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훈 컷오프’ 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인내해 얻은 권리 다시 후퇴”

강은 기자 2024. 3. 1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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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이 지난 4일 국회 소통관에서 야권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 지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이 조금씩 바뀐 듯 하면서도 아직 덜 바뀐 것 같아요.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병역 거부’와 ‘병역 기피’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에요.”

1991년 전투경찰로 복무하다가 양심선언을 하고 병역을 거부했던 박석진씨(55)는 15일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긴 운동 과정을 겪으며 양심적 병역 거부가 법적 권리로 인정받았다”면서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연합이 연합정치시민회의(시민사회) 몫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된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을 후보 심사 과정에서 ‘병역 기피’ 사유로 컷오프(공천 배제) 하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로부터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고 수감 생활을 했거나 대체복무를 마친 당사자들은 “인권의 후퇴”라고 지적했다.

박씨는 1991년 4월 명지대 1학년생 강경대씨가 학교 앞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던 사건을 계기로 전경 복무를 중단했다. 노태우 정부가 시위 진압을 ‘해산 위주’에서 ‘검거 위주’로 바꾸면서 현장의 진압 방식도 공격적으로 바뀔 때였다. 수배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1993년 7월부터 7개월가량 수감됐다. 박씨는 “사면 복권된 이후에도 다시 잔여 복무를 채워야 했다”고 했다.

박씨의 임 전 소장 컷오프를 “양심적 병역 거부가 권리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의 단면”이라고 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그간 양심적 병역 거부를 제도화하는 데 일정 역할을 하고도 ‘자기 부정’에 해당하는 결정을 내렸다”면서 “임 전 소장은 (병역을 거부하는) 정당한 사유가 있었고, 수감 생활을 통해 본인의 선택에 대한 대가도 치렀는데 이를 ‘병역 기피’로 규정한 건 굉장히 문제적”이라고 말했다.

임 전 소장은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다. 2004년 군형법의 계간조항(동성 간 성행위 처벌 조항)과 동성애를 정신 질환으로 규정하는 징병검사에 저항하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했다. 이후 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국제앰네스티는 그를 양심수로 선정하고 석방 운동을 벌였다.

비폭력·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던 홍정훈씨(34)도 “안타깝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홍씨는 2016년 말 병역 거부를 선언하고, 2021년 2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받았다. 2018년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 없는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였으나 그는 법원에서 ‘진정한 양심’을 인정받지 못했다.

홍씨는 “헌재 결정으로 대체복무가 도입된 건 큰 진전이었으나 이후 법 제정 과정에서 징벌적 수준의 대체복무가 만들어지는 등 실망스러운 과정이 이어졌다”면서 “임 전 소장의 공천 배제도 이같은 흐름의 연장선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이번을 계기로 다시 과거가 떠오른다”면서 “병역거부 선언 후 대체복무를 하는 다른 이들의 생각도 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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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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