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선택지 없었다”…용주골 집창촌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밀착취재]

윤준호 2024. 3. 1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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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곤궁으로 용주골 온 성매매 종사자들
가정폭력, 빚 독촉으로 저마다 시련 겪었지만
육아 이후 내 집 마련, 제주 살기 등 소박한 미래 꿈꿔
“보통 사람들이 꿈이 없진 않잖아요. 여기 사람들도 그래요. ‘아이 대학까지만’ ‘전세자금 마련할 때까지만’ ‘부모님 병원비 갚을 때까지만’ 여기서 일하겠다는 거예요.”
 
경기 파주시 파주읍에는 ‘용주골’이란 이름이 붙은 집창촌이 있다. 여기에 성매매 종사자 85명이 살고 있다. ‘몸 팔아서 쉽게 돈 벌려는 사람’ ‘감금·강간 피해자인데 스스로 피해자인 줄도 모르는 사람’ ‘꿈도 희망도 없는 막장 인생인 사람’. 이들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누구인지, 왜 용주골에 오게 됐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용주골에서 성매매 종사자로 살게 됐을까. 세계일보는 15일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종사자들에게는 가정폭력에 노출되고 빚을 떠안는 등 성매매라는 길로 오게 한 아픈 과거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꿈’이 있다고 했다. 시련을 겪었을지언정,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노라고 했다.

지난 8일 오전 찾은 경기 파주시 용주골 일대 모습이다. 윤준호 기자
◆“학자금대출 갚고 나갔지만 이번엔 아버지 병원비”

별이(활동명)씨는 10년 차 ‘아가씨’로 용주골 성매매 종사자 모임 자작나무회를 이끌고 있다. 그가 처음 이쪽 업계에 발을 디딘 건 ‘학자금대출’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학자금대출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을 때였다. 대학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도 달마다 돌아오는 상환일이면 초조해졌다. 하루만 늦어도 채권추심 회사로부터 독촉 전화가 왔다. 방 한칸 월세방에서 친구 3명과 아등바등 살아도 녹록지 않은 삶이었다.

결국 룸살롱에 나가게 됐다. 원래 하던 아르바이트보다 수입은 나아졌지만, 술을 못하는 그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술에 취해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손님은 특히 고역이었다. 얼마 뒤 같이 일하던 언니 소개로 ‘용주골’을 알게 됐다. 술도 안 마셔도 되고 만취한 손님은 거부해도 된다고 했다. 심지어 숙식도 제공했다. 

일한 지 5년이 됐을 무렵, 그는 용주골을 떠났다. 학자금 대출을 다 갚고 돈도 어느 정도 모았다. 이번엔 아버지의 암이 문제였다. 수술비, 입원비, 간병비 등 나갈 돈은 많은데 저축은 금방 동났다. 결국 용주골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5년을 더 일했다. 별이씨는 “3∼4년을 항암 치료받는 아버지 뒷바라지를 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새벽 별이(활동명)씨가 경기 파주시 용주골에 위치한 업소로 출근하는 모습이다.  별이씨 제공
◆“아이들이 쉬러 올 수 있는 ‘엄마집’ 마련이 꿈”

40대 최모씨는 용주골에 온 지 8년 됐다. 그가 아가씨로 일하기로 마음먹은 건 두 아이 때문이었다. 사업을 하던 남편과 아이를 키우며 살면서 빚이 자꾸 늘었다. 어느 날은 사람들이 남편이 일당을 주지 않았다며 집으로 찾아왔다. 이것만 해결하면 되겠다 싶었지만, 친구와 가족에게 빌린 돈은 이미 많았다. 카드로 돌려막을 수 있는 금액도 아니었다. 자동차세와 보험료, 이동통신사 요금도 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혼하고 아이 둘만 데리고 나왔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1억원 넘게 쌓인 빚을 갚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최씨는 한달여를 수소문해 용주골을 찾아갔다. 7년의 직장 생활을 하며 성매매에 종사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무서웠지만 ‘내 몸을 파는 게 지금 삶보다 낫겠다’ 싶었다”며 “나만 참으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과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용주골로 울면서 출근한 첫날을 기억한다고 했다.

