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MZ활동가에서 반미단체 위험인물로...색깔론 보도의 이중성

이재진 기자 2024. 3. 15.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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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론 보도는 하기도 쉽지만, 쉽게 간파당한다

[미디어오늘 이재진 기자]

▲Gettyimages.

“'반미' 논란으로 사퇴한 후보 대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던 후보”

더불어민주연합 국민후보추천 심사위원회가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운영위원이 자진사퇴함에 따라 이주희 변호사(민변 사법센터 간사)를 재추천하자 나온 14일자 조선일보 기사의 한 대목이다.

전지예 운영위원이 과거에 속한 단체가 반미단체라고 공세를 펴더니 이젠 이주희 변호사의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문제삼았다. 이런 식이면 더불어민주연합 국민후보추천 심사위원회가 추천한 인사가 속한 시민사회단체 주장은 모두 '빨간 그 무엇'이 되고 부적절한 사유가 될 수밖에 없다.

추천 인사의 정당 활동을 문제 삼는 것도 비상식적이다. 언론은 이주희 변호사를 놓고 민주노동당 전국 학생위원장을 지냈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 전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전지예 운영위원에 대해서도 진보당 관련 활동을 벌였다며 부적절하다고 했다.

KBS는 “지난해 전주을 재선거에 출마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의 유세 현장. 기호 '4'를 표시하며 웃는 이들 가운데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 1번으로 뽑혔다가 자진 사퇴한 전지예 씨의 모습이 보인다. 전 씨는 정당이 아닌 시민사회 몫으로 비례 1번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진보당 활동을 했던 것”이라고 보도했다. 민주당 비례정당 비례대표를 할 사람이 과거 특정 다른 정당 소속이거나 활동을 했다면 부적절하다는 식이다.

그런데 국민후보 최종 4인 선출 전 모두 44명의 후보가 있었고 이를 12명으로 압축했는데 이 중 민주당 당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 4인에 민주당 당원이거나 민주당 활동을 했던 사람이 있었어도 이런 보도가 나왔을까. 시민사회 몫의 추천 인사라고 정당 활동 이력이 있어선 안된다는 식의 주장은 전형적인 이중 잣대다.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기도 하다.

언론은 윤석열 정권 반대 깃발로 모인 민주당 비례위성정당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 추천 거부 사태의 배경이라고 하지만 애초부터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제를 품을 수 없는 민주당의 한계로 보는 것이 적확하다.

임태훈 후보(군인권센터 소장)의 컷오프 사유로 '병역기피'를 들며 국민 눈높이를 언급한 것은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병역을 거부해선 안된다'는 기성 보수 정당의 시각이 반영돼 있다. 반면, 시민사회는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통해 군대 인권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임 후보의 활동을 높이 사서 추천했다. 가치의 정면 충돌이다. 타협 지점도 찾기 어렵다.

역설적으로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 추천 거부 사태에서 '성과'로 남은 것은 색깔론 보도의 허술하면서도 이중적인 습성을 재확인시켜줬다는 점이다.

▲ 지난 11일 오마이TV에 출연한 전지예 후보의 모습. 사진=오마이TV 화면 갈무리

일례로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운영위원은 불과 수개월 전 만해도 MZ활동가였고 차세대 리더로 언론의 인정을 받았지만 시민사회 몫으로 추천되자 반미단체 소속의 위험한 인물이 됐다. 언론이 스스로 자신의 보도 내용을 부정하는 우스꽝스러움이 색깔론 보도의 이면이다.

전지예 운영위원이 속했던 '겨레하나'에 대해 “심지어 김일성의 생일을 기준으로 한 주체 연호를 사용한 새해 인사 글을 북측 민화협에서 보내왔다며 버젓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이는 자들”이라는 국민의힘 대변인(박정하)의 논평을 인용한 보도도 한심하다.

북측 민화협이 보낸 새해 메시지를 무조건적으로 '불순'한 것으로 보고, 그리고 그것을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을 친북 행위로 본 것이다. 그런데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은 우리 남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파트너, 즉 남북관계 교류의 대상이 되곤 했다.

지난 2018년 1월 4일 KBS는 “북한이 지난해 연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남측 민화협),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 평화3000 등의 우리 국내 일부 단체에 새해 인사를 담은 팩스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면서 북측 민화협이 보내온 메시지를 보도했다.

KBS는 “북한이 국내 대북단체에 새해 인사가 담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간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해빙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주목된다”고 했다. 북측 민화협이 새해 메시지를 보내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고, 오히려 이런 메시지 발송이 남북관계를 푸는데 좋은 신호라는 게 언론 보도 내용이다.

그런데 시민사회 몫 추천 인사가 속한 단체가 북측 민화협 새해 메시지를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배경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비난의 소재로 인용보도한다. 색깔론 보도의 이중성은 이렇게 쉽게 드러난다.

민화협이 겨레하나에 보낸 새해메시지 말미에 '주체 108(2019)년 1월 1일'이라고 적혀 있다면서 4월 10일 총선거 날짜가 “주체 113년 4월 10일이 될 수도 있다”는 국민의힘 대변인의 말도 언론은 인용 보도했다. 억지에 가깝다. 민화협은 북측 기구이고 주체 연호를 사용한다. 주체 연호를 쓴 메시지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고 그 연호를 사용하자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주체 113년 4월 10일은 비난을 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돌아보면 국내에는 주체 연호를 직접 쓰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편지를 쓴 전직 대통령도 있다.

TV조선은 2016년 12월 19일 단독 타이틀로 <박 대통령 편지엔 '주체 91년'…방북 땐 '김정일 벤츠'>를 보도했다. TV조선은 “박근혜 대통령은 2002년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면서 북한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후 한나라당으로 복귀해 대표가 되고서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가 지금와서 논란거리가 됐다. '주체 91년'이라는 북한 연호를 썼고 북남이란 표현을 썼다”고 보도했다. 박 전 대통령이 방북 3년 뒤에 썼다는 편지엔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 “주체91년” “북남이 하나되어”라는 표현이 나온다.

국민의힘과 보수 언론의 현재 잣대로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 편지를 쓰면서 주체 연호를 직접 사용한 박 전 대통령은 친북 인사 혹은 반미투사로 비난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자기는 해도 되고, 남이 하면 종북”(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 되는 이중잣대를 버리지 않으면 이렇게 우스운 일이 벌어진다. 언론도 유념하자. 색깔론 보도는 하기도 쉽지만, 쉽게 간파당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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