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은 정말 ‘화장하는 방’이었다! [말록 홈즈]

2024. 3. 1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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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록 홈즈의 플렉스 에티몰로지 11]

‘플렉스 에티몰로지’란 ‘자랑용(flex) 어원풀이(etymology)’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의 본래 뜻을 찾아, 독자를 ‘지식인싸’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작은 단서들로 큰 사건을 풀어 나가는 셜록 홈즈처럼, 말록 홈즈는 어원 하나하나의 뜻에서 생활 속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 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곤 합니다. 고학력과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문해력 감소’라는 ‘글 읽는 까막눈 현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과 현상의 특성을 가장 핵심적으로 축약한 기초개념입니다. 우리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지식의 본질과 핵심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를 떠난 이들의 지식 인싸력도 레벨업됩니다.

토일렛은 길거리 용변모습을 가려주던 ‘천조각’, 오테아라이는 ‘손 씻는 곳’님

[사진 출처: 말록이네]
1998년 3월, 복학생 신대두의 등굣길은 부산합니다. 입대 휴학 후 3년 만에 돌아온 학교. IMF 시국이라 착잡하지만, 바쁜 꿀벌에겐 슬플 겨를이 없습니다. 술 풀 시간이 있을 뿐입니다. 복학생들 모두 형편이 빠듯해, 순댓국집에서 술국 한 그릇에 소주를 두세 병씩 마셨습니다.

“건강은 젊어서 챙겨. 나이 들면 속병이 고질병 돼.”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의 폭음을 나무라시며 서비스로 뚝배기에 국물을 채워 주셨고, 가끔 머릿고기나 순대도 썰어 주셨습니다. 어떤 날엔 값비싼 맥주도 그리워졌습니다. 그럴 땐 대학 후문 LG25에 들러, OB곰탱이와 농심새우깡패 친구들과 상봉해, 학교 잔디밭으로 향했습니다. 그랬던 다음날엔, 등굣길이 서커스 공중곡예처럼 위태롭습니다. 숙취는 ‘비의도적 장운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화장실 소환특급 3대장으로, ‘찬바람’과 ‘담배연기’, ‘장 진동’을 꼽습니다. 과음한 다음날엔, 배가 뜨시게 입고, 흡연지대를 피해, 살금살금 걷는 게 슬기롭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노크 없이 들이닥칩니다. 꿀술에 젖었던 다음날 아침이었습니다. 해장에 좋은 꿀을 미리 소주에 타마시면 속이 편할 거란 궤변에, 친구 자취방에서 열광하며 들이붓던 벗들이 야속합니다.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매섭습니다. 버스정류장엔 골초 아저씨들이 왜 그리 북적대는지~ 설마하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버스가 가다 서다 덜컹댑니다. 신호가 옵니다. 지옥문이 열리고 저승안내 도우미가 고개를 빼꼼 내밉니다.

위태로울 땐 신속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미드 맥가이버 BGM과 성우 배한성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지. 이 주정뱅이 녀석아!”

쳇! 급히 버스에서 내려, 근심을 내릴 곳을 찾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를 한 번 갈아타던 정류장입니다. 바로 앞 지하철역사 안으로 향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장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레 걷습니다. 08시의 화장실 줄은, 구렁이 몸통처럼 길게, 바깥 통로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털썩~! 절망은 집념을 허뭅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미션 실패 시 벌어질 참담한 현실이 그려집니다.

플랜B로 갑니다. 살짝 속도를 높여 지상으로 올라와, 그럴 듯한 건물을 찾습니다. 하지만 화장실마다 두툼한 자물쇠가 버티고 있습니다. 싸늘하게 나를 외면합니다. 한 곳 한 곳 발걸음을 돌릴 때마다, 상상했던 불안은 현실 속 장운동을 촉진합니다. 이렇게 스물넷 복학생의 미래가, 정화조로 침몰하고 마나 봅니다. 고통과 절망에 벽에 기댄 채, 종말의 순간을 기다립니다.

“학생, 괜찮아요? 어디 아픈 거면 얼른 구급차 불러줄게요.”

짙은 남색 점퍼에 이파리가 자수가 새겨진 모자. 방금 허탕치고 나온 건물의 관리인 아저씨입니다.

“선생님, 제가… 배가, 배가…”

“어이쿠, 얼른 따라와요. 문 열어드릴게!”

눈물이 날 듯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쇼생크탈출이나 삼일 만세운동의 한가운데 선 듯합니다.

“철컹!”

싸늘하기만 했던 철문이, 어서 오라며 등을 토닥입니다.

