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좋은 일자리'에 관한 동상이몽
'좋은 일자리 창출' 포장했지만
세금으로 만든 '그들만의 일자리'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힘만 빼
성과·보상 비례해야 진짜 '공정'
이상은 사회부 차장
“이 이야기가 이제야 나오다니….”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서울시가 2145명에 달하는 공무직의 비효율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기사를 쓴 뒤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다. “편향된 시각으로 쓴 기사”라는 비판적인 의견도 있었지만, “공기업 이야기를 써 달라”거나 “학교 현장의 이야기도 써 달라”는 식의 반응이 훨씬 많았다. 서울시만의 문제, 지방자치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정부, 공기업,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문제라는 것이다.
공무직은 공무원을 보조하는 민간인 무기계약직이다. 청소 경비 시설관리 등 비교적 단순한 업무가 많다. 대신 임금이 낮은 편이다. 단체협약 등에 따라 호봉을 적용하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지만 60세 정년을 보장받는다. 민간인이므로 공무원법을 적용받지 않고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다.
전국 공공기관에 공무직이 급증한 시발점은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의 취임이다. 그는 ‘좋은 일자리’를 공공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보급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다. 그의 결정에 논리적 기반을 제공했던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서울시 좋은일자리 만들기 기본방안 연구’(2013)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모범 사용자로서 ‘좋은 일자리(decent work)’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적었다. 이전에도 공무직이라는 명칭은 있었지만 1만여 명 서울시 조직에서 300명 수준이었다. 2012년부터 2019년 사이 이 숫자는 6배 이상인 2229명으로 불어났다.
박 시장의 이 정책을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이어받았고, 자회사를 활용해 정규직 고용을 대폭 늘려 청년층에서 ‘공정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로 이어졌다. 말하자면 서울시에서 진행한 시범사업이 전국으로 확산한 것이다. 그 여파로 20만 명가량이 공무직으로 전환됐다. 이 시기는 서울시를 비롯해 정부의 예산이 폭증한 시기와 겹친다. 우리 경제가 그만큼 성장해서가 아니다. 세수를 늘리기 위해 다주택자들을 몰아쳤고, 기업을 옥죄었다. 그렇게 늘어난 예산으로 ‘아름답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확보했다. 그야말로 마차가 말을 끄는 ‘소득 주도 성장’이다.
이 아름다운 일자리는 그러나 그들만의 꿀단지였다. 급여는 다소 적어도 일이 편하다. 잔소리도 없고, 가욋일도 없다. 급한 일을 요청받아도 “저는 공무직인데요” 한마디로 관리자를 입 다물게 할 수 있었다. 폭우, 폭설, 장마, 가뭄 등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공무원은 쥐꼬리만 한 수당만 받고 수없이 차출되지만 공무직은 열외다. 필요 없어진 업무,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업무도 사라지지 않는다. 항상 똑같은 일을 반복하니 저절로 ‘고인 물’이 된다. “수당이 많으면서도 유튜브 보면서 쉴 수 있는 야근이나 주말근무에는 적극적이고, 진짜로 일해야 하는 비상근무에는 소극적”이라는 게 많은 이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이런 좋은 자리를 아무나 가질 수 있겠는가. 현직 기관장의 친인척, 지자체장 선거에 도움을 준 후원자 등에게 알음알음 기회가 돌아간 적도 여럿 있다는 후문이다.
2011년 서울시의 공무직 증원이 시작된 뒤 10여 년이 지난 지금, 공무직 비효율 문제는 상당수 공공분야의 골칫거리가 됐다.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라서 그럴 리가 없다. 분명 정직하고 성실한 이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하지만 보상도 통제도 없고 변화도 요구되지 않는 이 시스템 안에서 지내다 보면 누구나 열심히 할 필요가 없어지고, 열심히 하라는 외부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반발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니 “공무원 그만두고 공무직 하겠다”는 이들이 왕왕 나와도 그리 놀랍지 않다. “공무직과 일하다 보면 어차피 월급이 적은 것은 마찬가진데 왜 나만 열심히 살아야 하느냐는 ‘현타’가 온다”는 것이다.
정규직화 자체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분명 풀어야 할 숙제다. 나이 든 정규직을 젊은 비정규직이 떠받치는 식의 부당한 차별도 만연해 있다. 그러나 공무직 증원 실험은 특정인만을 위한 좋은 일자리가 모두에게 좋지는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떤 식으로 포장하더라도 성과와 보상이 비례하지 않는 일자리는 공정할 수 없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공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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