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파장] 벼랑끝 전공의들, 법원·국제기구에 잇따른 SOS
전공의들 활로 모색…향후 법리 공방 주목
[더팩트ㅣ김영봉·이윤경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추진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사법부와 국제기구에 잇따른 도움을 요청했다. 정부가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 절차에 돌입하자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한 전공의들은 연일 압박이 거세지자 활로를 찾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까지 한 것으로 풀이된다.
◆ 의대 증원 처분 취소 소송, ILO 정부 제소까지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과 각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들은 지난 12일 의대생 대표, 수험생 대표 등과 함께 이주호 교육부 장관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의대 증원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서도 함께 제출했다.
이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이 고등교육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고등교육법 제34조는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입학연도의 1년10개월 전까지 공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5학년도 대입전형 계획이 지난해 4월 이미 발표된 만큼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의대 정원을 늘리도록 변경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법률대리를 맡은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는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변경하는 것은 고등교육법상 불가능하다"면서 "대학 입학 정원을 결정하는 자는 교육부 장관이며 복지부 장관은 협의대상일 뿐이다. 복지부 장관의 증원 결정은 무효이고 교육부 장관이 행한 후속 조치들 역시 당연 무효"라고 강조했다.
전공의들은 국제사회에도 지지를 호소했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6일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환자를 두고 병원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세계의사회는 세 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를 향해 규탄 성명을 냈다.
세계의사회는 지난 1일 "개인 사직을 막고 의대생들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잠재적인 인권침해로 위험한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했다. 이틀 후인 3일에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지도자들의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압수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권리 침해이자 민주주의 원칙 위반"이라고 했으며, 4일에는 "정부가 개인 사직를 막고 입학 조건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대전협은 ILO에 정부를 제소하며 긴급 개입도 요청했다. 대전협은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병원 복귀를 유도한 게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며 ILO 제29호 강제 또는 의무 노동에 관한 협약을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ILO 29호 제2조1항은 강제노동을 '어떤 사람이 처벌의 위협 하에서 강요받았거나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모든 노동이나 서비스'로 규정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대화와 타협으로 풀 수도 있었던 문제를 사법부와 국제기구의 판단에 맡기게 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은 바로 불통으로 일관해 온 정부에 있다"며 대전협을 거들었다.
◆ "행정소송 대상 안 되고 강제노동 타당성 인정받기 어려워"
정부는 전공의들의 행정소송이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정부 측 변호인은 지난 1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김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행정소송 첫 심문에서 "복지부가 보건의료정책 심의에서 (의대 증원)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교육부가 각 대학의 의대 증원 의사를 묻고 신청을 안내한 것은 (행정소송의 대상인) 행정처분이 아니다"고 했다. 고등교육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두고도 대입전형 공표 규정 예외적 사유에 해당하는 정원 조정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업무개시명령도 ILO 협약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의료서비스 중단은 국민의 생존과 안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국민의 건강과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정당한 조치"라며 "강제노동의 적용 제외 요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ILO 29호 제2조2항은 '국민 전체 또는 일부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이나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을 강제노동 적용의 제외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치열한 법리 공방을 예상하면서도 전공의들 손을 들어주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ILO에 공공의 생명과 안전과 관련해 예외로 둘 수 있는 조항이 있는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의사와 전공의는 종속적인 임금노동자의 속성을 갖고 있지만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으로 제소한 것이 아니고, 강제노동 금지 조항만 갖고 제소한 것이 타당성을 인정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찬 더프렌즈법률사무소 의료전문 변호사는 행정소송을 놓고 "정부에서 2000명 증원을 발표한 것만으로는 행정소송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추후 고시가 되거나 입법이 돼야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냉정하게 말해 정원 확대 당사자는 학교로, 소속 의사는 아니다"며 "소송 요건이 충족하지 않아 각하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변호사도 "소송 당사자가 직접적인 피해자일 때 소송이 가능하다"며 "잠재적 불이익이나 반사적 불이익으로 인한 것은 소송 대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이병철 변호사는 "대학의 입시요강은 수험생들을 위해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법률조항이 있다"면서 "이번 소송에는 수험생들이 포함돼 있어 인정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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