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고 때론 어이없는 책, 책, 책

김한별 2024. 3. 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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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책들의 도서관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
에드워드 브룩-히칭 지음
최세희 옮김
갈라파고스

『영락대전』은 중국 명나라 때 영락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백과사전이다. 2169명의 학자가, 중국 전역에서 모은 책 8000여 권을 집대성해, 5년에 걸쳐 두루마리 2만2937개를 만들었다. 지금은 대부분 소실됐지만, 길이 11m의 화물 트레일러에 맞먹는 규모로 추정된다.

그랬다, 한때 책은 지식 그 자체였다. 단순한 정보 전달 매체를 넘어 ‘인류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꼽혔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정부의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5명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대신 다른 지식과 정보, 오락이 넘친다. 필적할 상대가 없던 『영락대전』도 600여 년 뒤 등장한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왕좌를 내줬다. 세상에 존재하는 1억2986만 4880권의 책(2010년 구글북스 추산)은 이제 용도폐기의 운명을 맞은 걸까.

현존 최대 필사본 『코덱스 기가스』. [사진 갈라파고스]
이 질문에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은 우리가 아는 책에 대한 상식과 통념을 깨는 것으로 답한다. 입거나 먹을 수 있는 책, 사람의 가죽과 피로 만든 책, 사기나 풍자·복수를 위해 쓴 ‘거짓말투성이’ 책, 이성과 과학의 여명이 밝기 전 쓰인 마법책과 주술서, 손톱보다 작은 2.4㎜×2.9㎜ 크기의 초소형 책, 아프리카 코끼리만한 2.08m×2.79m 크기의 초대형 책….
19세기 초 나온 미국의 새. 가로 99㎝의 큰 책에 새들의 실물 크기로 그림을 담았다. 깨끗한 초판본이 2010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732만여 파운드(현재 환율로 123억여원)에 낙찰됐다. [사진 갈라파고스]
서지학자의 후손이자 희귀서적상의 아들인 저자는 “너무 이상해서” 책의 역사에서 “버려져 잊히고 만 별종들”을 소개한다. 그들이 “예상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으며 “그 책을 쓴 사람들과 그 책이 쓰여진 시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며.
단테 『신곡』 1878년 초소형 판본. [사진 갈라파고스]
가령 인피 제본은 “현대인의 감수성으론 괴이쩍지만” 18~19세기 유럽·미국에선 “살인 범죄와 의학 연구 관련 문헌을 출판할 때 용인되는 부가적인 장식”이었으며, 19세기 말에는 ‘살에 담긴 위대한 글은 필멸하는 육신이 영혼을 품는 것과 같다’는 “사뭇 낭만적인 은유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글도 글이지만 함께 실린 기기묘묘한 형태의 책과 삽화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계속 보고 있노라면 중세 수도원 도서관이 배경인 『장미의 이름』, 희귀서적 사냥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뒤마 클럽』 같은 소설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책을 사랑하는 방식을 고유한 언어로 다시 쓰면서 감각을 확장한다”고 할까. 전자책 시대에도 ‘물성(物性)’ 있는 책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김한별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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