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모르는 수구꼴통이라고?”…변신 없었다면 200년동안 못 살아남았죠 [Books]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3. 1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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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포셋의 ‘보수주의’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트럼프 지지 여전 [EPA = 연합뉴스]
가상의 경기장을 상상해보자. 게임의 성패에 관람객의 전생애가 걸려 있다. 패자에게 희망은 없으므로 쟁취해야 할 건 승리뿐이다. 객석에 자리한 사람들은 이 피할 길 없는 위대한 싸움에 판돈으로 유권자로서의 한 표를 내건다. 한쪽엔 우파가, 다른 한쪽인 좌파가 착석한 이념의 경기장, 바로 정치(政治)다.

저 경기장을 응시하면서 경기장 오른쪽에 앉은 사람들, 즉 보수주의자의 역사와 미래를 전망한 걸작이 출간됐다. 영국의 정치 전문 언론인 에드먼드 포셋이 집필한 신간 벽돌책 ‘보수주의’다. 2022년 한국에 출간된 같은 작가의 책 ‘자유주의’가 경기장 왼쪽에 앉은 자유주의자에게 보내는 잘 벼린 칼날 같은 편지였다면, 이번 책 ‘보수주의’는 보수주의자를 향한 매력적인 경고음과 같다.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대다수 현대인이 우파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글로 책은 열린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는 좌파의 퇴조와 우파의 지배가 명징해진 시대다. 유럽의 좌파는 사실상 전멸 중이고, 세계 정치인들은 그저 생존이라도 하려면 우파의 지지를 얻어야만 한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보수주의이고, 뭐가 우파일까.

책은 정의한다. 보수주의란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에 호소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피하고 내일이 오늘과 같기를 바라는 욕구의 집약을 뜻한다. 보수주의자들은 확립된 권력을 신뢰하며 사회적 통일성의 가치를 믿는 자들이다. ‘권력은 대항권력의 저항을 받으며 모든 사람들이 능력, 지위, 재산과 상관없이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확신하는 자유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보수주의는 1830년대 이전까지 존재하지도 않았던 용어였다. 19세기초엔 몇 세기 동안 바닥을 기던 인구수와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로써 ‘자본주의적 근대’가 출현했다다. 세상은 흥분이 가득한 불안정한 사회로 바뀌었고, 과거 정치 얘기를 하는 이는 과거 수천 명에서 수백만 명으로 늘어났다. 혼란은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이란성 쌍생아를 잉태했다.

당시 자본주의적 근대는 자유주의적 근대였다. 금융의 용해를 두려워해 폐쇄적으로 대응했던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사회를 열어젖힐 강력한 가능성과 확신에 배팅했다. 지금은 자본주의가 보수주의와 친연관계이지만 애초에 자본주의를 끌어안은 건 자유주의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강제력과 부의 힘을 제한하길 원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 과정에서,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을 완화하길 바라는 일부 자유주의 정당과 타협하고 동맹했다. 1880년대부터 시작된 이러한 흐름은 1920년대 경제침체, 1940년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다시 변화했다. 보수주의는 ‘우파 자유주의’와 타협했고, 이때 보수주의의 주류에겐 집권이란 보상이 주어졌다. 1945년 이후 보수주의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 사회개혁과 복지정책은 중도우파가 승기를 잡은 것과 같았다.

신간 ‘보수주의’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면서 보수주의가 약속했던 정책의 재원은 소진됐다. 막대한 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중도우파는 ‘기업할 자유와 열린 국경’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당초 자유주의와 반목했던 보수주의가 ‘열광적인 자유시장주의’의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역사에는 마침표가 없는 법. 시간이 흘러 21세기 오늘날의 세계는 어떤가. 1980년대말 냉전의 종식으로 보수주의자들은 확정된 승리에 미소를 지었다. 주류 우파를 잠식하는 강경우파의 출현은 보수주의자들의 또 다른 변곡점이 됐다. 2010년 이후 출몰한 강경우파는 우파 유권자의 표를 갉아먹는 중이다. ‘중도우파는 유능하다’는 강력했던 인식이 허물어졌다. 그 틈을 타서 강경우파는 전열을 가다듬으며 맹렬하게 질주 중이다.

강경우파 정치인은 주장한다. 한때 강했던 자신의 나라가 쇠약해지는 중이라고. 강경우파는 언제나 국가의 쇠퇴를 가정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유명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초강대국 미국의 쇠퇴, 부식, 정체를 함축해낸 말이다. 그들도 ‘국민국가는 세계 안에 있고, 세계와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때 강경우파가 주장하는 세계성이란 ‘자국의 조건’을 따르는 전제 안에서의 질서다. 강경우파로 변질된 보수주의는 다자주의를 버렸다. 그들은 일방주의의 트랙을 선택했다.

저자는 이쯤에서 진단한다. “자본주의적 근대에 대해 보수주의가 지녔던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가 최근 강경우파의 부활로 나타났다”고 말이다. 그게 1830년대 이후 시작된 보수주의 200년의 역사다. 결론에 이르러 책은 묻는다. 강경우파 편에 서서 국가적 포퓰리즘의 ‘자비’에 기댈 것인지, 아니면 흔들리는 중도를 함께 재건할 ‘동맹’을 찾을 것인지를.

섬뜩할 정도의 놀라운 통찰력, 박식하면서도 우아한 문체는 이 책 ‘보수주의’의 가치를 더한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런던리뷰오브북스, 커커스리뷰 등 전세계 유명 언론의 찬사란 찬사는 다 받은 명저다. 원제 ’Conserva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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