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가 수행했던 동굴…안양의 천년고찰 삼막사 [정용식의 내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인생은 연극이고 우리 인간은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선 배우일 뿐이다.”
세익스피어 5대 희극 중 하나인 ‘뜻대로 하세요’에 나오는 대사다. ‘세상은 무대, 인생은 연극’이라는 말로 회자된다. 사람은 일생 동안 희극의 조연 배우가 되기도 하고 비극의 주연 배우가 되면서 여러 역할을 연기한다. 어떤 이들은 막(幕)이 내리기도 전에 무대에서 퇴장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을 “가치 있거나 진지한 완결된 행동의 형식을 취하는 모방일 뿐만 아니라 연민과 공포를 통해 감정을 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상호 간의 인과관계 속에서 일어날 때 최대의 효과를 거둔다”고 정의했다.
연극이든 인생이든 하나의 막이 끝나면 새로운 막이 열린다. 뜻하지 않게 방문하게 된 경기도 안양시 삼성산 중턱의 삼막사에서 ‘나는 인생이란 연극무대의 어느 장면에서 어떤 각본을 쓰며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심오한 생각에 빠질 뻔했다. 삼막사는 다양한 이야깃거리와 볼거리가 많아서,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에 잠기게 되는 천년고찰이었다.
삼막사는 조계종 2교구 용주사 말사인데 서기 677년 원효·의상·윤필 세 고승이 삼성산(三聖山) 기슭에 각자 작은 암자를 짓고 수행했다. 암자를 가리켜 일막(一幕)·이막(二幕)·삼막(三幕)이라 했는데, 나중에 일막과 이막은 화재로 사라졌고 삼막만 남았다. 조선이 건국되고 한양을 수도 삼자 무학대사가 이 절을 중수했고 남서울의 수찰(首刹)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삼막사는 안양시내에서 가까이 있지만 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삼막사삼거리 경인대학교 옆 공용유료주차장에서 올라가는 콘크리트 도로와 등산로 두 길로 접근할 수 있다.
2.4km 되는 도로길은 길이 좁다. 50여분을 걸어 올라가든지 신도 수송차량을 얻어 타야 한다. 1.4km 길이의 등산로를 택하면 30여분 정도 걸려 ‘삼성산 삼막사’ 일주문에 도착한다.
일주문 편액 앞머리에는 삼막사 창건과 관련된 원효대사, 의상조사, 윤필거사 세 분의 이름이 기록돼 있고 기둥에 새겨진 ‘빛깔은 고와도 지고 마는 것, 이 세상 그 누구 무궁(無窮)하리오’라는 글귀가 묘한 여운을 남긴다.
앞마당에 올라가니 망해루(望海樓)가 있다. 안양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날이 맑은 날이면 서해바다까지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연히 찾게 되었지만 풍광에 감탄하고 얽힌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절이다.
절 초입에 임시건물로 운영 중인 종무소에는 재건축을 위한 불사(佛事)을 요청하는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2년 전인 2022년 3월 발생한 화재로 종무소 건물이 전소했다. 이 불로 당시 주지였던 성무스님이 입적했다. 조사를 벌인 경찰은 주지스님이 스스로 분신(방화)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삼막사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한국 불교계의 큰스님인 정대(正大)스님이 입적 전까지 지냈다는 선방(禪房) 월암당(月庵堂)이 나온다. 1년여 전부터 탄묵스님이 삼막사의 주지 역할을 하면서 종무소를 다시 세우는 일에 힘쓰고 있다. 새 건물이 들어서 아픈 기억도 잊혀지길 바란다.
삼막사의 주 법당은 대웅전이 아니고 여섯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전각인 육관음전(六觀音殿)이다. 육관음은 중생이 병마 등 갖가지 고통에 빠져있을 때 여러 모습으로 변해서 나타나 중생을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복덕을 얻게 해준다는 여섯 관음을 말한다. 조선시대 후기에 세운 대웅전이 있었으나 1990년 12월에 화재로 소실되어 당시 주지였던 자승스님이 육관음전을 중건했다.
육관음전 옆에는 천불전이 우람하게 서 있고 두 건물 사이 축대 위에는 삼막사 삼층석탑이 있다. 높이는 2.5m로 지대석 위에 2단의 기단부와 3단의 탑신부를 올리고, 그 위에 상륜부를 장식한 일반적인 형식의 탑이다.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1232년 12월 고려의 승군장인 김윤후(金允候)가 몽골의 장수 살리타를 화살을 쏘아 쓰러뜨린 것을 기념하여 세운 고려시대 중반의 탑이라고 한다. 삼층석탑 아래쪽에는 거북 모양의 석조(돌로 만들어 물을 담아두는 수조로 쓰는 기구)인 감로정석조(甘露井石槽)가 있다.
