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금융주 모으는 버핏 … 그가 탐낼 韓은행주 찾아라

문일호 기자(ttr15@mk.co.kr) 2024. 3. 1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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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환원 강화' 은행주로 투자자금 움직이나

중소기업 대표 김 모씨(46)는 이달 미국 인공지능(AI) 대장주 엔비디아를 매수했지만 예상과 달리 마음이 불안하다. 이 회사 주가는 지난 8일과 11일 급락한 뒤 13일 급등했는데, 김씨는 엔비디아에 올인한 터라 주가 급등락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그는 "엔비디아 주가와 반대로 가는 주식을 추가로 매수해 마음 편하게 중장기 투자를 지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AI 관련주 급등락이 반복되자 금융주 등 방어주 성격을 띠는 주식 가치가 되레 오르고 있다. 김씨처럼 투자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수요가 늘어나면서 주가가 많이 상승한 AI 등 성장주 비중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덜 오른 금융주를 늘리는 것이 대안이 되고 있다.

리밸런싱은 주식 등 자산 비중을 재조정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는 금융주를 추가로 매수해 리밸런싱을 일찌감치 마쳐 투자자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국내에서도 3월 들어 외국인과 기관투자자가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금융)를 사 모으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 은행들은 주가연계증권(ELS)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겹악재가 터지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와 관련한 불확실성도 커진다. 하지만 외국인과 기관의 주식 매수 분위기에는 중장기적으로 이들 악재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녹아들어 있다.

금융회사들이 성장주가 주지 못하는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정책 등을 시행하고 있어 주주환원율이 크게 높아진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 은행의 이 같은 정책이 '코리아디스카운트'로 불리는 만성적인 주가 저평가 상황을 해소할지 주목된다.

주식 살 것 없다는 버핏도 금융주 매수

최근 미국 월가에서는 버핏이 어떤 주식을 샀는지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버핏 같은 큰손의 투자 내력은 이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하는 '13F(Form 13)'로 알 수 있다. 13F는 주식 자산 1억달러 이상인 기관투자자가 분기마다 제출하는 보고서 양식이다. 버핏이 작성한 2023년 말 기준 13F에서 특이한 점은 '한 종목 또는 복수 종목에 관해 게재를 생략했다'는 내용이다.

SEC 규정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는 주가 급등락으로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일부 종목에 '비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

버핏이 최근 어떤 주식을 매수했는지는 그가 CEO로 있는 버크셔해서웨이 2023년 연차보고서에서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2023년 보유 주식의 취득원가(장부가액) 항목에서 '은행, 보험, 기타 금융주'는 같은 해 9월 말 대비 10% 미만 증가한 것으로 나온다.

버핏은 2023년 이후 AI 등 성장주가 급등했지만 이 기간 대만 반도체주 TSMC를 잠시 보유했다가 팔았을 뿐 성장주에 적극 투자하지 않고 있다. 되레 보유 비중 2위였던 금융주 비중을 높이고 있는 셈이다. 그의 포트폴리오 1위는 애플(50%)이고 2위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9%)다.

분명한 것은 버핏이 BoA 이외의 금융 관련 주식을 추가로 매수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그 종목 주가를 급등시킬 만큼 많은 액수가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BoA보다 더 주주친화적인 주식으로 보인다.

주주친화 기업은 주주환원율로 대표된다.버핏이 이미 보유한 BoA는 2023년에 자기 주식을 2% 줄였다. 이를 자사주 소각이라고 하는데, 미국 상장사들은 매입과 동시에 소각하기 때문에 곧바로 주식 수 감소로 잡힌다.

연평균 주가에 주식 수 감소분을 곱하면 자사주 소각액이 된다. 여기에 연간 배당금을 합치면 총주주환원액이 나온다. 총주주환원액을 해당 기간 순이익으로 나누면 주주환원율을 구할 수 있다.

12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버핏이 보유한 주식 가운데 2위인 BoA는 2023년 기준 주주환원율이 42.3%로 추정된다. 2022년 39.1%보다 3.2%포인트 높아졌다. JP모건은 주주환원율이 2022년 36.2%에서 2023년 42.4%로 뛰어 BoA보다 상승폭이 컸다.

