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가사노동자의 일침…“이주노동자에게 값싸게 돌봄 맡기는 건 명백한 차별”
“한국은 노동과 복지와 관련해 더 나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소식을 듣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홍콩의 가사노동자 젝 세르난데(39)는 한국의 ‘이주 가사 노동자 차등 임금 도입’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르난데가 속한 홍콩의 가사 노동자 노조인 홍콩아시아가사노동조합연맹(FADWU)은 한국은행이 지난 5일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에 대한 반박문을 냈다. 보고서에는 돌봄 노동 인력난 해소를 위해 이주 가사·돌봄 노동자를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국내 최저임금보다 낮은 차등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경향신문은 FADWU 활동가이자 18년 동안 홍콩에서 일한 필리핀 출신 가사 노동자 세르난데를 지난 13일 화상으로 만났다.
세르난데는 저출생 문제를 이주 가사 노동자로 해결하겠다는 정책 논의를 두고 “이주·가사 노동자가 저렴하게 쓸 수 있는 인력이라는 인식에서 이런 구상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책 결정자가) 이주 가사 노동자에게 더 낮은 임금을 주고 오래 일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비인간적이며 명백한 차별”이라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2년부터 ‘외국인 가사 도우미’ 제도가 저출생 해결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고, 서울시는 올 상반기 중 최저임금 수준으로 필리핀 가사 노동자를 고용하는 시범사업 시행을 앞두고 있다.
1970년대에 이주 가사 노동자 정책을 도입한 홍콩은 국내에서 선례로 자주 언급된다. 한국은행 보고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으로 외국인을 고용하는 해외 사례에 인권 문제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으나, 해당 국가에서 돌봄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외국인들의 업무 만족도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홍콩에서 일하는 필리핀 가사 도우미 사례를 들었다.
하지만 홍콩 현지의 노동자들이 말하는 현실은 달랐다. 세르난데는 “가정에 입주해 일하는 가사 노동자로서의 하루는 24시간 당직을 서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를 돌보는 경우 청소와 식사 준비 등은 물론이고 교육까지 도맡아야 한다”고 했다.
세르난데는 “우리는 긴 시간 노동하지만, 항상 최저 임금에서 제외되고 있다”라며 임금에서의 차등을 가장 주요한 차별로 꼽았다. 홍콩은 이주 가사 노동자에게 차등적인 최저임금을 적용한다. 이들이 시간당 받는 임금(7.8홍콩달러)은 홍콩의 시간당 법정 최저임금(40홍콩달러)에 비하면 5분의 1수준이다.
가사 노동자의 이동권·노동권을 통제하는 점도 홍콩 이주정책의 문제로 지적된다. 세르난데는 “가사 노동자로 홍콩에 들어온 이상 계약서에 표시된 주소 외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없다”라면서 “가사 노동 외의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도 없고, 만약 실직하게 되면 출신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자리를 잃을까 봐 고용주들의 학대를 그냥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세르난데는 “한국의 이주노동자 문제는 결국 우리의 문제”라며 “이주 노동자가 어느 나라에 가든 존중받으면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한국의 문제에 계속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131426011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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