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윤 한미약품 사장 “인과관계 뒤집는 거짓말에 배신감 느껴”
“선친이 일궈온 회사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 느꼈다”
(시사저널=이석 기자)
"코리그룹은 중국 시장에 특화된 회사다. 선대회장님(故 임성기 창업주)과 긴 시간 논의를 거쳐 만들었다. 이 회사가 경영권 분쟁 이후 나를 공격하는 수단이 됐다. 나 역시 '개인회사 키우기에만 몰두하면서 회사에 출근도 안 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다. 인과관계를 뒤집는 거짓말이자 언론플레이다."
"코리그룹은 중국 시장에 특화된 회사"
한미약품가(家) 장남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이 시사저널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던진 첫마디다. 그는 최근 격화되고 있는 가족 간 분쟁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인과관계를 뒤집는 거짓말'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임 사장이 2009년 설립한 코리그룹(COREE Group)과 DxVx(디엑스브이엑스)가 표적이 됐다. 한미약품그룹 측은 "임 사장이 본연의 사업(한미약품그룹)은 외면한 채 개인회사 키우기에만 몰두하면서 회사 출근은 물론이고, 이사회 참여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주현 사장도 2월2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미약품그룹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꼭 외부에서 해야 했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빠르게 개척하기 위해서는 현지 실정에 최적화된 조직이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2000년 이후 중국 시장 진출은 모든 기업의 당면 과제였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중국 내 외국 기업에 대한 견제가 심해질 것으로 예상됐다. 임 사장이 아버지인 임성기 창업주와 충분히 상의해 만든 회사가 바로 코리그룹이다. 중국 시장에 특화된 별도 조직으로, 현재 1000명의 종업원과 5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게 임 사장의 설명이다.
2020년 임성기 창업주가 작고하고, 송영숙 회장이 한미사이언스 각자대표에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미약품그룹의 인적·물적자원 공급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임 사장은 대안으로 진단 및 백신 영역에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던 DxVx의 최대주주로 경영에 참여했다. 그는 "코리그룹과 DxVx는 한미약품그룹의 가족회사로 장차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함께 성장하는 비전을 갖고 있다"면서 "그런 회사를 한미약품그룹과 별개 회사로 봤다. 저와는 출발점부터가 달랐다"고 꼬집었다.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이 불거졌을 때도 상황은 비슷하다. 송영숙 회장, 임주현 사장 모녀와 임종윤·임종훈 사장 형제로 편이 갈려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양측은 기자간담회와 입장문을 통한 반박에 반박을 더하면서 법적 다툼과 함께 주주총회 표 대결까지 예고한 상태다.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지분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상속세가 부과된 것이 분쟁의 표면적인 이유였다.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는 상속세 마련을 위해 지분 20%를 7000억원에 OCI그룹에 매각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을 선포한 것이다. 이 발표에 장남과 차남이 반대하면서 골육상쟁(骨肉相爭)이 벌어지고 있다. 임 사장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은 OCI그룹과의 통합이 신약 개발에 대한 창업주의 유지를 잇기 위함이었다고 강조해 왔다.
"송 회장님과 임주현 사장은 임종윤과 임종훈 두 형제가 창업자의 유지에 반하는 사실상 기업 매각계약을 반대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계셨으리라 생각한다. 주주총회가 아니라 이사회를 통해 여러 계약을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긴가.
"OCI와의 통합은 표면적 이유고, 실상은 임주현 사장의 경영권 확보라는 장기적 목표가 있다고 본다. 그동안 가족회의에서 여러 차례 상속세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한 배경에는 경영권 승계에 대한 이견이 존재했고, 이미 이때부터 분쟁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미약품그룹 장자이자 한국바이오협회 이사장으로서 책임감이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백신 허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영국 mRNA 권위자인 로빈(Robin Shattock)을 만나 미국 모더나 백신을 대체하기 위한 한국 생산에 합의했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와는 '팬데믹 사이언스 동맹 협약'까지 체결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외부 세력이 조직 전체를 장악하고 있더라. 13년간 유지한 한미사이언스 대표 자리를 (창업주 작고 후) 떠밀리듯 해임 당했다.
