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겸손을 기르는 법

이지혜 기자 2024. 3. 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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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서가 북에디터 = 정선영] “또, 또. 자꾸 박자가 빨라지잖아요.”

기타 레슨 중 내가 자주 듣는 말이다. 최근엔 한마디 덧붙여졌다. “이제 기타 조금 칠 줄 안다고 말이야. 겸손을 잃지 말아요.” 기타 선생님식 유머다.

선생님이 모르는 게 있다. 내가 기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는 것을. 또한 산출 결과 대비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지도.

사실 나는 무언가를 적당히 열심히 하는 타입이지, 죽도록 열심히 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럼에도 삶은 대체로 잘 굴러왔다. 살면서 크고 작은 실패는 있었을지 몰라도 어마어마한 실패는 없었다. 적당히 실패하지 않을 것에 도전해왔고 그렇기에 대체로 성공했다.

그런데 기타는 아니다. 살면서 이 정도로 열심히 해본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이 정도로는 안 되나 보다. 기타를 배운 지 1년이 넘었는데도 박자나 리듬은 둘째치고 왼손 코드를 단박에 잡아내지 못한다.

돌아서면 까먹는 일이야 나이가 들면서 총기가 떨어지나 보다 하고 핑계라도 댈 수 있지. 수업 중 1번 줄부터 6번 줄까지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선생님이 코드를 설명하며 “3번 줄 잡고”라고 할 때, 맨 아래서부터 하나, 둘, 셋을 세고도 4번 줄을 잡는 나를 보면 정말 바보가 따로 없다.

요 몇 주간 레슨 때 기타 선생님은 기타 지판과 음계를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여러 번 설명했지만 다음 번엔 마치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니 아예 작정한 듯 집중 수업했다.

“C(도) 잡아보세요.”

기타 선생님 말에 나는 발을 동동거리며 최대한 차분히 줄을 꼽아본다. 1, 2, 3, 4, 그래 5번 줄의 두 번째 칸이 B 다음이 C. “여기? 맞죠?!” “지금 잡은 C에서 오른쪽으로 한 칸 가면?” “C… 마이너?” 일순간 정적이 감돈다. 뭔가 잘못됐다.

고개를 들어보니 기타 선생님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여기서 마이너가 왜?” 정답은 C샵.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떨구고 만다.

기타를 잡은 나는 CDEFGABC, 우리말로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위치가 단박에 출력되지 않는다. 분명 복습도 했는데, 왜 나는 아직도 루트 음을 잡는 데도 버벅대는 것인가. “A(라)는?” “앗, 잠깐만요!” 벌써 수십 번째 지판을 보며 F, G, A… 하나씩 세어보곤 겨우 검지로 루트 음을 잡아낸다. 스스로도 한숨이 나온다.

상황이 이러하니 수업 중 어쩌다 한번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맞혔을 때나 새로 배운 코드를 단박에 왼손으로 잡았을 때, 오른손 스트로크 주법에서 리듬이 꼬이지 않고 네 마디를 넘겼을 때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이 얼마나 소중한 성공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게 기타 레슨은 자잘한 성공 몇 번에 은근슬쩍 자리 잡은 오만함에 끊임없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이기도 하겠다.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도 있고,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것이 있으며, 그렇기에 더더욱 겸손해야 함을, 나는 마흔이 넘어 기타를 배우며 조금씩 깨닫는다.

이쯤 되니 기타를 배우고 있는 건지, 인생을 배우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네.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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