美 주주친화 따라잡는 KB금융·우리금융

미국 은행은 40%대에 달하는 높은 주주환원율로 투자 시장에서도 선진 은행 대접을 받는다. 주주환원율이 한때 10~20%대였던 국내 은행주도 이제 정신을 차리고 궤도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자사주 소각으로 주식 수를 줄이는 시도가 나타났고, 순이익 감소에도 배당을 늘려가는 '역주행'이 목격되고 있다. 이는 미국 등 선진 은행의 주주친화, 국내에서 행동주의펀드(얼라인파트너스)의 압박, 기업 밸류업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KB금융은 미국 초거대 은행주에 근접하는 주주환원율과 저평가로 투자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 금융지주의 작년 주주환원율은 37.5%로, 2022년보다 4.5%포인트 상승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배당도 제대로 못하고 자사주 소각은 꿈도 꾸지 못하면서 주주환원율이 20%에 그쳤다.

KB금융 주주환원율이 3년 새 2배 높아진 이유는 일단 배당이 늘어서다. 2023년 기준 KB금융은 주당 배당금을 3060원으로 정하면서 전년 대비 110원 높였다. KB금융을 포함한 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 중 배당금 상승률로는 KB금융이 1위(3.7%)다. 또 지난해에만 5720억원 규모 자사주를 매입해 이 중 2720억원어치를 없앴다.

올해 들어 KB금융은 기존 32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추가로 결정했는데, 이를 포함하면 주주환원율은 38.6%까지 오른다.

이처럼 국내 상장사들은 자사주 매입과 소각 시점이 달라 단순히 주식 수 변동으로 주주환원율을 계산하기 어렵다.

주주환원율 상승 기울기가 가장 가파른 곳은 우리금융이다. 2022년 26.2%에서 지난해 33.7%를 기록하며 7.5%포인트 높아졌다. 작년 처음으로 1000억원 규모 자사주를 소각한 것이 주원인이다.

주주환원의 또 다른 축인 배당은 줄어들어 우리금융 주주로선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금융은 배당 측면에선 다소 부족하지만 앞으로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환원율을 높일 계획이다. 연내 1380억원 규모 자사주 소각에 나서기로 했는데, 기존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금융 잔여 지분 1.2%를 매입해 이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배당수익률은 4대 금융지주 중 우리금융이 나 홀로 7%대다. 시중은행 예금금리가 연 3%대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금융 투자가치가 약 2배 높다.

지난해 자사주 소각 규모로 4대 금융지주 중 1등은 신한금융(5000억원)이다. 같은 해 소각 규모가 가장 많았고 배당금 상승률은 2위(1.7%)였다. 주당 배당금을 2022년 2065원에서 2023년 210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2023년 초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4대 금융지주 등 은행주를 향해 강력한 주주환원을 요청한 것이 결과물로 나온 셈이다. 행동주의펀드가 이 같은 요청을 한 것은 국내 은행주의 건전성 지표가 올라가 주주환원율을 높일 체력이 생겼다고 판단해서다.

이를 판단하는 '가늠자'는 보통주자본비율(CET1)이다. CET1은 금융위기 때 해당 금융사가 손실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투자자 관점에선 이 수치가 높을수록 재무건전성이 뛰어나 적극적으로 주주환원이 가능해진다고 본다. CET1 국내 1등주는 KB금융으로 2023년 말 기준 13.6%다. 그 뒤로 하나금융(13.2%), 신한금융(13.1%), 우리금융(11.9%) 순이다.

주주환원율은 미국 은행주를 쫓아가는 양상이지만 국내 은행주들 주가는 지나치게 저평가된 상태다. 블룸버그 기준으로 4대 금융지주의 올해 말 예상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33~0.48배에 그친다. JP모건은 1.63배에 달한다. 지나치게 낮은 PBR에는 이유가 있다. 국내 은행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상업용 부동산 부실 위기를 겪고 있는 데다 추가로 ELS 부실 리스크까지 떠안고 있어서다.

이에 대비해 금융지주들은 계속해서 부실 대비용 회계 항목인 '대손충당금'을 높게 쌓고 있다. 우리금융이 이런 걱정에 충당금을 더 적립하는 대신 2023년 배당금을 전년보다 삭감했다. 이런 리스크가 해소되면 국내 금융지주의 투자 매력이 올라가 PBR도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문일호 매경엠플러스센터 증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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