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의 도시 발견] 지방자치 시대의 불법 주차 문제

2024. 3. 1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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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 비싸다며 도로 불법 주차
소방차 진입 막아 사고 나는데
선거 때면 주차장 규제 완화
불법 주차 엄격히 단속하고
민영 주차장 정착을 도와야

한국 도로에는 거의 반드시 불법 주차된 차량(들)이 있다. 현재 한국 도시에서 불법 주차된 차량이 없는 골목은 재개발 예정지뿐이다. 이렇게 불법 주차한 사람들에게 "왜 주차장에 주차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주차장이 없어서 그랬다"고 답하는 사례가 많다. 그러고는 "나라에서 공영 주차장을 더 많이 만들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불법 주차한 것이니, 내 잘못이 아니라 나라 잘못"이라는 답이 따라온다. 그런데 이렇게 답한 사람이 불법 주차한 바로 옆에 공영 주차장이 있고, 심지어 그 공영 주차장에는 텅 빈 곳이 있다.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주차요금은 아무리 싸도 왠지 아깝다"며 계면쩍어하고는 한다.

2022년 초 어느 도시의 구도심을 걷다가 이런 플래카드를 보았다. "시장님! ○○의 얼굴인 ○○○에 무료 수준의 대형 주차장이 없어 ○○시민과 상인 가족 1만여 명이 너무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도심에서 공영 주차장 1면을 만들려면 2017년 기준으로 23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무료 수준의 대형 주차장'을 조성해 달라는 것이니, 이들이 상정하는 주차장 면수는 최소한 10면을 넘을 것이며 많을수록 좋을 터다. 그렇다면 이들 상인의 영업을 위해 세금이 최소 2억3000만원 이상 투입돼야 한다. 국민 개개인에게서 걷은 세금을 특정인의 영업을 위해 투입해 달라는 요구는 바꿔 말하자면 특정인을 위한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주차장이 필요하다는 것은 수요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발생하는 것이 순리다. 만약 자본주의 법칙대로 사회가 움직이고 불법 주차에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진다면 주차장 수요를 바라보고 공급되는 민영 주차장이 늘어날 것이다. 미국·일본 같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주차장 요금이 비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 나라들의 주차장 요금이 자본주의 법칙에 맞게 형성된 것이고, 한국에는 이 자본주의 논리가 적용될 수 없게 하는 여러 방해 요소가 있는 것이다. 그 방해 요소 가운데 하나는 공영 주차장이고, 또 하나는 불법 주차를 거의 단속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다.

주차장이 부족하니 공영 주차장을 지어달라, 또는 주차장이 부족하다는 시민의 민원이 많으니 공영 주차장을 늘려야겠다는 지방자치단체의 논리는, 어떤 시장(market)이 커지니 정부나 지자체가 소프트웨어·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서 제공하겠다는 말과 같다.

그렇게 정부·지자체가 세금을 들여 제작한 결과물은 대체로 시장에서 외면을 받아왔고,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 왜 공영 주차장에 대해서만은 민영 주차장 요금이 비싸다며 '무료 수준의 대형 주차장'을 요구하는 것일까.

민영 주차장이 활성화되려면 불법 주차 단속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들이 불법 주차 단속에 사실상 손을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국 도시를 걸을 때마다 하게 된다. 불법 주차된 차량이 길을 막은 바람에 소방차가 출동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화재로 인한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2015년 1월 10일 발생한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가 대표적인 참사였다.

이 참사가 일어난 건물은 주차장 확보 의무를 완화한 도시형생활주택이었다. 거기에 불법 쪼개기까지 이뤄진 바람에 건물 주변에 불법 주차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지적이 사건 발생 당시 다수 제기됐다. 선거철이 될 때마다 신축 건물의 주차장 의무를 완화하는 일이 마치 규제 개혁인 것처럼 주장되고는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편으로 주차 단속 권한이 경찰과 지자체에 나뉘어 있다 보니 유권자의 눈치를 본 일부 지자체장이 사실상 단속을 포기하는 일도 있다. 물론 주차 단속에 의지를 가진 지자체도 있지만, 이런 지자체 공무원은 불법 주차를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일부 시민의 민원에 시달린다.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국가와 지자체는 공영 주차장을 건설해 시장 경제를 교란하는 대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함으로써 자본주의 법칙에 따라 민영 주차장 시장이 안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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