“학생, 담배 피워요?”

“죄송한데 지금은 없습니다.”

“그럼 얼른 이거 가져가요!”

휴대용 화장지와 날씬한 담배 한 개비를 쥐어주십니다. 급할수록 신중하게, 침착하게, 폭탄을 해체하듯 작업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극복! 그제서야 담배에 불을 붙입니다. 도라지 한 개비에, 세상이 평화롭게 보입니다. 화장실에서 나와 아저씨를 찾습니다. 5분 남짓 기다리다가 수업시간에 쫓겨, 버스정류장으로 향합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에도, 아저씨를 볼 수 없었습니다.

몇 주쯤 지날 무렵 등굣길 버스 안, 건물 앞을 청소하시는 아저씨 모습이 보입니다. 급하게 내려 달려갑니다.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그땐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 그때 그 청년? 또 배 아파요?”

“아뇨, 오늘은 은혜 갚으러 왔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아저씨 손에 도라지 담배 한 갑을 쥐어드리고, 마침 온 버스에 오릅니다. 세상이 참 아름답습니다. 화장실은 매일매일 천국과 지옥을 잇는 통로인가 봅니다.··*

오늘은 화장실을 가리키는 다양한 표현들을 알아보겠습니다. ‘화장실’처럼, 원색적인 뜻을 우회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수사법(修辭法)을 미화법(美化法·beautification)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활용하니, 이번 기회에 한번 둘러보시라고 모아봤습니다.

1. 한국어

- 화장실(化粧室: 변화할 화, 꾸밀 장, 방 실): 단장하는 방

- 해우소(解憂所: 풀 해, 걱정 우, 곳 소): 근심 푸는 곳

2. 중국어

- 화장간(化妆间: 변화할 화, 꾸밀 장, 공간 간): 화장실과 대동소이. 단장하는 공간

- 세수간(洗手间: 씻을 세, 손 수, 공간 간): 손 씻는 공간

3. 일본어

- 오테아라이(お手洗い: 오 ~님, 테 손, 아라이 씻음): ‘손 씻는 곳’님

4. 영어

- restroom: 한숨 돌리는 방

- W. C. (Water Closet): 벽장으로 알고 있는 closet의 뜻은 ‘작고 좁은 방’. 여기서 water는 수세식 변기를 가리킴

- lavatory: 씻는 곳. 라틴어 lavare(to wash)

- toilet: 천조각. 과거 공중화장실이 없던 프랑스 도심에 간이 화장실을 제공하던 서비스 직업인들이 있었음. 이들은 망또같이 긴 옷을 걸치고 변기용 양동이를 들고 다녔는데, 용변 보는 사람을 천으로 둘러막아 행인들로부터 가려줌

*상류층의 ‘dressing room’ 테이블에 천조각이 깔려서 붙은 이름이란 유래설이 더 보편적입니다.

<사진 출처: 도서 ‘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
5. 프랑스어

- toilettes(뚜알레뜨): 영어 토일렛의 뿌리

- sanitaire(싸니떼허): 보건의, 위생의, 급배수(給排水: 물 받고 빼냄)가 되는. 건강을 뜻하는 라틴어 sanus에서 유래

6. 독일어

- die Toilette(디 투알레터): 천조각(영어 toilet 참조)

- das Badezimmer(바데지머): 욕실

7. 스페인어

- cuarto de baño(꽈르또 데 바뇨: 꽈르또 방, 데 ~의, 바뇨 목욕): 목욕실

- cuarto de aseo(꽈르또 데 아세오: 꽈르또 방, 데 ~의, 아세오 단장): 단장하는 방

다양한 영어권 국가에서 화장실을 가리키는 용어들은 지역과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Restroom은 주로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며, 공공 건물, 쇼핑몰, 학교 등 다양한 장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Restroom은 비교적 중성적이고 공손한 표현으로 간주됩니다. W.C. (Water Closet)은 영국, 유럽 일부 지역, 그리고 옛날 건축물에서 주로 사용됩니다. W.C.는 주택, 호텔, 레스토랑 등에서 사용되며, 특히 구식이거나 전통적인 맥락에서 더 자주 등장합니다. Lavatory는 비행기나 기차와 같은 교통 수단 내부, 그리고 상업 건물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용어는 또한 공식적이거나 기술적인 문서에서 사용될 때가 있습니다. Toilet은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널리 사용되며, 가정, 공공 장소, 사업장 등 다양한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용어는 일상적이고 폭넓게 사용되며, 특히 개인 주택 내부에서 가장 흔히 쓰입니다.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2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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