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 위에서 진동하는 선들의 장면… 연결 짓고 지워내며 세계를 만들다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타임랩스:어느 시간에 탑승하시겠습니까?’
전시서 수심·비옥한 땅·옥수수의 기억 선봬
인체·풍경·형상·배경 유기적 뒤섞임에 주목
그리는 행위, 어두운 숲 더듬어 가는 감각 비유
회화의 도구 들고 미지의 형상 찾아가는 일
숲은 ‘자신의 내면’인 동시에 모호함의 세계
◆진동하는 선들의 총체적 화면
전체의 화면은 내부의 세세한 도상들을 추적하기에 앞서 하나의 덩어리진 이미지로서 목격된다. 유년기 고향의 마른 식물이 타는 냄새에 대한 기억이 특정한 하나의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 것처럼, 그 자신조차 스스로 무엇을 떠올리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거듭 꺼내어 보는 코끝의 감각처럼 말이다. 박광수의 선은 형상과 배경을 흐트러뜨리는 동시에 연결짓고, 정제하듯 뒤섞고, 그리듯 끝없이 지워 내면서 그만의 세계를 구축해 간다.
지난 13일 막을 내린 페이스갤러리 서울의 전시 ‘타임랩스(Time Lapse): 어느 시간에 탑승하시겠습니까?’(2024년 2월15일∼3월13일)에서 그의 근작 ‘수심’(2024)과 ‘비옥한 땅’(2023), ‘옥수수의 기억’(2023) 등 3점이 선보였다. 맹지영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김정욱, 김진희, 류노아, 박광수, 서용선, 이우성, 이재헌, 정수정 등 회화작가 8인을 조명한 단체전이다. 전시는 다양한 세대의 참여 작가가 지금의 시간을 통과하는 방법에 관하여 질문하는 한편 박광수의 인체와 풍경, 나아가 형상과 배경의 유기적인 뒤섞임에 주목했다. 그의 화면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하는 40대 초반 작가의 내면”이자 “불완전한 상태의 시간성”을 내포한 표현으로 바라보면서다.
박광수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어두운 숲을 더듬어 가는 감각에 비유한다. 발견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와 사건들이 서식하는 대지 위에서, 회화의 도구를 손에 들고 미지의 형상을 찾아 나가는 일이다. 숲은 그 자신의 내면인 동시에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함의 세계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이자 상상과 현실이 뒤엉킨 불완전한 시공을 가리키는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무채색만을 사용하던 초기 화면에서, 작가는 묘사된 대상의 생성 및 소멸의 과정에 관심 갖는 한편 평면 회화의 시각적 깊이를 사색적으로 탐구하는 데 몰두했다. 화면에 부유하는 선들의 암시적 운동성은 애니메이션 영상으로의 번안을 통해 가시화되기도 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본인이 처한 가혹한 상황을 감내해 내고” 있으며 그 결과가 “대부분 실패”일지라도 괘념치 않는다. 창작의 이유에 관하여, 그 행위의 가치에 대하여 끝없이 자문해야 하는 작가의 마음이 꼭 그렇지 않을까.
찰나의 시간 둥글게 지나간 붓의 우연한 궤적은 이제 쉽사리 닳아 없어지지 않을 돌멩이의 영원한 그림자로 변모하여 화면 위에 머문다. 삶 속 거듭되는 그리기의 여정 속에서, 수없이 그어내는 선들 가운데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그러한 돌멩이 하나의 부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회화의 화면을 매개 삼아 생성되는 관계들, 작더라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여러 마음의 무게들 말이다. 생겨남과 사라짐을 수없이 반복하는 삶의 전경 가운데 고요하게 내려앉은 돌멩이를 애틋이 주워 담는 몸짓으로서.
박미란 큐레이터·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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