. 진정한 보수’ 혹은 ‘진정한 좌파’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진보와 보수란 끝없는, 적어도 미완의 논쟁으로 본다. 이상화된 진보는 사회적 갈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권위를 불신하며, 누구든 존중하고, 인간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상화된 보수는 사회를 조화로운 것으로 보고 권위를 신뢰하며, 성취와 지위를 존중하고, 인간의 발전엔 한계가 있다 여긴다. 나는 좌파든 우파든 이러한 주장이 어떻게 결론을 내릴지, 또는 내릴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 작가나 사상가를 알지 못한다.”

서구 국가들의 정치 상황을 토대로 한 책이기 때문에 우리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좌우 대결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선거철에 상대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읽어볼 만하다. 포셋은 말했다. “내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얼마나 지역적으로, 혹은 서구적으로 들릴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누구든 누군가와, 그가 어떤 사람이건 혹은 어디에 있든 토론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생각(idea)과 문화라는 것이 국가나 정체성이라는 깔끔한 라벨이 붙어 있는 통에 담겨 있는 거라면, 나처럼 무식한 영국인이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게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