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750억인데 손실만 300억”…서울·세종 공사현장 곳곳 멈춰선 이유

서진우 기자(jwsuh@mk.co.kr), 김유신 기자(trust@mk.co.kr), 이희수 기자(lee.heesoo@mk.co.kr) 2024. 3. 1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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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공사인 세종시 집현동 공동캠퍼스 조성 현장이 공사 중단 상태로 남아있다. 대보건설
세종시 집현동에는 서울대와 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정책대학원 등의 공동캠퍼스 조성 공사가 진행중인데, 지난 5일부터 일주일 넘게 멈춰 서 있다. 작년 10월에 이어 두 번째다.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시공사인 대보건설 사이 공사비 분쟁 탓이다.

대보건설 관계자는 “공사비가 약 750억원인 이 현장에 300억원 이상 손해가 예상된다”며 “그동안 레미콘 공급차질,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 여파로 회사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 차입까지 해가며 공사했지만 태영건설 워크아웃 이후 금융권 차입도 여의찮아 더 이상 공사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큰 이익을 보지는 못하지만 안정적이었던 관급공사마저 치솟는 공사비에 속수무책이 됐다.

이곳 현장에서 일하던 건설사와 협력사 직원들은 지난 12일 공사 재개를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불황기 공사중단으로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시는 강남역과 광화문, 도림천을 비롯한 침수 취약지 6개 구역에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공사를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참여 희망업체가 안나타나 두 차례나 유찰됐다. 공사비 급등에 예산삭감까지 겹쳐 사업성이 떨어지면서다. 이 공사는 애초 10년간 총 1조5000억원의 예산이 계획됐지만 기획재정부 심사에서 1조2500억원으로 삭감됐다. 안전을 위한 기반시설마저 기약없이 지연되고 있는 셈이다.

비싼 땅값 보증도 건설사엔 부담이다. 지난해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랜드마크 용지 매각은 836억원에 달하는 보증금 탓에 여러 차례 유찰됐다. 연초 사업설명회를 다시 열었지만 시행·시공업계 반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정부가 조만간 공공 부문 공사비 현실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힌 만큼 관련 지침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제시될지 관심이다. 그동안 철근과 시멘트를 비롯한 자재 비용과 인건비가 뛰어오르고, 안전·노동 규제(중대재해처벌법 등)마저 강화하면서 시공비가 급등했지만 공공공사 발주금액은 턱없이 낮아 기업들의 참여기피가 심각했다.

15일 대한건설협회(이하 건협)에 따르면 지난 2022~2023년 주요 국책사업을 포함한 대형 건설공사(토목 500억·건축 200억원 이상) 유찰률은 68.8%를 기록했다. 남부내륙철도, 남양주~춘천 제2경춘국도, 광화문·강남역·도림천 일대 빗물배수터널 건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건설공사비지수(2014년 100기준 수치)는 2020년 12월 121.8에서 지난해 12월 153.22로 매년 약 10%씩 치솟았다. 대형 공사는 총사업비 관리 대상이어서 공사비 산정 때 기획재정부가 참여한다. 하지만 예산부족을 이유로 급등하는 공사비를 제대로 반영해 주지 않으면 진행 중이던 공사는 멈춰서고 새로 시작할 공사는 낙찰자를 찾기조차 어렵다.

건협 관계자는 “공공 건설사업의 공사비 부족이 민간 건설사에 대한 손실 전가로 이어지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결국 유찰에 따른 필수 기반시설 공급지연으로 국민 불편과 위험을 가중하고 건설투자를 통해 민생경제를 회복하려는 정부계획에도 중대한 차질을 발생시킨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13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역투자 활성화와 공공부문 선도 등을 통해 건설투자를 보강하기 위한 방안을 곧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현재의 경직된 공공공사 발주·예산 시스템을 뜯어고쳐야만 근본적으로 공사비 현실화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단 공공공사는 ‘장기 계속공사’인 경우가 많다. 이는 총공사금액으로 발주하되 매년 예산범위 안에서 계약을 체결·이행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예산은 매년 배당받은 만큼만 공사업체에 지급된다. 장기계속공사의 경우 예산부족을 이유로 총공사기간 지연이 거의 일상화돼 있다.

실제로 상암동 월드컵대교 공사는 애초 2010년 4월부터 2015년 8월까지였지만 2022년 4월에야 완공됐다. 공사 기간이 계획보다 무려 2.5배나 늘어났다. 그 사이 시공사는 현장 관리비, 상주 인건비를 비롯한 막대한 추가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가·지방계약법에는 총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추가비용 지급근거가 없다.

정부가 공공 공사비를 현실화하려면 기본 타당성조사 때 산정하는 금액(예산)과 실제 계약 체결금액 사이 차이도 보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을 지낸 이상호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공공공사는 턴키(설계·시공 일괄 입찰) 방식이어서 기본 타당성조사와 실제 계약체결 사이에 상당한 시차가 발생해 그사이 공사비가 오르면 민간기업은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방자치단체계약법은 공공공사 때 덤핑 입찰을 막기 위해 순공사원가(재료비·노무비·경비)의 98% 미만으로 입찰가격을 써낸 기업은 탈락시키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100억원 미만 공사에 한한다. 건협 측은 “최근 공사비가 급등하고 간접자본투자로 대형 공공공사가 늘고 있는 만큼 이 규정을 3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공사비 문제보다 건설사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당장 다음 달 대출 만기가 돌아와 차환이 불확실한 건설사 입장에서 공공공사 대금 증액은 딴 세상 얘기”라며 “정부가 대형 펀드 등을 조성해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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