삼막사 칠성각 가는 길에도 바위 벽을 반듯하게 다듬어 각기 다른 세 가지 모양의 거북귀(龜)자를 새겨놓아 돌부적 같은 삼귀자(三龜字)가 있다. 삼막사가 거북이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육관음전 전면 축대 아래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누각이라는 망해루가 있고 그 사이에는 직각 방향으로 명왕전(冥王殿)이 있다. 1880년에 세워진 명왕전은 인간의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독특한 운치가 있어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월암당의 전면 산자락에는 1707년 건립된 삼막산사적비(寺蹟碑)가 창건에서부터 절의 내력을 알려주고 있다. 월암당 위쪽으로 돌과 나무로 조성된 70여 개 계단을 올라가면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행했다 하여 만든 원효굴(元曉窟)이 비경을 자랑한다. 거대한 바위 봉우리 하단에 암벽을 파서 만든 작은 감실(작은 불상 등을 모셔둔 곳)에 큰 지팡이를 든 원효대사의 인자한 얼굴 조각상을 안치하고 지붕을 씌운 전각이다.
원효굴에서 내려와 300여m 돌계단을 지나면 칠보전(七寶殿, 예전엔 칠성각으로 불렸다)이 나온다. 여기엔 바위벽을 다듬은 후에 삼존불을 새긴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이 안치되어 있다. 삼존불을 보호하고 법당 역할을 하도록 칠보전을 바위에 붙여 지었는데 모두 조선 영조시대에 새기고 지었다. 불교가 민간신앙과 결합한 것을 보여준 칠성신이 마애불로 새겨진 것은 그 사례가 없어 문화재로서 가치가 큰 걸작이다. 아담한 전각 안은 기도하는 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칠보전 바로 앞 절벽에는 남·여근석(男女根石)이 있다. 무병장수와 풍요한 삶을 기원하는 오랜 역사의 성기숭배 신앙의 상징물인 듯하다. 전망이 좋은 곳일 뿐만 아니라 자녀를 바라는 분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 유명세를 타서 ‘안양 8경’ 중 하나라고 한다.
안양(安養)은 불교에서 ‘극락’을 의미하는 안양정토(安養淨土)의 준말이다. 괴로움이 없으며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안양의 삼성산 주위에는 천년고찰인 삼막사, 염불사, 안양사. 망해암, 망월암 등 여러 사찰과 암자들이 있다.
삼성산은 해발 481m로 높진 않지만 암릉과 기암괴석이 많은 암산(巖山)으로 경기도 안양시와 서울시 관악구와 금천구 일대에 걸쳐 있는 산이다. 관악산과 같은 줄기 무너미 고개로 연결되어 있어 관악산의 일부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엄연히 관악산 서쪽에 위치한 별개의 산이다. 앞서 언급했듯 삼성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삼막사의 창건 설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숲이 울창하고 샛길이 많아 초보 등산객들은 코스를 잘 살피면서 올라야 한다.
삼성산에는 가톨릭교회의 순교성지도 있다. 1831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세 분의 외국 신부들이 묻혀 있었다. 그래서 일부 천주교 신자들은 삼성산이란 이름이 이 세 순교 성인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안다고 한다.
삼막사 마애석불을 지나 서쪽 방향으로 산을 한 고개 넘으면 염불사(念佛寺)가 있다. 사찰 설명에 의하면 초막을 짓고 수도했던 신라시대 세 고승 중 원효는 삼막사를, 의상은 연주암을 윤필은 염불암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500년 이상 된 보리수나무가 대웅전 앞에서 중심을 잡고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두르고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풍광이 뛰어난 곳이다.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 영산전 등 절의 건물들이 서로의 위계에 따라 각기 다른 높이에 위치해 있어서 각 건물마다 전혀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칠성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아름답다.
삼막사는 20여 년 이상 일요일날 등산객을 위한 국수 나눔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매주 적게는 300여명, 많으면 2000여명이 몰린다고 한다. 탄묵스님이 일요일 국수봉사에 또 방문하라고 당부했다. 삼성산의 기운도 받을 겸 햇볕 좋은 어느 일요일에 다시 삼막사를 찾아야겠다. 그때쯤이면 아픔을 간직한 종무소 임시막사도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고, 유서 깊은 이력이 있고 비경을 간직한 명찰로서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마음을 치유하는 절이 되길 기원한다.
글·사진 = ㈜헤럴드 정용식 상무
정리 =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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