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내 없고 맑은 국물” 미쉐린이 인정한 돼지국밥 함 무~보까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공무원들에게 물었습니다.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부산의 대표 음식은 무엇일까. 많은 부산시민은 돼지국밥과 어묵을 떠올린다. 둘 가운데 비교우위는 돼지국밥일 듯싶다. 돼지국밥 간판을 달고 영업 중인 식당을 비교하면 돼지국밥이 어묵을 훨씬 앞지른다. 부산의 한 지역일간지가 2019년 기준 소상공인진흥공단 상가업소정보와 한국외식업중앙회 부산시지회의 자료를 인용해 ‘부산에서 상호에 돼지국밥이 들어간 음식점은 692곳이고 실제 돼지국밥을 취급하는 식당은 742곳에 이른다’고 보도한 것을 보면 가히 부산은 돼지국밥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돼지국밥은 돼지 뼈와 살코기를 푹 삶아 우려낸 국물에 삶아진 살코기를 썰어 고명(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음식의 맛을 더하기 위하여 음식 위에 얹거나 뿌리는 것)으로 넣고 밥을 말아 먹는 음식이다.
그러면 돼지국밥의 원조는 어디일까. 부산과 경남 밀양이 오랫동안 갑론을박을 하고 있지만 대도시인 부산에 성업 중인 돼지국밥 식당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갈수록 부산에 힘이 실리고 있다. 맛집으로 소문난 돼지국밥 식당은 개인 선호도에 따라 호불호가 갈려서 어느 식당의 돼지국밥이 맛있는지는 절대적인 정의를 내리기 힘들다. 다만 돼지국밥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돼지고기에서 나는 특유의 군내(구린내)와 탁한 국물을 원인으로 꼽는다.
“부산 대표 돼지국밥 식당은 어디일까요?” 친분이 있는 공무원 여럿한테 자주 찾는 돼지국밥을 물었다. 여기저기서 추천을 했고 시식을 하기도 했으나 평소 맛 감식과는 거리가 먼 데다 선택 장애가 있어서 좀체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맛집을 골라서 다닌다는 한 공무원이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돼지국밥 식당이 있다”고 귀띔을 했다. 돼지국밥 식당이 외국인들한테 추천하는 식당에 오르다니? 미쉐린 가이드는 프랑스 자동차 타이어 제조사인 미쉐린이 운전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고자 무료로 배포하는 여행안내서인데 현장실사와 심사를 해서 선정한 현지 식당들을 소개하면서 미식가들 사이에 맛집 지침서로 불린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 2024’ 편에 오른 부산 음식점 44곳 가운데 돼지국밥 식당은 2곳이었다. 어디를 선택할까. 이럴 때는 그곳에 살거나 자주 애용하는 공무원의 말을 듣는 게 좋다. “당연히 우리 동네 합천돼지국밥이죠”. 김성희 부산 남구 용호2동행정복지센터(동사무소) 동장이 자랑했다. 그는 “직원들과 회식이 있을 때면 여기에 들린다. 점심 때면 줄을 서야만 먹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5일 김 동장 등과 함께 부산 남구 백운포체육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합천돼지국밥 식당을 찾았다. 돼지국밥을 먹으러 갔다가 줄이 길어서 되돌아왔다는 공무원들이 여럿 있어서 일부러 오후 4시께 식당을 찾았다.
합천돼지국밥 간판을 단 두 개의 점포 가운데 홀이 더 넓은 두번째 점포에 들어갔다. 사골국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13개의 탁자 가운데 절반에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음식을 기다리거나 돼지국밥을 먹고 있었다. 우리가 앉은 식탁의 대각선 방향 식탁엔 60대로 보이는 남자 4명이 돼지국밥 국물과 수육을 안주 삼아 술을 먹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있었다. 직원 3명은 돼지고기를 썰거나 사골국을 데우고 있었다.
