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우러 간다며 도망가라” 공보의·군의관 태업, 재판 넘겨질 수도

홍인석 기자 2024. 3. 1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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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의 태업하다 신분 박탈될 수도
2016년 국군병원서 ‘진료 거부’ 지시
부당한 지시받았던 군의관 ‘기소유예’ 처분
헌법재판소서 처분 취소됐으나 긴 시간 재판
“조직적 태업·진료 거부, 의료법 위반”
정부가 공중보건의사(공보의)와 군의관을 상급종합병원에 파견한 11일 서울 시내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승강기로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의대 정원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전공의 공백을 메우려 정부가 투입한 공중보건의사(공보의)와 군의관에게 태업하라고 종용하는 게시물이 의사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법조계에서는 군(軍) 복무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공보의·군의관이 실제로 태업을 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는 ‘군의관 공보의 지침 다시 올린다’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가장 기본이 되는 마인드는 ‘병원에서 나에게 일을 강제로 시킬 권한이 있는 사람이 없다’이다”라고 했다. 이어 “(상사의) 전화를 받지 말고 ‘전화하셨네요? 몰랐네요’라고 하면 그만”이라거나 “담배를 피우러 간다며 도망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안내했다. 또 “(환자를) 조금 긁어주면 (병원에) 민원도 유발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도 썼다.

메디스태프는 의사 인증을 해야 가입할 수 있다. 지난달 이 사이트에는 사직을 예고한 전공의들에게 ‘병원을 나오기 전 병원 자료를 삭제하라’고 종용하는 글이 올라왔다. 경찰 수사 결과 이 글 작성자는 서울 소재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로 드러났다.

전공의 1만여명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의료 현장을 떠나 대형 병원이 ‘일손 부족’을 겪자 정부는 의료 공백을 막으려 보건소에서 근무하던 공보의와 군대에 있던 군의관을 차출했다. 공보의 138명과 군의관 20명은 지난 11일부터 상급종합병원 20곳에 투입됐다. 이들에게 동료 의사가 “태업하라”는 글을 쓴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공보의·군의관들이 실제로 태업을 할 경우 책임을 지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임기제 공무원인 공보의는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신분을 잃을 수 있다. 이 법 제9조의2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공보의가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거나 근무 성적이 극히 불량해 공중보건의사의 신분을 가지는 것이 부적당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직권으로 신분을 박탈할 수 있다.

근태에 문제가 많다고 판단되면 병역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다. 2013년 춘천지법 속초지원은 의료원 원장 허락을 받은 뒤 출근하지 않고 전문의 시험을 준비한 공중보건의사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총 116일간 이 의료원에 출근하지 않고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자택에서 공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근무 지역 이탈과 해당 분야 업무 미 종사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B씨는 법원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군의관도 태업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군의관이 진료 거부 등으로 처벌받은 사례는 드물지만 현장에서 태업하면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이 크다. 2016년 공군본부 보통검찰부는 국군병원에서 진료 환자 숫자를 제한한 군의관 B씨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B씨는 상관인 정형외과 과장이 한 달에 3000건 이상 외래진료를 하면 군의관에게 포상 휴가를 주던 제도가 폐지되자 소속 군의관들에게 외래환자 진료는 하루 40명만 하도록 지시했다. B씨는 대개 40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했으나 일부 날짜만 환자 수를 제한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은 헌법재판소까지 올라갔다. 헌재는 B씨가 대부분 하루에 40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한 점, 상관의 부당한 지시와 질책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조직적인 진료 거부 등이 처벌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사건”이라며 “B씨는 상관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상관의 부당한 지시로 일부 진료 거부 행위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지침이나 권유에 따른 태업·진료 거부는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태업 등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병원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한 법적 조치가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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