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 일기장' 결정적 증거됐나..오영수 '강제 추행' 유죄 판결 보니 [★FOCUS]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형사6단독(정연주 판사)은 15일 오후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오영수에게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한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다.
검찰에 따르면 오영수는 지난 2017년 8월 연극 공연을 위해 대구에 머무르던 중 산책로를 걷다가 연극단원 후배 A씨를 끌어안고, 같은해 9월 A씨의 주거지 앞에서 A씨 볼에 입을 맞추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강제 추행한 혐의로 지난 2022년 11월 불구속 기소됐다.
7년 가까이 지난 사건이지만, 재판부는 A씨의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면서 오영수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비교적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경험하지 않으면 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다"며 "피해자의 일기장에 기재된 내용, 성폭력 상담소에 진술한 피해 내용 등이 사건 내용과 상당 부분 부합하며, 이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유죄의 증거 중 하나로 A씨가 작성한 일기장을 들었다. 재판부는 "사건이 일어난 무렵 일기장에 기재된 내용을 보면,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꼭꼭 숨겨야 할 에피소드가 생겼다'고 표현하거나 '신경쓰지 않고 무시하고 의연하게 지내야만 하고 또 이런 화제가 나오면 확실히 중단시켜야 한다'는 문구가 있다. 이는 피고인의 행동이 부적절하거나 비밀로 해야 한다는 걸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결정적 물증과 목격자가 없어 양측 진술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A씨가 증거로 제출한 일기장이 판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또한 "피해자가 잊고 지내려고 했으나 '오징어 게임' 흥행 이후 마음이 힘들어져 피고인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나, 피고인의 태도에 화가 나 고소를 결심한 계기도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오영수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오징어 게임' 동료 배우들에게 피해가 갈까 우려해 사과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사실 관계를 정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카카오톡 메시지 중에 '딸 같아서 아껴주고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지나친 행동으로 간 것 같다'고 피고인이 말한 부분은 사회 통념상 그런 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하는 취지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오영수가 초범인 점 등을 양형에 고려해 취업 제한과 신상정보 공개 명령은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오영수는 선고 이후 법정을 빠져나온 뒤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항소할 계획이냐"는 물음에만 "네"라고 답했다.
이날 여성단체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회원 10여 명은 '연극계 성폭력 당연히 유죄다', '문제는 성차별적 조직문화다', '연극계 성폭력 이제는 끝장 내자'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오영수를 지탄했다. 선고 이후엔 기자회견을 열고 "당연한 결과다. 대선배, 연출가 중심의 위계 구조에서 배우 활동에 지속 여부가 판가름 나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피고인은 2017년 당시 피해자 등이 있는 술자리에서 '너희가 여자로 보인다'며 청춘에 대한 갈망을 비뚤어지게 표현하고 피해자 요구에 사과 문자를 보내면서도 '딸 같아서'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등 피해자에게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반성하지 않고 있는 피고인에게 엄벌을 내려달라"고 밝혔다.
반면 오영수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피해자 진술과 그로 파생한 증거 외에는 이 사건에 부합하는 증거는 매우 부족하다"며 "추행 장소, 여건, 시각 등에 비춰보면 '피고인이 범행할 수 있었을까' 의구심도 든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오영수도 최후진술에서 "이 나이에 이렇게 법정에 서게 돼 너무 힘들고 괴롭다. 내 인생에 마무리가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참담하고 삶 전체가 무너지는 것 같다. 현명한 판결을 소원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주고 오영수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한편 오영수는 지난 2021년 9월 공개된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 역으로 출연해 '깐부 할아버지'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글로벌한 인기를 얻었다. 특히 이듬해 1월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TV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강제추행 혐의에 휘말리면서 오명을 쓰게 됐고, 결국 출연 예정이었던 영화 '대가족'에서 통편집됐다. KBS는 지난달 오영수를 규제 명단에 넣고 출연 섭외 자제 권고 결정을 내렸다.
윤성열 기자 bogo1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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