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부터 해달라"…민생토론회 '로비' 열중하는 지자체
대통령, 직접 지역 찾아 현안에 목소리
지자체장, 지역 민원 해소에 유리하다고 판단
대통령에 직접 애로사항 전달하기도
대통령실, 시·군·구서 토론회 개최도 검토
“10가지 넘는 지역 현안을 두루 해주시겠다고 해서 가슴이 먹먹합니다”
지난 14일 김영록 전남지사는 전남 무안군 전남도청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윤 대통령이 전라선 고속철, 국립 의대 설립 등 전남의 숙원 산업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김 지사는 더불어민주당에서 재선을 한 야권 정치인이다. 김 지사는 "임기 중 3차례나 방문해 각별한 애정을 보여줬다"며 토론회 참석자들에게 “큰 박수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尹, 전국 돌며 지역 현안 해결에 목소리
최근 지방자치단체장들 사이에서 정부 민생토론회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여야할 것 없이 서로 자기 지역에 민생토론회를 개최해 달라는 요청이 대통령실에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생토론회 성격이 부처 업무보고에서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뒤바뀌면서다.
정부는 연초부터 그동안 총 20차례의 민생토론회를 개최했다. 서울 3차례, 경기 8차례 개최했고, 지방에선 부산·대구·인천·대전·울산·경남·충남·강원·호남에서 각각 1차례씩 열었다.
연초 만해도 정부는 민생토론회 주제로 의료개혁, 금융, 반도체 산업 등 굵직한 국가 현안을 다루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지난 2월 13일 부산을 시작으로 비수도권에서 민생토론회가 열릴 때에는 지역 현안을 주요 주제로 채택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방문 현장을 중심에 두고 지역 현안을 위주로 토론회를 기획해야 한다는 게 윤 대통령 생각”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역에서 민생토론회를 할 때마다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등 굵직한 개발 계획을 지역에 안겨줬다. 지난 14일 전남 민생토론회에서는 광주~영암(47㎞) 초고속도로(제한속도 무제한) 건설사업, 전라선 익산~여수(180㎞) 고속철도화 작업, 남부권 광역관광 개발 프로젝트 등을 약속했다.
지난 2월 13일 부산 민생토론회에서는 “부산을 물류·금융·첨단산업이 어우러진 글로벌 허브도시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어 금융물류특구와 투자진흥지구 지정, 어린이병원 건립 지원 등을 발표했다. 지난달 21일 울산에서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완화 조치 방안을 내놨다.
대통령이 지역 현안 해소에 직접 목소리를 내다보니 지자체장의 민생토론회 개최 요구도 늘고 있다. 야당 소속 지자체장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소속 오영훈 제주지사는 지난달 27일 윤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민생토론회 제주 개최를 요청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강기정 광주시장은 14일 간부회의에서 "대통령께서 부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국을 투어하고 계시는데 잘한 일”이라며 "민생을 직접 듣고 또 정부의 할 일을 내놓는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광주시는 한 달 전 민생토론회 개최를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방에 가려고 할 때마다 지자체의 개최 요청이 오고 있다”고 전했다.
민원 전달 창구로 활용
민생토론회가 대통령에게 직접 애로사항을 전하는 통로로 쓰이기도 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4일 대구 민생토론회에서 “2, 3급수의 강물은 정수해도 1급수가 되지 않기 때문에 낙동강물을 식수로 하는 영남권에서는 먹는 물 문제가 심각하다"며 안동댐 물을 끌어다 쓰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홍 시장이 물 문제를 말씀하셔서 국가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물 문제를 각 지방 정부와 원활히 소통해 적극 대처하겠다”고 답했다.
최근 광역단체장뿐 아니라 기초단체장도 민생토론회 개최를 대통령실에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통령실은 시·군·구 단위의 기초단체에서 민생토론회를 여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민생토론회는 총선과 관계없이 연말까지 계속 진행될 것”이라며 “선거 뒤에는 시·군·구 지역에서 민생토론회를 열어 해당 지역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선 대통령이 직접 지역을 돌며 각종 개발 정책을 내놓는 탓에 '총선용 행사'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총선과 관련 없는 민생 행보라며 선을 긋고 있다. 장상윤 사회수석은 지난 13일 한 라디오에 나와 "부처업무보고에 민생 목소리를 담아서 하나하나 해결해 주는 쪽으로 좀 바꿔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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