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책… 입는 책… 혈액·인피로 만든 책… 별의 별 책들의 이야기
현존하는 서적 1억2986만권 중
괴짜 책들로 채운 도서관 만들어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
풍부한 사진자료 첨부해 책으로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에드워드 브룩 히칭/최세희 옮김/갈라파고스/3만3000원
1925년 미국에서 나온 책 ‘남부 이야기’는 페이지를 넘기려면 모터가 필요했다. 높이 2.08m, 펼쳤을 때 폭이 2.79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책은 2002년 나온 ‘세계에서 가장 작은 책’이다. 가로 2.4㎜, 세로 2.9㎜ 크기로 100파운드 가격에 300부가 팔렸다. 한 독일인 서적상은 이 책을 보다가 실수로 숨을 내쉬는 바람에 오후 내내 돋보기를 들고 바닥을 기어다니며 책을 찾았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이후에도 결정성 실리콘으로 만든 가로 0.07㎜, 세로 0.1㎜의 ‘나노 북’이 나오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려면 주사 전자 현미경이 있어야 한다.
신간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은 이처럼 기상천외한 책의 역사를 다룬다. 저자는 영국의 작가 겸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로, 희귀 서적상의 아들이다. 조상은 서지학 책을 쓴 인쇄업자다. 자연히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손을 잡고 경매장을 돌아다니며 ‘책의 늪’에 빠져 살았다.
세상에는 ‘책 아닌 책’이 있다. 인쇄술과 종이가 보편화되기 전에 기록수단으로 쓰인 뼈, 점토판, 도자기, 매듭 등이 대표적이다. 극한 환경에서 주변 사물을 기록수단으로 활용한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군 병사 솔로몬 콘은 자신의 바이올린에 전투 일지를 새겼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노르웨이 저항군인 페테르 모엔은 교도소 독방에 수감되자 휴지조각에 단어 모양대로 구멍을 뚫어 일기를 썼다.
2012년 랜드 로버는 두바이 고객을 대상으로 사막에서 기계가 고장 날 경우 생존을 도와줄 지침서를 발간했다. 먹을 수 있는 종이와 잉크로 만들어졌는데, 영양가가 치즈버거에 버금간다고 한다. 제본의 금속 철을 빼서 요리용 꼬치로 사용할 수 있고, 반짝이는 포장지는 구조 요청에 쓸모 있게 제작됐다. 2018년 미 미시간대학교가 10부만 구매한 ‘미국 치즈 20장’은 헝겊 표지에 슬라이스 치즈 20장을 엮었다.
동식물이 아닌 인간의 살과 피로 만든 책도 있다. 인피 제본의 역사는 적어도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확인된 인피 제본서는 대부분 1600년대 후반부터 1800년대 후반 사이 제작됐다. 18∼19세기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인피제본술은 살인 범죄, 의학 연구 문헌을 출판할 때 용인되는 장식이었다.
‘혈서’는 좀 더 보편적이다. 최근의 사례로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있다. 그는 1997년 60세 생일에 자신의 피로 코란을 몽땅 필사할 것을 명했다. 2년간 후세인의 피 약 27ℓ와 화학물질을 혼합한 잉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책은 이렇게 ‘이상한 책’을 10개 분야로 나눠 자세히 소개한다. 소개되는 책들의 방대함과 다양한 사진 자료 자체로 ‘희귀본 도서관’이라고 할 만하다. 저자는 이 책들의 의의에 대해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책이 구현할 수 있는 세계를 다시 정의한다”며 “우리가 책을 사랑하는 방식을 고유한 언어로 다시 쓰면서 감각을 확장한다”고 강조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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