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28년 만에 회장직 부활...'오너 없는 기업' 상징에 금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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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하고,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돼 온 제약기업 유한양행이 28년 만에 회장 직제를 부활시켰다.
유한양행에 회장‧부회장 직제가 생긴 것은 1996년 이후 28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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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 손녀 "창업자의 견제·균형 정신 훼손 우려"
사측 "직급체계 확대 따른 조치...당분간 공석"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하고,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돼 온 제약기업 유한양행이 28년 만에 회장 직제를 부활시켰다. 회사 측은 성장한 기업 규모에 걸맞은 직제 유연화라고 설명했으나, 일각에선 특정인이 기업을 사유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부 임직원들의 반발에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의 하나뿐인 직계 후손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도 우려하고 있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오너 없는 기업'이란 상징에 훼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5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본사에서 개최된 유한양행 101기 정기주주총회에서 회장·부회장 직위를 신설하는 정관 변경 안건이 통과됐다. 당초 '기업 사유화' 논란과 달리 표결 결과는 찬성이 95%로 압도적이었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주총 중 회장직 신설이 왜 필요하냐는 질의에 "혁신신약 개발을 위해 연구개발(R&D) 분야에서 많은 인재를 영입한 결과 6개 본부의 7인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창립 100주년과 글로벌 진출 확대를 맞아 회장·부회장 등 직급체계 확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유력한 회장 후보로 거론됐던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은 "회장 직위가 생긴다고 해도 이 자리에 오를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밝혔다.
유한양행에 회장‧부회장 직제가 생긴 것은 1996년 이후 28년 만이다. 역대 회장은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와 측근 연만희 고문 2명뿐이었다. 다만 회사 측은 회장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뽑을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회장직 신설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창업주 정신에 위배되며, 당장 선임하지 않을 회장직을 구태여 만들 필요가 있냐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이례적으로 이날 주총에 참석해 “할아버지의 정신이 제일 중요하다”며 "할아버지의 뜻과 이상이 담긴 경영정신이 이 회사의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유 이사는 언론을 통해 “유한양행이 할아버지의 창립 원칙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며 “유한양행 회장직 신설로 ‘견제와 균형’의 창립정신이 흔들릴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공교롭게도 유 이사는 2022년 1월 유한재단 이사직에서 제외됐고, 2023년에는 유한학원 이사직도 잃을 뻔했다는 게 회사 방침에 반대하는 직원들의 주장이다. 유한재단(15.77%)과 유한학원(7.75%)은 각각 유한양행의 1·3대 대주주다.
지난 11일부터 유한양행 본사 앞에는 회사 사유화에 반대하는 트럭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회장·부회장 직위 신설과 함께 지난 1일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채용 비리 의혹까지 거론하며 회사를 비판하고 있다.
유한양행의 상징성 때문에 시민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한킴벌리 대표이사를 지낸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이 참여한 ‘유한을 사랑하는 시민사회 인사 대표’는 선언문을 통해 "유한양행은 유일한 박사의 창립 이념과 기업가 정신을 잊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 전 처장은 "소유와 경영을 철저히 분리한 창업자의 정신은 한국 기업의 롤모델인데, 회장직 신설은 이를 짓밟는 행위"라며 "법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국민 기업'이 사유화되는 일은 우리 사회가 감시하고 공론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now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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