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고 때론 어이없는 책, 책, 책
에드워드 브룩-히칭 지음
최세희 옮김
갈라파고스
『영락대전』은 중국 명나라 때 영락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백과사전이다. 2169명의 학자가, 중국 전역에서 모은 책 8000여 권을 집대성해, 5년에 걸쳐 두루마리 2만2937개를 만들었다. 지금은 대부분 소실됐지만, 길이 11m의 화물 트레일러에 맞먹는 규모로 추정된다.
그랬다, 한때 책은 지식 그 자체였다. 단순한 정보 전달 매체를 넘어 ‘인류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꼽혔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정부의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5명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대신 다른 지식과 정보, 오락이 넘친다. 필적할 상대가 없던 『영락대전』도 600여 년 뒤 등장한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왕좌를 내줬다. 세상에 존재하는 1억2986만 4880권의 책(2010년 구글북스 추산)은 이제 용도폐기의 운명을 맞은 걸까.
글도 글이지만 함께 실린 기기묘묘한 형태의 책과 삽화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계속 보고 있노라면 중세 수도원 도서관이 배경인 『장미의 이름』, 희귀서적 사냥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뒤마 클럽』 같은 소설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책을 사랑하는 방식을 고유한 언어로 다시 쓰면서 감각을 확장한다”고 할까. 전자책 시대에도 ‘물성(物性)’ 있는 책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김한별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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