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권리가 곧 평등한 결과는 아냐
벤 앤셀 지음
박세연 옮김
한국경제신문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의 계절이 한창이다. 다음 달 10일 치러지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20여일 앞두고 각 정당과 후보들은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불철주야 사활을 걸고 뛰고 있다.
그런데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인 국민을 잘살게 하기 위한 고민 속에 치러져야 할 선거가 오히려 진영 간 대결을 부추기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는 이처럼 한국을 비롯해 지구촌 곳곳에서 위기가 깊어지고 있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면 되살릴 수 있을까를 모색한 ‘정치 교과서’다. 이 책은 민주주의, 평등, 연대, 안전, 번영이라는 5가지 프리즘을 통해 그 속에 어떤 딜레마가 있는지, 정치는 그 덫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를 예리한 통찰력으로 살펴보고 해결책도 제시했다.
정치인들은 툭하면 ‘국민의 뜻’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든다. 하지만 지은이 벤 앤셀은 개인들의 이기심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모두가, 적어도 절대 과반수가 동의하는 국민의 뜻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요즘처럼 진영이 양극화한 상황에서는 섣불리 국민의 뜻을 내세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정당들이 정치 스펙트럼의 중간에 있는 중위투표자가 선호하는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권력을 잡았을 때 국민과의 그런 약속을 실행에 옮기는 시대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졌다.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타협과 협치를 배제하는 양극화는 당파주의를 강화해 정치를 끝없는 줄다리기로 만들었으며 극심한 교착 상태를 빈번히 초래했다.
정치학자이자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인 지은이는 국민 각자의 이기심이 비도덕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개인들의 이기심을 탓하기보다 의견 불일치를 바탕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아일랜드에서 낙태법 수정과 인구 고령화, 기후 변화 등에 대한 국민투표를 시행하기에 앞서 숙고를 위해 시행한 ‘시민모임’, 중도 진영의 사람들이 더 많이 투표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호주와 아르헨티나 등 20여개 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의무투표제, 비방과 중상에서 벗어난 정치적 논쟁을 위한 브이타이완(vTaiwan) 실험 등은 양극화와 혼란을 중화시키는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예시한다.
민주주의의 덫 못지않게 평등의 덫도 자주 거론된다. 평등한 권리를 허용하면 평등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반대로 평등한 결과를 강제하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삶을 살아가기 위한 평등한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 평등의 덫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평등한 결과와 평등한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부드러운 형태의 타협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한국 정치지형을 결정하는 4·10총선을 맞아 유권자와 출마자, 정치인들은 어떤 길이 나라를 살리고 국민을 잘살게 하는 첩경인지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야 할 때다. 때마침 출간된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를 읽고 정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국민 절대다수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정치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해답의 일부라도 찾기를 바란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khhan8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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