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분담금이 5억? 쑥 들어간 재건축 강행 목소리

2024. 3. 16. 00: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공사비 암초 만난 재건축 현장 가보니
서울 강북권의 한 재개발 사업 지역 공사 현장 입구에 공사비 미지급 관련 분쟁에 따른 공사 중단 안내문이 걸려 있다. [뉴스1]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박모(68)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는 이 공원 정문 맞은편에 보이는, 재건축 중인 잠실진주아파트 재건축조합원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는 최근 수개월째 시공사와 조합 간 공사비 관련 분쟁으로 내년 6월로 예정됐던 준공이 6개월가량 미뤄질 전망이다. 시공사가 3.3㎡당 공사비를 기존 660만원에서 889만원으로 인상할 것을 제시하자 조합은 이를 거부했다. 시공사가 다시 823만원을 제시해 조합은 내달 총회에서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박씨는 “인근 오피스텔에 살면서 아파트 완공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며 “일정 지연으로 월세 비용이 더 들뿐더러 (재건축) 분담금이 확 오를 전망이라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재건축뿐 아니라 재개발도 공사비 인상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 현장은 높다란 타워크레인 14대가 늘어선 채 공사가 중단돼 스산한 분위기다. 강북 재개발 최대어인 이곳은 시공사가 2017년 선정 때보다 28% 늘어난 공사비를 요구해 조합에 내분이 발생했다. 집값 안정화와 낙후 지역 개선의 실마리인 도시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이 공사비 문제로 곳곳에서 멈추거나, 잡음을 내고 있다. 특히 재건축의 경우 최대 걸림돌이던 초과이익환수제가 윤석열 정부 들어 분담금 완화 쪽으로 개정돼 오는 27일 시행을 앞뒀고, 진입 문턱인 안전진단도 사실상 사라졌다. 사업들이 순항할 것으로 기대됐는데 공사비 암초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공사비 분쟁에 휩싸인 재건축·재개발 지역
서울 금천구 남서울럭키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최근 예비신탁사로부터 추정 공사비가 3.3㎡당 950만원으로 올라 가구당 추정 분담금이 최대 8억8000만원이라는 견적을 받았다.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도 전용면적 31.98㎡을 보유한 조합원이 84㎡ 분양 때 5억원의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한다. 건설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폭등한 원자잿값과 인건비 때문에 공사비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주거환경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3.3㎡당 평균 480만3000원이던 국내 도시정비사업 공사비는 지난해 687만5000원으로 3년 사이 43% 올랐다. 2020년 1.8%에 불과했던 건설중간재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전년 대비)이 2021년 27.3%, 2022년 6.2%를 기록하는 등 건설 물가가 껑충 뛴 탓이다. 또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건설업 근로자의 하루 평균 임금은 27만789원으로 2021년 상반기(23만1779원) 대비 16.8% 올랐다.

공사비 부담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원자잿값의 급등세는 진정됐지만 떨어지지는 않고 있고, 한 번 오른 인건비는 구조적으로 매년 오를 수밖에 없다. 그사이 신설된 각종 규제의 영향도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2021년 시행된 레미콘 토요 휴무제 등 규제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으로 공사 기간이 3~6개월씩 늘었다”며 “이로 인한 공사비 증가는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2022년 시행된 층간소음 사후확인제와 중대재해처벌법(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자 기준, 50인 미만에선 올해 적용)도 마찬가지다. 업계는 이로 인한 전체 공사비 원가 상승률이 15%를 웃돌 것으로 추정한다.

이 때문에 내년 도시정비사업 공사비는 3.3㎡당 1000만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공사비 부담이 급증하고, 집값도 2021년 고점 이후 하락세를 보이면서 채산성이 낮아지자 아직 사업 초기 단계인 곳에선 시작부터 머뭇거리고 있다. 경기 분당·산본·일산·중동·평촌 등 1기 신도시 5곳은 재건축 선도지구 선정을 앞두고 있지만 주요 단지의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태다. 지난해 말 안전진단 문턱을 넘은 서울 목동도 마찬가지다. 해당 지역의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추정 분담금이 2020~21년 대비 거의 2배라 사업 추진을 강행하자고 목소리를 내는 조합원이 없다”고 전했다.

전국 도시정비사업 평균 공사비
이러다보니 공사비가 많이 드는 초고층 고사양의 설계를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 중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1지구는 분담금 부담을 낮추기 위해 아파트 설계안을 70층 이상에서 50층 미만으로 변경하기로 합의했다. 사업 초기 단계인 곳은 시공사를 구하는 것부터도 문제다. 건설사들이 높은 리스크로 낮은 수익성이 예상되는 도시정비사업 수주에 선뜻 나서려 하지 않고 있어서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27차 재건축조합은 1차 입찰에서 시공사 선정에 실패한 뒤 지난달 2차 입찰 공고를 내면서 3.3㎡당 공사비를 기존 907만원에서 957만5000원으로 올렸다. 송파구 잠실우성4차는 벌써 두 차례 유찰돼 지난달 3차 입찰 공고를 냈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부담이 완화되지 않을 경우 향후 전반적인 도시정비사업 진척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와 주택 경기 반등 등 일부 호재는 예상되지만, 이미 크게 오른 원자잿값이 극적으로 떨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서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4년간 건자재 PPI 상승률은 35.6%로 전체 PPI 상승률인 22.4%를 크게 웃돌았다”며 “건설 수주와 착공 건수 감소로 올해 건자재 가격이 하락했지만 수요 하락 폭은 시멘트 -1.0%, 철근 및 봉강 -1.9% 등이라 가격 하락 폭도 제한적”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건자재 시장 정상화 등 도시정비사업의 ‘간접적 지원’ 정책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시정비사업은 윤 정부의 주요 주택공급처인 만큼, 사업 지연으로 공급이 늦어지면 집값을 들쑤시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이충재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은 “안정적인 건자재 수급을 위한 정책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박선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사와 건자재 생산사가 원자잿값 변동과 수급 애로에 따른 갈등 해소를 위한 협의체 운영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줄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건자재 시장 정기조사제 도입,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수급 예측 시스템 개발도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