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보이지 않게 살아가기

2024. 3. 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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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의 시대다.

소셜미디어가 지배하는 관심 경제는 끝없이 자아를 노출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성공 기회를 부여한다.

노출과 연결, 사생활 공개, 자아 연출 등 이 시대에는 남들 눈에 띄는 게 그 자체로 인간 능력이 되었다.

자신을 점점 더 훤히 드러내도록 강요받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겐 투명 망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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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의 시대다. 소셜미디어가 지배하는 관심 경제는 끝없이 자아를 노출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성공 기회를 부여한다. 노출과 연결, 사생활 공개, 자아 연출 등 이 시대에는 남들 눈에 띄는 게 그 자체로 인간 능력이 되었다. 그 덕분에 자기 과시의 대가로 명성을 얻고 돈을 버는 직업마저 생겨났다.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멜라이트 펴냄)에서 미국 작가 아키코 부시는 인간 전체가 노출광이 되어가는 세태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남에게 보이려고 꾸며낸 삶, 타인의 시선에 맞춰 연기하는 나로 살다 보면 결국 자아가 위축돼 존엄성을 잃는다. 많은 사람에게 자기 경험을 무차별 노출하면 갈수록 내면이 하찮아지는 까닭이다. 부시는 강요된 자기 노출의 해독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기'다.

보이는 건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데이비드 미첼의 말처럼 "권력, 시간, 중력, 사랑 등 정말 강력한 힘은 모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일이 더 심오하다. 디자이너 디터 람스는 "훌륭한 디자인은 그 자체로 눈길을 끌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눈에 띄지 않게 애쓰는 과정에서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보이지 않기는 숨기와 다르다. 보이지 않으려면 소셜미디어 계정을 삭제하고 디지털 단식을 수행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보다는 자신만을 위한 소소한 활동을 하는 게 좋다. 프랑스인이 자르댕 세크레(jardin secret·비밀 정원)라고 부르는 행위, 즉 새벽 산책하기, 깃털이나 돌멩이 모으기, 음악 듣기, 책 읽기, 카페 구석에 앉기 등 굳이 타인에게 이야기할 필요 없는 자잘한 행위다. 이런 나만의 체험은 짜릿한 기쁨을 일으키고, 내적 성장을 가져오며, 무엇보다 나로서 존재하게 지켜준다.

주변 세계와 어우러져 자신을 지키는 카멜레온이나 문어처럼 강, 바다, 산, 숲을 찾아 자연과 하나가 되거나, 훌륭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 아름답고 숭고한 존재가 주는 감동과 경이, 두려움과 떨림 앞에서 우리의 자의식은 줄어든다. 아득하고 아늑한 기분 속에서 일체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자아에 집착하는 대신 이타성을 깨닫는다. 자신이 작은 줄 알면 타자에게 손을 내미는 법이다.

꾸며진 나로 살수록 인간은 자존을 잃고 우울에 빠진다. 부시는 말한다. "보이지 않고 사라지는 건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위해서다." 해리 포터는 투명 망토 덕분에 시련을 이겨내고 무사히 살아남아 성숙함에 이르렀다. 자신을 점점 더 훤히 드러내도록 강요받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겐 투명 망토가 필요하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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