최씨는 까마득해 보이던 빚을 재작년에 다 갚았다. 첫째는 대학교 2학년이 됐고 둘째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아이들 대학 보내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던 그는 이제 아이들이 살다가 지치면 쉬러 올 수 있는 ‘엄마집’을 마련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최씨는 “처음부터 여기 온 이유가 개인적으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보자는 게 아니었다”며 “앞으로 내 목표는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파주읍행정복지센터가 경기 파주시 용주골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를 철거하려고 하자 성매매 종사자들이 이를 막고 있다. 윤준호 기자
◆사회 ‘낙오자’들이 꾸린 공동체…재개발로 철거 예정

“슬픈 이야기 하나 해줄까요? 밥해주는 주방 이모가 그러는데 여기 온 아가씨들 처음에 밥 먹는 모습만 봐도 집에서 사랑받고 자라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대요. 어릴 때부터 눈치 보고 자라서 반찬이 얼마 안 남으면 더 먹지를 못하는 거예요. 

별이씨는 용주골 아가씨 대부분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라고 했다. 최종학력이 고졸 이하이거나 보육원이나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적잖은 이들은 정신질환이나 신체질환을 앓고 있다. 별이씨는 “남보다 더한 가족과 함께 살면서 몸과 정신이 망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일반적인 직장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 시대에 밥 굶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여기 사람들 보면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런 사람들이 여기선 돈을 벌고 ‘이모’나 ‘삼촌’(업주)들과 일종의 공동체를 꾸려 살고 있다. 이들은 돈 달라고 닦달하는 오빠를 피해 도망 온 아가씨를 지켜준다고 했다. 오빠는 동생을 찾아왔다가 험악한 삼촌들의 으름장에 다신 찾아오지 않는다. 아가씨가 몸이 아프다고 하면 일 나오지 말고 병원에 가라고 타이른다.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아가씨들은 만나면 어린이집은 어디가 좋은지, 학원은 어디를 보내야 하는지 수다를 떤다. 여느 엄마들과 다를 바 없다. 

지난 8일 찾은 경기 파주시 용주골 농성장이다. 종사자들은 “충분한 시간 없이 내쫓기고 있다”며 파주시청을 규탄했다. 윤준호 기자
그들의 일은 위법이다. 그러나 어디서도 둥지를 틀지 못한 ‘낙오자’들은 이렇게 자기들만의 세상을 꾸리고 살고 있다.

파주시청은 지난해 1월 용주골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종사자들은 업소 건물 1개 동을 농성장으로 만들어 철거를 막고 있다. 그들은 철거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사회로 돌아갈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는 것이라고 읍소했다. 최씨는 “자립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모아 나가려 했는데 시청의 감시로 지난 1년간 돈을 벌 수 없었다”며 “동두천 집창촌은 충분한 유예 기간을 주고 자진 폐쇄를 유도했다는데 여긴 그런 여유를 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여기서 사는 아가씨 중에 당장 밖에서 집을 살 수 있는 돈이 없으면 깜깜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세상의 따가운 시선에도, 그들은 꿋꿋하다. 끈질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난 별이씨는 마흔이 넘어서야 온전히 자신만의 것인 삶을 그리고 있다. 그는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몰라서 이것저것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돈 주고 부동산 강의를 듣기도 한다. 별이씨는 “이제는 내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며 “제주도에 언제든 가서 쉴 수 있는 방 하나를 살 것”이라고 포부를 말했다. 행복한 표정이었다.

[반론보도] 「파주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철거」 밀착취재 기사들 관련
 
본보는 지난 3월 8일 자 「"우린 한때 애국자" 용주골 철거 막는 성매매 종사자들 [밀착취재]」 제목의 기사를 비롯한 다수의 기사를 통해, 파주시청과 성매매 종사자들 간의 갈등 내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파주시청 측은 “집결지 폐쇄를 위해 성매매피해자, 업주 대표 등과 충분히 면담을 실시하였으며, ‘파주시 성매매피해자 등의 자활지원 조례’를 제정하여 자립기반 마련을 위한 생계비, 주거비, 직업 훈련비, 자립 지원금 지급 등의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그리고 파주시 성매매 집결지 폐쇄 정책은 ‘용주골 지우기’가 아닌, 여성들에 대한 성착취를 멈추고 성매매피해자의 건강한 사회 복귀를 위함이며, 집결지 폐쇄 이후에는 이곳을 여성 폭력에 대한 기억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문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파주=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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