이후 송영숙 회장 단독대표 체제가 구축됐고, 밀실 협의를 통한 파행 경영이 이어졌다. 외부인력을 중심으로 전략기획실도 신설됐다. 현재 임주현 사장이 이 전략기획실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새롭게 영입된 인사들은 한미와 맞지 않는 옷을 강요하면서 수많은 연구개발 임원급 인사가 회사를 떠났다. 우리 모두 하는 얘기가 있다. 선친은 신약 개발, 특히 백신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선친이 살아계셨으면 코로나 팬데믹 때 우리가 백신 하나 없이 이렇게 넘겼겠냐는 것이다. 많이 아쉽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의 의결을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과 체결한 '을사늑약'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번 계약을 통해 한미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명분을 제시했지만 허울뿐이다. 결국에는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잃어버린 것처럼, 이번 계약으로 한미가 더 이상 한미가 아닌 결과가 됐다."
그가 지난 1월 법원에 한미사이언스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2월21일 수원지방법원(제31민사부, 재판장 조병구)에서 첫 심리가 열렸다. 핵심 쟁점은 신주 발행의 목적이었다. 송영숙 회장 측은 그동안 "한미약품그룹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만큼 상속세를 내고, 창업주의 유지인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OCI와의 통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 왔다.
임 사장의 주장은 달랐다. 그는 "신약 개발 자금은 한미약품이 유상증자 등을 통해 받아야 할 사항이다. 한미사이언스 자금이 부족할 경우 북경한미약품의 이익유보금이나 금융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면서 "한미사이언스의 자사주도 3.21%로 900억원 이상이다. 2500억원의 자금 유입을 위해 경영권을 넘기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2월13일 동생인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과 함께 주주제안을 통해 경영권 복귀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성을 보면 제약산업을 경험해본 분이 전무하다. 회사의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선친이 일궈온 회사가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는 위기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제2의 북경한미 프로젝트 진행"
재계의 관심은 조만간 있을 가처분 선고와 3월말로 예정된 주주총회 표 대결 결과에 쏠리고 있다. 그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한미사이언스 주총에서 여러 주주와 협력해 저희가 제안한 이사진의 선임을 가결시켜 경영권을 확보할 계획"이라면서 "경영권 확보 이후에는 3년간 흐트러진 R&D 조직을 제정비하고, 글로벌 사업의 실질적 성과 창출을 위해 제2의 북경한미약품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 많은 주주가 이번 계약의 부당성을 인지하고, 지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고 임 사장은 설명한다. 그는 "저희가 약속드릴 수 있는 비전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경영을 하겠다는 점과 차별화된 전략"이라면서 "2028년까지 현재의 기업 가치를 최소 2배 이상 올리는 게 목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신동국 한양정밀화학 회장과 이번 사태 이후 긴밀히 소통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면서 "신 회장도 이번 계약의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계신 만큼 저희를 지지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선대회장으로부터 어떤 협조나 지원 지시 없었다"
한미약품그룹 측, 임 사장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의 주장에 대해 한미약품그룹 측은 여전히 각을 세웠다. 사안 하나하나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한미약품그룹 관계자는 "코리그룹은 임종윤 사장의 개인회사다. 지난 50년간 한미가 추진해온 사업과 괴리감이 크다"면서 "임성기 선대회장 시절에도 코리그룹에 대한 지원이나 협조 지시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임 사장이 추진했던 백신 관련 사업 역시 개인기업인 DxVx를 통해 진행됐다. 한미 경영진과는 전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그룹은 검증된 원천기술 없이 가능성만 제시하는 기업들에 인적·물적 자원을 투자할 여력과 근거, 명분을 찾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임 사장이 한미사이언스 대표에서 물러나고 송영숙 회장 단독대표 체제가 구축된 배경에 대해서도 한미약품그룹 측의 입장은 달랐다. 그룹 관계자는 "라데팡스는 현재 임 사장과 같은 주장을 하는 차남 임종훈 사장이 최초로 제안해 한미와 연을 맺었다"면서 "송 회장과 임주현 당시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임 사장 스스로 '찬성'표를 던졌다. 떠밀리듯 대표에서 해임 당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법적 다툼과 주총 표 대결로까지 확대된 OCI그룹과의 통합에 대해서도 그룹 측은 "OCI그룹과의 통합은 '기업 매각이 아니라 통합이다"고 강조했다. 그룹 관계자는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밝혔듯이 OCI그룹과 대등한 조건에서의 통합이지 매각이 아니다. 창업자의 유지에 반하지도 않는다"면서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면서도 한미의 미래가치를 높일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한미사이언스는 2022년 이후 부채비율 및 금리 급등으로 인해 유동성이 악화됐다. 2023년 3분기 말 기준으로 현금성 자산은 1억3000만원까지 하락했다"면서 "2024년 대규모 투자가 예정된 상황에서 신약 개발을 위해 북경한미약품의 현금성 자산을 활용하면 된다는 인식은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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