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30년 왕좌' 닦는 러시아 대선 돌입... "가장 조작된 선거될 것" 우려

권영은 2024. 3. 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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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일 투표… 대항마 없는 푸틴, 5선 확실
투표율·득표율 관건 속 "선거 조작 코미디 쇼"
우크라, 연일 러 본토에 드론·미사일 공격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1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건물 벽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을 비춘 선거 광고물이 붙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EPA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실상 종신 집권을 굳히는 대통령 선거가 15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치러진다. 푸틴 대통령의 5선 당선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정적은 일찌감치 제거됐다. 2018년 대선 때 자신이 얻은 최고 득표율 76.7%를 깰 것이냐가 최대 관심사다.

벌써부터 "러시아 역사상 가장 조작된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항마 없는 푸틴, 득표율 80% 넘길까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시간대가 가장 빠른 극동 지방부터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까지 각 시간대에서 15~17일 투표가 실시된다. 2030년까지 푸틴 대통령의 '30년 왕좌'를 닦는 선거다. 현재 72세인 푸틴 대통령은 당선 시 옛 소련 시절 이오시프 스탈린의 29년 독재를 넘어서는 기록을 새로 쓰게 된다.

푸틴 대통령이 원하는 건 '압도적 승리'다. 최대한 높은 투표율과 득표율로 자신의 장기 집권에 더 큰 힘이 실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명분도 쌓을 수 있다고 영국 BBC방송은 짚었다.

선거 기간을 하루가 아닌 사흘로 연장하고, 일부 지역에서 전자투표를 실시하는 것도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꼼수다. 2019년 모스크바 시의원 선거에 처음 도입된 전자투표는 "조작이 손쉽고 선거 감시가 어렵다"는 지적을 계속 받아 왔다.

지난해 러시아가 불법 합병한 우크라이나 남동부 4개 지역(자포리자, 헤르손, 도네츠크, 루한스크)의 우크라이나 주민까지 선거에 동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보복이 두려워 익명을 요구한 헤르손의 한 주민은 "유권자 명부와 투표함을 든 친(親)러시아 성향 주민이 기관총을 든 러시아 군인과 가가호호 방문해 투표를 강요한다"며 "이건 선거가 아니라 코미디 쇼"라고 BBC에 말했다. 이미 사전투표가 진행된 이들 지역에선 비밀투표도 보장되지 않는다.

15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투표소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한 4명의 대선 후보 정보가 담긴 포스터가 붙어 있다. 모스크바=EPA 연합뉴스

시작부터 불공정했다. 유일하게 푸틴 대통령의 대항마를 자처했던 보리스 나데즈딘은 서류 제출 오류 판정을 받아 후보 등록조차 거부됐다. '푸틴의 최대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는 지난달 수감 중이던 시베리아교도소에서 돌연사했다. 공산당의 니콜라이 하리토노프, 새로운사람들당의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 자유민주당(LDPR) 레오니트 슬루츠키 등 명목상 3명의 후보가 출마했으나 들러리일 뿐이다.

국영TV에서 매일 푸틴 대통령의 얼굴을 비추는 만큼 선거 운동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대선을 앞두고 국내 선전 활동에만 10억 유로(약 1조4,000억 원) 이상을 썼다고 에스토니아 매체 델피가 크렘린궁 내부 문건을 인용해 폭로하기도 했다. 주로 푸틴 대통령을 영웅시하고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내용의 영화, TV시리즈, 온라인 콘텐츠 제작 등에 지출됐다. 사실상 '사전 선거 운동'이 이뤄졌던 셈이다.

러시아 전문가인 캘럼 프레이저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연구원은 "권위주의 정권에서 선거는 지도자의 통치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며 "이번 선거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조작된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미국 CNN방송에 말했다.

한 여성이 15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투표소에서 투명 투표함에 투표 용지를 넣고 있다. 모스크바=EPA 연합뉴스

"선거는 코미디 쇼"… 저항투표냐 기권이냐

러시아 국민의 10~15%는 현 체제에 불만인 것으로 추정된다. 프레이저 연구원은 "이들은 자국의 체제에 극도의 불만을 품고 있고, 그것을 드러낼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그러나 무의미한 투표에 기권할 더 많은 정치 저관여층이 존재한다"고 CNN에 밝혔다.

상대적으로 정치적 표현이 자유로운 해외 러시아인 사회는 '저항 투표'와 '선거 보이콧' 사이에서 입장이 엇갈린다. 이번 선거에서는 재외국민 약 190만 명을 위해 전 세계 144개국에 288개 투표소가 열린다. 2018년 401개 투표소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전쟁 이후 국외 이주가 늘어난 만큼 투표 인원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를 탈출해 현재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살고 있는 변호사 세르게이 쿨리코프는 "나라 안팎에서 자유롭고 효과적으로 항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투표"라며 "사람들이 투표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표를 위조하고 훔치는 일이 훨씬 쉬워진다"고 CNN에 말했다.

반면 투표 참여는 결국 '러시아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크렘린궁의 주장을 거들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안나(35)는 "만약 푸틴이 96%의 표를 얻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전체주의 국가의 선거라는 뜻"이라면서 "'러시아에 전체주의 정권이 있다'라는 헤드라인이 세계 언론을 장식하길 바란다"며 기권을 촉구했다.

생전의 나발니가 독려했던 '투표 시위'가 이뤄질지도 주목된다. 앞서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는 그의 유지를 이어 "선거 마지막 날인 17일 정오 투표소에 모이자"고 촉구했다. 투표 용지에 나발니의 이름을 적거나 그저 투표소에 서 있는 방식으로 저항하자는 것이다.


우크라, 대선 앞둔 러 본토 사흘째 타격

우크라이나는 14일 러시아 본토에 사흘 연속 무인기(드론)와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러시아 서부 벨고로드주(州)의 뱌체슬라프 글라트코프 주지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13일 1명이 숨진 데 이어 이날도 2명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에 근거지를 둔 러시아인 민병대는 12일 이후 사흘째 이 지역에서 러시아군과 교전 중이라고 주장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12~13일에는 러시아 내 정유시설 4곳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의 경제적 잠재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잘 계획된 전략"이라고 밝혔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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