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부부에 아이 주신 '의느님', 그런데 정자가 바뀌었습니다

전아름 기자 2024. 3. 1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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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탐사그룹 셜록 박상규 기자, C대병원 이 교수 "엉뚱한 정자로 아이 만들고 알면서 모른 척"

【베이비뉴스 전아름 기자】

부모는 모두 B형인데 시험관 시술로 태어난 아이가 A형이라면 무슨 생각을 할까. 정상적인 경우라면 B형이나 O형이 나와야 한다. 천지가 두쪽나도 A형은 못나온다. 아내는 임신 후 줄곧 병원에 입원해있었고, 하늘에 맹세코 절대 부정한 일은 없었다. 시험관 시술을 담당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종종 이렇게 돌연변이가 태어나기도 합니다. 걱정할 것 없어요" 삼신할머니도 못주신 아이를 부부에게 주신 '의느님'의 말인데 감히 의심을. 부부는 "그러려니" 애지중지 키웠다. 그리고 아들이 25세 되던 해 유전자검사를 해봤다. 엄마 쪽 유전자는 있지만 아빠 쪽 유전자는 없다. 25년 전 그날, '의느님'은 엉뚱한 사람의 정자로 아이를 만든 것이다.

28년 전, 시험관시술의 명의로 알려진 C대병원 이 교수가 정자를 바꿔 시술해 아이를 낳게 하고도 평생을 모른 척 속여온 사실이 셜록 취재 결과 밝혀졌다. 이 교수는 "아이의 혈액형이 왜 부모와 다르냐"는 질문에 "돌연변이"라고 대답했다. ⓒ베이비뉴스

이 내용은 지난 12일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취재해 공개한 '엉뚱한 정자로 시술, 20년 속인 산부인과 의사 '잠적''의 일부다. 이 사건을 꾸준히 취재해온 박상규 셜록 기자는 1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자세한 상황을 전했다.

박상규 기자에 따르면, 피해자 부부는 시험관 시술로 낳은 아들이 다섯 살이 됐을 때 간염항체 검사를 위해 소아과를 찾았다. 그때 처음 아들이 A형이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부부는 자신들의 '의느님' 이 교수를 만나 문의했고, 이 교수는 "시험관 시술을 하면 종종 혈액형 돌연변이가 나온다. 안심하고 그냥 잘 키워라. 당신들 아이가 맞다"고 말했다. 

박상규 기자는 방송에서 "부부는 아이가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 왜 부모와 혈액형이 다른지 설명해주려고 교수한테 연락해 '예전에 말씀하신 돌연변이 자료를 달라'고 부탁했다. 그 연락 이후 이 교수가 잠적했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고의인지 과실인지 따져봐야겠지만 어쨌든 타인의 정자를 사용한 거고, 백번 양보해서 실수라고 쳐도 왜 혈액형이 다르냐고 물었을때라도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평생을 속였다"고 말했다.

박상규 기자와 셜록 취재팀은 모든 연락을 받지 않고 잠적한 이 교수를 8개월간 끈질기게 추적했다. 그리고 기어이 이 교수를 만났다. 진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은 이 교수 뿐이다. 박상규 기자가 만난 이 교수는 "내가 (피해자 부부) 20년 동안 진료해줬는데, 기억 난다. 여자분이 아주 좋은 분이다. 그런데 시험관 시술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게 없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내가 이제와서 뭘 어떻게 검증해줄 수가 없다"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셜록 취재 결과 현재 이 교수는 2018년 병원 은퇴 의료 현장을 떠났다. 따로 개업한 병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14일 MBC라디오'김종배의 시사집중'에 출연해 이 사건의 전말을 알리는 박상규 셜록 기자. 라디오 영상 갈무리. ⓒ베이비뉴스

박상규 기자는 김종배의 시선집중 방송에서 "병원은 안타깝게도 철저히 사실을 은폐하고, 검증에도 나서지 않으며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며 "병원은 해당 교수와 연락이 안되기 때문에 우리가 사실검증을 할 수가 없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당신네 의료기록도 없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뭔가를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지만, 취재 결과 거짓이다"라고 밝혔다.

박 기자는 "의료기록을 확보했다"고 전하며 "다만 저희가 따로 어떤 방법으로 확보한 게 아니라 당사자만 뗄 수 있기 때문에 그 당사자가 직접 원무과에 가서 뗐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부부는 지난해 봄 이 교수와 병원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소멸시효 문제가 걸린다. 우리나라에서 소멸시효는 사건 발생한 날로부터 10년, 그 피해사실을 인지한지 3년 내에 제기를 해야한다. 

박상규 기자는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이건 다른 피해자가 존재할 수 있는 사건"이라며 "피해자의 정자가 다른 부부에 쓰였을 수도 있고, 임신에 성공했다면 문제고 실패했더라도 병원에 과실이 있는데 병원이 손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박상규 기자는 "그 아들도 이 사실을 안다. 그는 이 사건의 진실이 드러난다고 해서 우리 가정이 해체되는 일은 없다. 나는 우리를(둘째딸도 같은 교수가 시술해 태어났다. 둘째와 부모의 유전자는 일치한다) 키워준 부모님이 나의 부모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그게 한국의 병원과 의사의 윤리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이어 박 기자는 "의료계의 이런 사고의 경우 소멸시효에 예외규정이 있으면 좋겠고, 세계 곳곳에서 시험관 시술, 인공시술 과정에서 관리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기준이 좀더 명확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제기했다. 

해당 기사 전문과 병원과 의사 실명은 셜록 사이트에서 볼 수 있고, 박상규 기자가 출연한 김종배의 시선집중은 유튜브 MBC라디오시사 채널에서 다시보기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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