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 위에서 진동하는 선들의 장면… 연결 짓고 지워내며 세계를 만들다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2024. 3. 1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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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 색채로 뜨거운 숲, 탐험하는 몸
‘타임랩스:어느 시간에 탑승하시겠습니까?’
전시서 수심·비옥한 땅·옥수수의 기억 선봬
인체·풍경·형상·배경 유기적 뒤섞임에 주목
그리는 행위, 어두운 숲 더듬어 가는 감각 비유
회화의 도구 들고 미지의 형상 찾아가는 일
숲은 ‘자신의 내면’인 동시에 모호함의 세계

◆진동하는 선들의 총체적 화면

“내가 자란 곳에서는 마른 식물이 타는 냄새가 났다. 논과 밭이 많았던 마을의 사람들은 가을을 지나 겨울 끝 무렵 다음 농사를 위해 곡식을 수확하고 남은 볏단이나 마른 식물들을 논, 밭두렁과 함께 태우는 일을 했다. … 그 젖고 마르기를 반복한 식물이 타는 냄새는 흙, 해충, 그들의 마음과 섞여서 더 넓고 진하게 마을을 가득 채웠다. 찬바람과 함께 밀려오는 연기의 깊고 어두운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던 기억이 있다.”
왼쪽부터 박광수의 ‘비옥한 땅’(2023), ‘옥수수의 기억’(2023), ‘수심’(2024). 맹지영 큐레이터가 기획한 단체전 ‘타임랩스(Time Lapse): 어느 시간에 탑승하시겠습니까?’(2024, 페이스갤러리 서울)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 제공
박광수(40)가 2023년의 개인전 도록 서두에 실은 글귀다. 수년간 그의 회화가 선보인 것은 늘 평면 위에서 진동하는 선들의 총체적 장면이었다. 박광수의 화면은 만들어지는 도중의 세계이고, 떠올리는 과정 중의 이미지다. 화면 속 선들은 수평적 넓이로나 수직적 깊이로의 나아감을 끝없이 암시하는 동시에 특정한 순간 안에 박제된 채다. 연속될 듯 결코 그렇지 않은 모호한 상태의 감각으로서, 드러날 듯 더 이상 드러나지 않는 정체로서.

전체의 화면은 내부의 세세한 도상들을 추적하기에 앞서 하나의 덩어리진 이미지로서 목격된다. 유년기 고향의 마른 식물이 타는 냄새에 대한 기억이 특정한 하나의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 것처럼, 그 자신조차 스스로 무엇을 떠올리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거듭 꺼내어 보는 코끝의 감각처럼 말이다. 박광수의 선은 형상과 배경을 흐트러뜨리는 동시에 연결짓고, 정제하듯 뒤섞고, 그리듯 끝없이 지워 내면서 그만의 세계를 구축해 간다.

지난 13일 막을 내린 페이스갤러리 서울의 전시 ‘타임랩스(Time Lapse): 어느 시간에 탑승하시겠습니까?’(2024년 2월15일∼3월13일)에서 그의 근작 ‘수심’(2024)과 ‘비옥한 땅’(2023), ‘옥수수의 기억’(2023) 등 3점이 선보였다. 맹지영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김정욱, 김진희, 류노아, 박광수, 서용선, 이우성, 이재헌, 정수정 등 회화작가 8인을 조명한 단체전이다. 전시는 다양한 세대의 참여 작가가 지금의 시간을 통과하는 방법에 관하여 질문하는 한편 박광수의 인체와 풍경, 나아가 형상과 배경의 유기적인 뒤섞임에 주목했다. 그의 화면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하는 40대 초반 작가의 내면”이자 “불완전한 상태의 시간성”을 내포한 표현으로 바라보면서다.

