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익 없다” 佛 혁명 불만으로 태동 자유주의 반대론 돌아서며 ‘급성장’ 19세기 말 물질적 진보 등 받아들여 제3기엔 사회개혁·복지정책 수용도 중도 민심 경청하며 ‘우파 시대’ 열어
보수주의/에드먼드 포센/장경덕 옮김/글항아리/4만2000원
1789년 7월 14일 아침, 파리 시민들이 무기를 탈취하기 위해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루이 16세와 왕당파가 제헌국민의회를 무력 진압하기 위해서 군대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였다. 감옥을 점령한 시민들은 파리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자치위원회와 민병대를 조직했다. 마침내 프랑스혁명이 발발했다.
혁명은 기본적으로 구체제의 모순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인구 2% 정도밖에 안 되는 제1계급 성직자와 제2계급 귀족이 국토의 40%를 차지하고 부와 권력을 독점한 반면, 인구의 98%를 차지하던 제3계급 평민은 부와 권력에서 배제된 채 무거운 세금에 허덕였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은 결국 구체제를 무너뜨렸고, 이어진 나폴레옹 전쟁과 함께 유럽 전역에 거센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열풍을 낳았다.
하지만 혁명 이후 공화정과 군주정 사이의 잇단 체제 변화는 물론 대외전쟁까지 이어지면서 극심한 혼란 역시 야기했다. 혁명과 근대화에 대한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대표적인 인사가 바로 더블린 출신의 영국 정치인이자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와 프랑스계 이탈리아 귀족이자 사상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였다.
버크는 혁신적 변화와 급진적 경제 개혁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급진적 변혁은 기존 질서의 파괴와 혼란만을 초래할 뿐 실익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근저에는 사람들이 스스로 통치할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프랑스혁명군이 고국을 침범하자 피란길에 올랐던 메스트르는 혁명을 비판하고 절대군주제를 옹호했다. 혼란스러운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권위가 필요했고, 신정(神政)이야말로 최선의 정부형태라고 주장했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상대적인 의미를 가지면서 막연했던 보수주의가 전면으로 부상한 순간이었다.
다만 버크와 메스트르는 매우 달랐다. 버크는 정치에서 당파와 논쟁, 불일치를 허용하는 등 훨씬 개방적이었다. 그의 보수주의는 영국과 미국 보수주의로 이어지며 균형감과 사실에 대한 개방성, 세상 물정에 밝은 능숙함을 물려줬다. 메스트르의 경우 “모든 정부는 전제적이다. 선택은 복종하거나 반역하는 것뿐”이라고 하는 지독한 흑백논리와 극단적 대비를 펼치면서 맹목적 열정으로 치달았다. 그의 반이성주의적 유산은 조르주 소렐, 카를 슈미트를 거쳐서 권위주의적이고 비자유주의적인 보수주의, 강경 우파로 이어졌다.
프랑스혁명에 대한 저항으로 탄생한 보수주의는 1830년부터 1880년대까지 첫 시기에는 주로 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에서 길을 찾았다. 보수주의 사상가로 존 캘훈, 프리드리히 슈탈, 새뮤얼 콜리지 등이 활약했다. 특히 영국의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보수주의를 자유민주주의에 적응하도록 이끌면서 집권에 성공하기도 했다.
주류 보수주의자들은 19세기 말이 되자 노동조합주의와 사회민주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 우파 자유주의자들과 손잡고 선거민주주의는 물론 자본주의와 물질적 진보를 받아들였다. 이 같은 타협은 보수주의자들에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1880년부터 1945년까지 적응과 타협의 제2기에 정당정치 세력으로 생존하고 승리하도록 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선거 민주주의는 받아들였지만, 분배를 강조한 경제적 민주주의엔 완강히 저항했다. 아예 타협을 거부하는 우파들은 포퓰리즘이나 권위주의로 타락했고, 심지어 파시즘이나 나치즘과 어울렸다.
보수주의는 1945년부터 1980년까지 제3기엔 기존 정치 분야를 넘어서 사회개혁과 복지정책도 받아들이며 자유주의적 평등과 타협했다. 1970년대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다시 기조를 수정, 기업할 자유와 작은 예산, 열린 국경을 주장하며 자유시장주의를 채택했다. 이 시기 프랑스의 드골과 독일 아데나워, 영국의 대처, 미국 레이건 등이 보수주의를 이끌었다.
자유주의적 우파는 1980년 이후 정부와 공론을 지배했지만 스스로 성공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주로 중도에서 통치하면서 자신들의 색깔을 잃었고, 자유민주주의적 요구가 늘어남에 따라 타협에 따르는 비용도 지불해야 했다. 이때 오른쪽에서 사회적 다양성을 부정하고 타자에 대한 낙인찍기를 하고 배타적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강경 우파가 빠르게 세력을 키웠다. 프랑스의 마린 르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대표적이다. 바야흐로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와 강경 우파가 패권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영국 언론인인 저자는 신간 ‘보수주의’에서 프랑스혁명 이래로 본격화하기 시작한 보수주의를 시기별로 네 개의 단계로 구분해 추적했다. 주로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4개국을 중심으로 주요한 정치 변동과 함께 주요 사상가를 살펴보면서 보수주의 역사 전체를 조망했다. 특히 과소평가된 보수주의 인물을 재평가하고, 최근 급부상한 강경 우파의 시초가 되는 인물도 찾아내 재조명한다.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은 시대 변화와 중도층 민심을 직시하면서 변화를 거듭한 끝에 자유주의자들을 밀어내고 우파의 시대를 열었다며 현재 “우리는 우파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보수주의의 변신은 시대 변화에 민감하고 중도층의 목소리를 잘 들어 실행에 옮기는 역량 있는 정치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한다. 가령, 영국의 디즈레일리는 중산층 정서를 파악하는 ‘완벽한 귀’를 가졌고, 미국 레이건은 분열된 나라의 목소리를 듣는 ‘섬세한 귀’를 지녔다.
다만 자유주의적 우파가 포퓰리스트와 자유지상주의자가 뒤섞여 정책적으로 여러 모순에 휩싸인 강경 우파의 득세 속에 점점 약화하고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보수주의 위기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보수주의자들의 앞에는 지금 다음과 같은 선택이 놓여 있다고 강조한다. “보수는 강경 우파 편에 서서 자유민주주의를 통제받지 않는 시장과 국가주의적 포퓰리즘의 자비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흔들리는 중도를 함께 재건할 동맹을 찾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