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복사꽃 피면 놀러 와
퇴임 이후 농촌에 정착한 부부
내 고향서 기다려 주는 사람들
아이들은 그런 고향이 사라져
복사꽃 피면 놀러 와, 내가 태어난 경산 와촌을 지키는 호준 오빠의 말이다. 법대를 나오고 법학 석사까지 졸업한 오빠이지만 출생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주소를 옮겨본 적이 없다. 아직도 복숭아 농사를 짓고 풀과 씨름하며 평생을 살았다. 발까지 절뚝이게 될 만큼 힘겹게 과실 농사를 지어서 복숭아 70상자는 지인들에게 그저 나눠 먹는다고 한다. 살면서 신세진 사람이 많아서 그렇다고 겸연쩍어하지만 그 넉넉한 마음이 읽힌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그때의 서사와 함께 사과밭은 사라지고 이제 경산 와촌엔 복숭아와 살구가 흔하다. 살구꽃은 사나흘밖에 볼 수 없지만 복사꽃은 그래도 열흘 정도 볼 수 있으니 복사꽃 필 때 와. 호준 오빠는 50년을 넘기고야 처음으로 고향을 찾아온 우리 자매들에게 그렇게 당부했다. 기억이 많은 언니들은 그곳 새벽에 대해 자주 얘기했다. 양철 대야에 줄을 묶어 강물에 띄우고, 큼지막한 조개를 주워 담을 때마다, 딸그락거리던 그 소리가 아침을 깨웠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아름다운 강 풍경을 그리게 했다.
팬데믹 시기 동안 집안에 갇혀 지내며 옛집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있을 즈음, 내가 태어난 집의 현재 소유주께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집이 너무 춥고 낡아서 새로 짓게 되었는데, 시인의 ‘기억의 장소’를 지우게 되어 안타깝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집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들과 1970년대의 항공사진까지 첨부했다. 옛 추억을 끌어내 보라고 당부하며 보내온 몇 장의 사진을 앞에 놓고 나는 잠깐 긴장했다. 내가 과연 이런 살뜰한 응원을 받을 자격이 있기나 한 걸까.
부동산 중개업자의 유혹으로 뜻하지 않게 과한 땅과 이 집을 사게 되어 벅찬 일들이 많았으나, 시인이 태어난 집이라는 것으로 새 애정이 생겼다는 그분은 모 대학 국어교육학과 퇴임 교수다. 맛깔스러운 다과를 준비하고 바쁘게 커피를 내리는 다정한 부부의 모습 너머로 이들이 조성한 산수유 군락의 너른 들판이 내다보인다. 어릴 때의 다락방에 대한 로망으로 2층을 다락형으로 지었다는 주인의 정서까지 나와 비슷하여 내가 첫울음을 터뜨린 공간에 사는 그들에게서 남다른 유대감을 느꼈다.
살갑게 배웅하며 산수유 피면 놀러 와요, 이렇게 내게 꽃으로 부르는 그들이 있다. 나만 누리는 행복 같아서 내친김에 아이들의 출생지를 한번 찾아보았다. 등본을 하나 떼서 손에 들고 구글 지도로 검색해 가며 더듬어간 아이들의 출생지는 아쉽게도 그곳에 없었다. 아이들이 모여 놀던 비탈진 골목도 사라지고, 성당 가는 좁은 길의 석류나무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도미노 놀이를 하기 위해 세워 놓은 블록처럼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자리 잡았다. 도시의 널찍한 포장도로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들 대신 내가 크게 상실감을 느꼈다. 아이들은 이제 한 번쯤 돌아가고 싶은 그곳이 없겠구나. 석류꽃 피면 놀러 와, 이렇게 말해 주며 기다려 주는 이도 없겠구나. 여기까지 생각하니 문득 어디론가 돌아가서, 꽃을 이유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천수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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