박광수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대학 조형예술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간 학고재(2023; 2019), 두산갤러리(2018; 2017), 금호미술관(2016), 신한갤러리(2015), 인사미술공간(2012)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페이스갤러리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인천아트플랫폼, 송은, 스페이스K, 하이트컬렉션, 대림미술관, 성곡미술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등 기관이 연 단체전에 참여하였으며 제주비엔날레(2022),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2021), 창원조각비엔날레(2020)에 출품했다. 제5회 종근당 예술지상과 제7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및 정부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두산아트센터 외 다수의 기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구리와 손’(2023) 앞의 박광수. 학고재 제공
◆색채로 뜨거운 숲, 탐험하는 몸

박광수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어두운 숲을 더듬어 가는 감각에 비유한다. 발견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와 사건들이 서식하는 대지 위에서, 회화의 도구를 손에 들고 미지의 형상을 찾아 나가는 일이다. 숲은 그 자신의 내면인 동시에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함의 세계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이자 상상과 현실이 뒤엉킨 불완전한 시공을 가리키는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무채색만을 사용하던 초기 화면에서, 작가는 묘사된 대상의 생성 및 소멸의 과정에 관심 갖는 한편 평면 회화의 시각적 깊이를 사색적으로 탐구하는 데 몰두했다. 화면에 부유하는 선들의 암시적 운동성은 애니메이션 영상으로의 번안을 통해 가시화되기도 했다.

화면 속 세계에 색채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2021년경부터다. 그는 “그림에서 색들이 충만하게 매혹적이기도 위협적이기도 하며 서로 간의 강렬한 충돌로 그 세계가 극단적이길 원한다”고 고백한다. 색이 쏟아내는 감각 및 감정이 화면 위 세계를 장악함에 따라 숲속 더 많은 존재들이 조금 더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유채물감으로 그린 다색의 화면 위에서 박광수는 그리는 선만큼 지우는 선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채에 비해 건조가 느린 유채물감은 화면 위 유연한 상태로 오래 머무르는 탓에 그 위를 지나는 붓의 궤적에 따라 긁히고, 밀려나고,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물감을 점토처럼 주무르며 형상을 빠르게 세우고 무너뜨리기를 거듭한다. 붓은 뜨거운 숲을 헤쳐 길을 내듯이, 때로 노를 젓듯이 회화의 표면을 가로지른다.
박광수, ‘돌 줍기’(2022). 학고재 제공
선으로 우거진 숲속에서 종종 사람의 형상이 떠오른다. 인물은 때로 선명하게 드러나고 때로 배경의 어귀로 녹아 번진다. 근작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딘가를 응시하며 사색하거나, 알과 같은 덩어리를 들어 옮기거나, 돌을 줍거나, 흙을 긁어모으는 등 저마다 나름의 생산적인 몸짓을 수행하는 모습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본인이 처한 가혹한 상황을 감내해 내고” 있으며 그 결과가 “대부분 실패”일지라도 괘념치 않는다. 창작의 이유에 관하여, 그 행위의 가치에 대하여 끝없이 자문해야 하는 작가의 마음이 꼭 그렇지 않을까.

유난히 커다란 손발로 자신의 세계를 활보하는 인물은 종종 허리를 숙여 땅 위에 놓인 돌을 줍는다. 돌 줍는 사람의 모습은 다른 많은 도상과 마찬가지로 복수의 화면 위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유기적인 화면의 색채 덩어리로부터 갈라져 나온 존재들이 서로를 새롭게 발견하고 제 손에 주워 담아 또 다른 관계가 된다. 박광수가 자신의 드로잉 연작 ‘크래커’를 엮어 2021년 펴낸 동명의 화집 끝자락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어 두었다.
박광수, ‘돌 줍기’(2023). 학고재 제공
“돌을 쥐고 있으면 손을 잡은 것 같아. 엄마가 남겨준 돌들이 있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돌은 흰색인데 정확히 흰색이라기보다 반투명한 트레싱지 같은 색이다. 10살 정도 되는 아이의 주먹만 한 크기고 무게가 좀 있어서 들고 있으면 손이 살짝 눌리는 기분이다. 누군가의 손을 잡은 느낌. 마음이 불안해서 갈피를 못 잡을 때 마음을 눌러두려 잡고 있다.”

찰나의 시간 둥글게 지나간 붓의 우연한 궤적은 이제 쉽사리 닳아 없어지지 않을 돌멩이의 영원한 그림자로 변모하여 화면 위에 머문다. 삶 속 거듭되는 그리기의 여정 속에서, 수없이 그어내는 선들 가운데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그러한 돌멩이 하나의 부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회화의 화면을 매개 삼아 생성되는 관계들, 작더라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여러 마음의 무게들 말이다. 생겨남과 사라짐을 수없이 반복하는 삶의 전경 가운데 고요하게 내려앉은 돌멩이를 애틋이 주워 담는 몸짓으로서.

박미란 큐레이터·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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