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김선혁과 김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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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남북은 적대적 두 국가”
남한 “북, 체제 경쟁 패배 인정”
이산가족에겐 남은 시간 적어
대립 속에도 인도주의 발휘해야
」
그런데 나의 생각은 다소 엉뚱한 곳에 이르고 있었다. 남한에만 13여 만에 이른다는 이산가족들의 문제였다. 사람들의 의식에서 자신과 친한 친지, 특히 가족은 자기의 일부이다. 해방과 분단 특히 전쟁 이후 한반도에는 대규모의 이산가족들이 발생하였다. 정전이 되고, 그 후 냉전이 끝나고 바깥 세상에서 나라들 사이에 여행이 자유롭고 쉬워진 후에도 이들의 처지는 그대로였다. 한때 관계가 개선되었을 시기에도 엄격한 통제하에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선택된 몇몇이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뿐이다. 남북이 동족이 아니라니, 이제 그나마도 영구히 불가능해진다는 것인가.
몇몇 저술들은 탈냉전의 시기 제 3국 경로를 통하여 어렵사리 가족과 제한된 재회를 한 슬픈 사연들을 이야기해 준다. 언어학자 김수경은 해방 직후 월북하여 북한의 국문 표기 체계 정립에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전쟁 중에 가족들과 헤어지고 월남한 가족들은 캐나다로 이주하여 정착한다. 냉전 종식 후 이들은 캐나다, 일본, 중국 등을 우회하여 연락을 하지만 지극히 사랑했던 부부간의 만남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이타가키 류타, 『북으로.간.언어학자 김수경』)
김선혁은 해방 직후 평양에서 신탁통치 반대 학생 운동을 하다가 소련군 당국에 체포되어 시베리아 유형을 당한다. 그는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아 러시아에 정착하였다. 그후 역시 미국과 러시아를 통하여 가족과 연락이 되어 47년 만에 서울에서 모두 재회하지만 이미 한국에 정착하기는 너무 늦어진 상황이었다. 그는 러시아로 귀환하여 그곳에서 타계한다. 그동안 김선혁은 한국, 미국, 러시아에 사는 가족들과 함께 화상회의 앱으로 일요 예배를 계속하였다.(김선혁, 『평양에서 서울까지 47년』)
앞에 언급한 오든의 글은 바로 사람들 사이의 ‘공감의 결핍’ 혹은 ‘간격’을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은 살육 현장의 잔혹함에 관하여 이야기하다가도 금세 자리를 달리하여 차 한잔을 즐긴다. ‘위대한 지도자’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 이산가족들의 말 못할 어려움을 알고 있고 이 문제에 관하여 쉽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진정한 공감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하나”라고 외치다가 이제 동족이 아니어서 핵무기를 동원하여 공격을 하겠다고 하는 북한의 새 노선에 어떻게 대응을 할지 지혜를 모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 모두 이 세상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은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이 잠시라도 자유롭게 만날 기회를 마련하여 줄 생각도 잊어선 안된다는 점이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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