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민심은 지금 어디로 향하나? [쓴소리 곧은 소리]

오승용 킹핀정책리서치 대표·전 전남대 교수 2024. 3. 1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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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혁신당 돌풍 원인은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져
중도층으로의 확장에 한계…호남 여론의 수도권 북상 효과 크지 않을 것

(시사저널=오승용 킹핀정책리서치 대표·전 전남대 교수)

정치만큼 의도에 반하는 결과가 자주 출현하는 영역은 없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처럼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낙연이 내세운 "윤석열 심판, 야당 교체(이재명 심판)"라는 구호는 "이재명을 지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호남 민심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호남 유권자들은 국무총리, 민주당 대표와 대선후보 경선까지 나섰던 이가 어린 이준석에게 '팽'당하고, 임종석에게 수신 거부당한 후 공천학살된 친낙계 의원들마저 탈당을 포기하는 상황을 모두 지켜봤다. 남은 기간에 호남 유권자들이 광주에 출마한 이낙연을 지지해줄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 이낙연의 처지는 탈당과 신당 창당을 안 하느니만 못한 꼴이다. 호남 민심 첫 번째 갈무리는 이낙연이다.

고슴도치의 딜레마(porcupine dilemma)가 있다.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피하려 서로 껴안을수록 가시에 찔려 서로 상처를 입는 모순 상황을 지칭한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의 처지가 딱 고슴도치 딜레마 상황이다. 여론조사를 보자. 한국갤럽이 3월5~7일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례대표 투표 의향 정당 분포가 국민의미래 37%, 더불어민주연합 25%, 조국당 15%, 개혁신당 5%였다. JTBC가 메타보이스에 의뢰해 3월7~9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미래 32%, 더불어민주연합 21%, 조국당 19%, 개혁신당 4%의 분포를 보였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더불어민주연합과 조국당은 10%포인트 차이였지만 불과 이틀 후 실시한 조사에서는 3%포인트까지 격차가 좁혀졌다. 민주당과 조국당이 제로섬 관계, 즉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내려오는 이해충돌 상황임을 확인할 수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3월14일 광주 동구 충장로에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의 '복수 정치'는 외연 확대에 장애

조국당 돌풍의 원인은 민주당 지지층(진보층)의 이탈이다. 한국갤럽 기준 진보층의 42%는 더불어민주연합, 32%는 조국당을 선택했고, 메타보이스 조사에서는 진보층의 33%가 더불어민주연합, 35%는 조국당을 선택했다. 현시점 기준,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당 슬로건에 호응하는 응답자 비율이 높다. 그렇다면 중도층은 조국당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한국갤럽 기준 중도층 응답자의 13%, 메타보이스 기준 중도층 응답자의 19%가 조국당을 선택함으로써 무시할 수 없는 수치이긴 하지만 민주당의 점유율과 비교하면 한계가 분명하다. 조국당의 출현으로 야권의 지지 외연이 넓어졌고, 민주당 공천에 실망한 유권자의 투표 불참을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조국이 22대 국회 개원 즉시 '한동훈 특검법' 발의와 같은 복수의 정치를 주창하면 극렬 지지층은 환호하겠지만 중도층은 관심을 끊을 수 있어 여전히 고슴도치의 딜레마 상황에 갇혀있다고 봐야 한다.

민주당과 조국당이 고슴도치 딜레마를 뛰어넘어 윈윈 하려면 야권의 파이를 키우는 일, 즉 중도 확장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극단화·양극화된 정치 현실을 고려하면 얼핏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다. 지금처럼 야권 지지층의 지지를 양분하는 구조에서는 조국당을 향한 민주당의 견제가 시작되는 순간, 상황은 바뀔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조국당의 운명을 좌우할 두 가지 요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조국당 돌풍의 공신, 원인 제공자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 다수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구축한 유권자승리연합은 와해됐다. 선거일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이 낮은 평가를 받게 되면 조국당의 성적은 좋게 나타날 것이다. 둘은 반비례 관계다.

두 번째는 호남의 민심이다. 연령별로는 40대, 지역별로는 호남이 조국당 돌풍의 중추다. 그렇다면 왜 호남은 조국(당)에 주목하는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에 익숙한 호남 유권자들에겐 조국의 사법 리스크가 지지를 망설이도록 하는 장애물은 아니다. 이재명의 수많은 혐의에 비하면 조국의 혐의는 매우 단순하다. 조국의 혐의를 정당화해줄 '김건희 디올백 스캔들'이라는 버팀목까지 있다. 또 민주당은 윤석열 탄핵을 입에 담지 못하지만, 조국은 입만 열면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한동훈 특검법 공약까지 내걸었다. 사이다 이재명의 김이 빠진 사이에 더 강력한 사이다 조국이 등장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차피 우리 편'이라는 인식이다. 순한 라면이든 매운 라면이든 라면임은 매한가지이듯 민주당을 지지하나 조국당을 지지하나 달라질 것은 없다. 조국당의 출현은 사실상 승부가 결정 난 호남에서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향할 동기를 부여한다.

'수도권 민심'이 남하할 가능성도 있어

마지막으로, 호남이 조국이라는 매운맛에 반응한 데는 이낙연이라는 선택지가 대안 경쟁에서 탈락한 사정도 있다. 민주당 공천 파동에 실망한 호남 유권자들의 관심이 피해자인 이낙연과 비명계가 아닌 조국으로 향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안이 아닌 분열로 인식된 이낙연의 정치적 선택, 의정활동 부정 평가가 너무 높았던 비명계 현역 정치인들에 대한 강렬한 교체 열망이 배경이다. 조국 돌풍은 호남 민심의 두 번째 갈무리다.

그렇다면 조국당의 성적은 어떨까? 국민의당이 2016년 총선에서 거둔 성공과 2020년 총선에서 받은 실패의 중간지점 어딘가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다. '지민비조' 즉, 지역구 민주당, 비례대표 조국당이라는 프레임은 처음엔 강력하지만, 지역구 후보와 연결되지 않는 비례정당에 뒷심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우린 21대 총선에서 열린민주당 사례를 경험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호남 지역구에 조국당 후보를 공천하는 방법도 있지만, 민주당 분열 프레임에 갇힐 수 있어 이 구상도 포기한 것으로 안다. 이미 이재명 강성 지지자들의 조국 공격이 시작되었다. 민주당의 '몰빵' 구호가 확산하고, 공식 선거운동에서 민주당 지역구 후보와 더불어민주연합의 연계가 강조된 후에도 조국당이 현재의 지지율을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조국당에 대한 호남의 높은 호감도가 북상해 수도권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칠 극적인 가능성을 전망하는 이도 있지만, 정치 양극화가 극심한 현 상황에서 호남의 민심이 중도층의 생각을 대변하기보다는 가장 왼쪽의 진보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호남 여론의 수도권 북상보다는 수도권 여론의 호남 남하 압력이 더 강하다. 무엇보다 호남은 민주당 권리당원 수나 의원들의 영향력에서 민주당의 심장이라는 의전적 레토릭 외에 의제와 여론 형성, 리더십을 주도할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호남 정치 주변화라는 세 번째 주제어를 통해 22대 총선이 씁쓸하게 갈무리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승용 킹핀정책리서치 대표·전 전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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