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발레리나’ 자하로바…예술의 전당 내한공연 무산
15일 공연기획사 인아츠프로덕션과 예술의전당은 ‘모댄스’를 둘러싼 논란을 고려해 취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4월 17~21일 공연 예정이었던 ‘모댄스’는 두 편의 단막 발레 ‘가브리엘 샤넬’과 ‘숨결처럼’을 엮은 작품이다. 특히 여성의 신체를 코르셋에서 해방시킨 전설적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일대기를 담은 ‘가브리엘 샤넬’은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프리마 발레리나이자 이탈리아 라스칼라 발레 에투알인 자하로바를 위해 2019년 만들어졌다. 티켓 가격이 최고 34만원이나 하는 비싼 공연이었지만 자하로바의 유명세 덕에 취소 전까지 전체 티켓의 70% 이상이 팔렸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15세 때 러시아 바가노바 프릭스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며 러시아 발레계에 대발탁된 자하로바는 러시아 집권 여당 ‘통합 러시아’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정치인으로도 알려졌다. 푸틴과의 친분도 돈독해 2013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지지 서명에 동참하며 푸틴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 하지만 6년 전 내한 공연 인터뷰 당시 ‘정치적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정치 활동을 하는 목적에 대해 얘기해 달라’는 물음에 “이미 7년 전부터 국회의원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며 답을 피했었다.
‘모댄스’의 취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악화된 가운데 공연 소식이 본격적으로 전해지면서 여론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무용계 일각에서 ‘예술과 정치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지난 4일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정당화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을 경시하는 것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문을 발표하자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모댄스’는 푸틴의 대표적인 지지자인 자하로바를 돋보이게 하려고 만들어 해외 주요무대에서도 초청하지 않는 작품” 이라면서 “역사적으로도 발레가 루이 14세의 정치적 목적 하에 극장예술로 발전했듯, 예술과 정치가 무관할 순 없다. 몇 차례 내한 공연에서 자하로바가 보여준 모습도 무성의한 느낌이었다. 이제라도 여론에 따른 게 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4월 16~18일 세종문화회관 대관 공연 예정인 ‘볼쇼이 발레단 갈라 콘서트 2024 in 서울’과 5월 16∼19일 국립극장 대관 공연 예정인 마린스키·볼쇼이발레단 소속 무용수 네 명이 참여하는 ‘발레 슈프림’의 공연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두 발레단이 소속된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모두 ‘친푸틴 예술가’를 대표하는 발레리 게르기예프(67)가 총감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