“여기 돼지국밥 4인분 주세요”. 돼지국밥의 필수 밑반찬인 양파와 고추 등이 나오고 10여분 뒤 돼지국밥 네 그릇이 나왔다. 먼저 냄새를 맡았다. 돼지고기에서 나는 특유의 군내는 나지 않았고 구수한 냄새가 후각을 파고들었다. 국물은 돼지국밥에서 흔한 탁한 색깔이 아니었다. 한 숟가락 가득 떠서 국물을 입에 넣었다. 텁텁하지 않았고 맑은 콩나물국처럼 느껴졌다. 다음엔 돼지고기를 입에 넣었다. 다른 돼지국밥 식당과 달리 두께가 제법 있는 돼지고기였으나 부드러웠다. 몇 차례 오물오물하자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갔다. 돼지고기양도 다른 돼지국밥 식당과 달리 많았다. ‘이렇게 퍼주면 남는 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맛이 심심해질 무렵 새우젓을 넣었다. 감칠맛이 났다. 싱싱한 멍게를 넣은 섞박지(여러 가지 재료를 썰어 한데 섞어서 젓국으로 버무려 담는 김치)와 배추김치를 가끔 곁들여 먹으니 질리지 않았다. 그릇이 절반쯤 비워졌을 때 양념으로 버무린 부추를 넣었다. 그릇 바닥이 보일 즈음 국물을 후루룩 모두 마셨다. 여러 가지 부재료가 들어가서 그런지 얼큰했다. 이른 저녁이어서 허기가 지지 않은 데다 평소 국물을 남기는 습관을 지녔는데도 돼지고기와 밥이 가득 담긴 한 그릇을 모두 비우니 스스로 신기했다.
같은 돼지국밥인데도 군내가 나지 않고 맑은 국물을 우려내는 비법은 무엇일까. “신선한 좋은 재료를 쓰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맛이 나지 않습니다”. 천병철(66) 대표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다른 돼지국밥 식당도 좋은 재료를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돼지국밥엔 목살과 앞다리, 수육은 갈빗살을 사용합니다. 도축하고 24시간 안에 사용하기 때문에 냉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또 “돼지고기 뼈는 소고기 뼈의 4분의 1 두께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오래 끓이면 냄새가 나고 탁해진다”라고 말했다. 보통 돼지국밥 식당들이 원가절감을 위해 돼지고기 뼈를 버리지 않고 24시간 동안 끓이는데 그러면 군내가 나고 국물이 탁해지니 일정 시간 끓이고 나면 과감하게 돼지고기 뼈를 버려야 한다는 게 천 대표의 설명이다.
토렴도 비법이다. 토렴은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해서 데우고 불리는 과정인데 보온장치가 없던 과거에 밥을 따뜻하게 먹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다. 그는 “요즘 돼지국밥 식당에서 토렴을 안 하는데요. 국물과 돼지고기를 뚝배기에 담아서 가스 불에 올려서 데우지요. 그렇게 하면 잡내가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합천돼지국밥 식당은 새우젓을 뺀 모든 재료가 국내산이라고 한다. 이문을 남기려면 싼 수입산이 제격이지만 그는 “수입 재료를 사용하면 이익이 더 남지만 앞으로도 국내 재료를 사용한다는 원칙은 지킬 것”이라며 “다만 수입산 새우젓이 맛이 더 좋아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천돼지국밥은 1999년 개업했다. 천 대표 아내가 국밥 식당에서 5년 동안 일한 경험을 살려서 돼지국밥 장사를 하려 하자 시내버스 기사였던 천 사장이 함께 집 근처에 돼지국밥 전문 식당을 차렸다. 그의 고향이 경남 합천이어서 합천돼지국밥이란 간판을 달았다.
부부도 처음엔 고전했다고 한다. 군내가 없고 맑은 국물을 만들기 위해 정수기 물과 산에서 길어온 약수를 사용했으나 실패했다. 수많은 실험 끝에 부부는 지금의 맛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천 대표는 “재료가 좋지 않으면 손님들이 알거든요.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을 안 단골손님들의 입을 통해 소문이 퍼지면서 손님이 계속 늘어났다”고 말했다.
합천돼지국밥이 지난달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되면서 외국인들까지 불러들이고 있다. 이날 저녁에도 예약한 외국인 단체 손님들이 찾았다. 손님들이 밀려들면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는 아들 기정(36)씨가 뛰어들었다. 그는 “10년째 비법을 전수하고 있지만 아직 부모님의 섬세한 손맛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웃었다.
“많은 지인이 성공 비법을 묻더군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재료를 아끼지 말라. 호주머니에 돈을 많이 챙기는 걸 과감하게 버려라”. 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4인분 음식값 4만원을 결제하고 그의 가게 문을 나섰다. 한식이 세계화가 된 것처럼 돼지국밥이 세계인의 입맛에 맞을까? 그의 가게가 한류화에 성공해 2대를 너머 3대까지 이어지기를 바랐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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