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서 검찰조서 무력화… 피해자 “하루하루 피말라”

박종민 기자 2024. 3. 16.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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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조서를 모두 부동의하면 결국 혐의를 인정한다는 겁니까."

2022년 말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에디슨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재판에서 박건영 당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 수사2팀장(부장검사·현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장)은 이렇게 답답함을 토로했다.

피고인들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는데, 재판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피의자 신문조서를 증거로 채택하는 것에 전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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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검찰 금융·증권합수부 출범 22개월
주가조작단의 재판 지연-수사 방해
조서 부동의해 증거력 없애는 등… 조직적-지능적 수사 방해 만연
“형량이 국민 감정과 달라” 지적도

“검찰 조서를 모두 부동의하면 결국 혐의를 인정한다는 겁니까.”

2022년 말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에디슨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재판에서 박건영 당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 수사2팀장(부장검사·현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장)은 이렇게 답답함을 토로했다. 피고인들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는데, 재판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피의자 신문조서를 증거로 채택하는 것에 전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1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검찰 조서도 경찰 조서처럼 피고인이 법정에서 동의할 경우에만 증거 능력을 갖는다.

박 부장검사는 “검찰의 공소 사실과 증거 기록을 확인한 뒤 불리한 내용이 담긴 기록을 쳐내려는 것”이라며 “조직적으로 말을 맞추는 금융·증권 범죄 사건 재판에서 이런 대응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검찰 조서가 증거로 인정되지 않으면 검사는 법정에서 같은 내용의 신문을 반복해야 한다. 에디슨모터스 사건도 강영권 회장과 경영진이 기소된 지 약 1년 6개월이나 지났지만, 피의자만 총 20명에 증인은 100명이 넘어 재판은 절반도 진행되지 못했다. 10년 쌈짓돈을 모아 투자한 한 주부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시간”이라고 토로했다. 정웅석 전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서경대 교수)은 “변호사 참여하에 작성된 조서마저 범죄자의 한마디로 증거 능력이 부정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재판이 지연돼 피고인이 석방되면 공소유지는 더 힘들어진다. 이른바 ‘라덕연 일당’으로부터 돈을 받고 로또 1등 당첨자를 ‘빚쟁이’로 만든 김모 전 NH농협은행 지점장은 15일 구속기한 6개월을 거의 다 채웠다는 이유로 보석이 인용됐다. 라덕연 H투자컨설팅 대표의 최측근 프로골퍼 안모 씨도 최근 보석을 신청했다.

검찰은 조직적이고 지능적인 ‘수사 방해’와도 싸워야 한다. 막대한 수익을 얻은 주가 조작 세력들은 공범에게 변호인을 선임해주고, 수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조사에 입회한 변호사가 복기한 조서가 공범 압수수색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영풍제지 주가 조작 수사팀은 주범 이모 씨의 변호사가 이 씨를 도피시키고 검찰의 위치 추적을 방해한 혐의를 확인하고 구속 기소했다. 에디슨모터스 수사 중에는 “변호사가 ‘자신의 증거를 없애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며 휴대전화 교체를 권유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경제사범에 대한 선고 형량이 국민 법감정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에서 최고 형량은 약 40년이지만, 미국에선 100년 이상도 가능하다. 몬테네그로 법원이 가상자산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한국 송환을 결정했지만, 일부 피해자가 권 대표의 미국 송환을 희망하는 이유다. 다만 김재봉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해 회복을 위해서는 국내에서 처벌이 이뤄지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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