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너지 극대화 꾀한 CEO 이순신…거북선·판옥선, 경영 능력 결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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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한의 ‘충무공 경영학’ ②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조선 수군이 왜군을 격파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승리 요인은 조선의 무기체계와 전투선이 일본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 무기체계를 정비한 사람은 이순신이었다. 한 마디로 조선 수군의 성공은 충무공 경영의 승리였다.
충무공은 개별 전투만 잘하는 무장을 넘어 종합 전략전술 능력을 가진 수군 CEO(최고경영자)의 수준에 올라 있었다. 수군을 기업에 비유하자면 전라좌수사 혹은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최고경영자가 총괄 수군 경영의 책임을 진다. 여기에 재무관리와 전략적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CFO, 최고 정보책임자인 CIO, 인사총괄 책임인 CHO, 최고기술책임자인 CTO가 뒤를 받쳐주는 법이다. 충무공은 CEO인 동시에 병참과 보급 및 전략적 의사결정을 담당했으니 CFO의 역량까지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또 탐후선과 측후병을 동원한 갖은 정보들 속에서 전술정보를 분석해 내는 CIO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모든 가용한 인적 자원을 발굴하고 선발하는 CHO의 역할마저도 훌륭히 해냈다. 여기에 나대용과 정걸 같은 CTO(거북선 판옥선 조선 및 리모델링 기술진)를 배치해 전투선을 리빌딩했으니 최고 경영책임자 다운 면모를 제대로 갖춘 리더였다.
유성룡의 징비록엔 “순신이 거북선 창조”
이에 비해 일본의 주력함선인 세키부네와 안택선(대장선박)은 속도는 빠르지만 바닥이 뾰족한 첨저선인 데다 화포가 적어 대함 전투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판옥선의 높이와 크기가 일본의 전선에 비해 높고 크다 보니 백병전을 앞세운 왜군이 침투하기 어려웠다. 이순신은 이런 판옥선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천지현황포 등 화포 사격으로 근접전이 벌어지지 않게 막았다. 또 이순신은 일본 함대의 백병전 중심의 특성을 감안, 우리나라의 복잡하고 조류가 강한 남서해 해류 속에 끌어들여 적들을 궤멸시킬 수 있었다. 충무공의 수군 경영이 승리한 요체다.
문제는 조정에서 수군의 전투선 건조부터 무기와 화약, 심지어 병참 군수의 모든 것을 지원해 주지 않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는 점이다. 이순신은 조선용 목재와 돛, 화약과 군복 등을 자체 조달해야 하는 처지였음에도 이를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이순신의 함대 경영술을 보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상시 대응태세였다. 전선 한 척이 전투에 임하려면 포수와 살수, 사수 등 전투요원과 지원요원(격군, 신호수, 고수, 관측수) 전원이 임전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몸에 익을 때까지 훈련하는 것이 최선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기강 확립도 대단히 중요한 법이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하고 110일간의 난중일기 기록을 살펴보면 수군 CEO로서 그가 얼마나 수군 훈련에 열심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사료를 보면 “점검과 순시 15회(전체 일정 중 백분율, 18.5%), 활쏘기 29회(35.8%), 대포 쏘기와 거북선 준비 등이 15회(6.2%), 부정 비리 등을 조사한 일이 5회로 나타난다. 전체 70% 가까이가 전비 태세를 갖추는 일이었다.”
난중일기에선 탐후라는 말 24번 나와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의 동정을 살피고 미리 예측하는 것이다. 난중일기는 이를 후망(候望)이라고 기록했다. 정찰을 뜻하는 척후(斥候)와 높은 곳에서 적을 감시하는 요망(瞭望)을 합친 말이다. 『선조실록』 선조 26년(1593) 11월 2일에는 류성룡이 “행군할 때 먼저 선봉을 보내어 험한 곳이 있으면 달려와 알리는 자는 척후이고, 높은 곳에 올라 망보아 성식(聲息)이 있으면 달려와 알리는 자는 요망(瞭望)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난중일기에선 탐후라는 말이 24번 나온다. 특히 탐후선의 활용을 자주 언급했다. 탐후선은 연락 담당 배로 각 전선과 해당 지역의 적정, 아군 상황 등을 보고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후망은 5회, 척후는 21회, 체탐은 8회 사용됐다. 모두 적정 탐지와 보고를 위한 것이었으니 이순신은 적의 정세를 모르고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쓸데없는 출동으로 시간과 인력, 물자를 낭비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이처럼 이순신은 지리(地利) 경영과 인적 경영(전투인원의 효율적 배치), 물적 경영(화포, 전선의 성능 개량)을 투입해 전투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줄 아는 경영자였다.
이순신은 판옥선과 거북선, 총포와 화약을 앞세워 임전태세에서 이미 확실한 우위에 서 있었기에 왜군과의 전투를 하기 전에 이미 승기를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치열한 글로벌 기업 경쟁의 승패가 제품 출시 이전의 개발 단계에서 이미 정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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