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유재석의 캐릭터쇼, 뭐가 문제일까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4. 3. 1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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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고’에선 펄펄 나는 유재석, ‘아파트404’에선 안 통하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런닝맨>의 트리 아래 있는 프로그램들은 적어도 이제는 반성이 필요하다. 유재석에 의지한 기획과 편성도 재고가 필요하다. <범인은 바로 너>, <미추리>, <식스센스>, <더존>부터 tvN에서 새롭게 시작한 <아파트404>까지 제목이 다르고, 출연자가 다르고, 플랫폼이 달라도 신선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솔직히 이 정도로 '복붙'일 줄은 몰랐다. 유재석은 예능의 최전선에서 많은 고민과 책임감을 갖고 있음을 여러 자리에서 내비쳤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지상파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등락을 경험한 바 있고, 유튜브 <핑계고>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대세를 다시 한 번 만들어냈다. 그런데 <아파트404>에는 그런 경험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런닝맨> 출신 제작진과 유재석이 함께한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설정과 볼거리와 노리는 재미가 일치한다. 유재석의 진행스타일과 익숙한 몇몇의 출연자, 게임, 단서 찾기와 스파이 색출 등 볼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404> 또한 가벼운 추리 예능의 세계관, 야외 예능이지만 세트장이라 봐도 무방한 한정된 공간, 양세찬과 오나라 등 유재석과 캐릭터합을 맞춰온 경력직 보조 공격수의 존재, 상호견제가 가능한 김종국 롤의 차태현, 그리고 예능 출연 자체가 화제가 될 만한 뉴페이스 캐스팅 등등 <런닝맨>의 틀을 그대로 이식했다. 추리 요소와 게임이 섞인 볼거리도 비슷비슷한 톤이다. 유재석은 모든 프로그램에서 모두 같은 역할과 패턴으로 열심히 한다. 이 정도면 사실상 매뉴얼을 따른 것이다.

<런닝맨>의 영향권 아래 있는 프로그램이 엇비슷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캐릭터쇼에 있다. <런닝맨> 스타일의 추리는 <대탈출>이나 <지니어스>처럼 두뇌 대결, 혹은 인간 군상의 리얼리티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준비한 웃음을 공연하기 위한 무대에 가깝다. 프로그램의 목적 또한 추리를 해나가고 팀전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웃음'이지 결과가 아니다. 낡은 아파트에 레트로 무드를 입히고, 과거 실화를 각색한 스토리를 입히는 모든 이유가 코미디의 본령인 '웃음'을 위한 장치일 뿐이다.

문제는 추리 예능에 웃음을 결합한다는 기획이 점점 어색해지는 시대라는 거다. 추리 및 서바이벌 예능은 방법론과 몰입을 이끌어내는 진정성 측면에서 OTT시대를 거치며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들의 지향은 몰입도를 높이는 거다. 그래서 여전히 갈 길이 먼 장르기도 하다. 시청자들이 얼마나 몰입하는지에 따라 반응과 재미가 달라지는, 이른바 마니악한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런닝맨>의 자장 안에 있는 프로그램들은 <아파트404>가 레트로 무드를 공들여 넣은 것처럼 설정의 디테일이나 스케일을 올리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려고 한다. 그리곤 그 위에 유재석을 중심으로 한 <런닝맨>의 캐릭터쇼 구성과 공식을 가져다 얹는다. 쉽게 말해 효율이 떨어지는 마니악한 장르적 접근에 힘과 돈을 쏟고, 정작 힘을 써야 할 캐릭터쇼의 변주에는 투자를 덜 한다. 늘 해온 웃기거나 망가지는 데서 오는 예능감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러니 식상함, 유치함, 부조화가 느껴질 수밖에 없다. 웃기기 위한 행위와 멘트가 난무하는 캐릭터쇼의 방식과 추리 예능의 장르적 설정이 수시로 부딪힌다. 추리 예능에서 출연자가 세계관에 100% 몰입을 못하면 시청자들은 웬만한 영화 상영시간보다 긴 방송시간을 버티기 힘들다.

캐릭터쇼는 다양한 인물이 한 무대 위에서 앙상블을 이루는 리얼버라이어티 시대의 꽁트 무대다. <런닝맨> 모델은 유재석이 생각하는 이 시대 예능의 코미디 공식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런닝맨>의, 더 정확히 말하면 유재석의 캐릭터쇼는 다소 고전적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반응하는 캐릭터쇼는 구심점인 MC를 허브 삼아 관계망을 형성하며 웃음을 만드는 <무한도전>식 대형이 아니라 각자가 주체적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예측 불가능한 캐릭터와 관계망에 있다는 점이다. <뿅뿅 지구오락실>시리즈가 그 예로서, 핵심은 탈 중심화다. <아파트404>가 알아야 할 진짜 단서는 여기에 있다.

추리 예능에 뜻과 길이 있다고 결정했으면 유재석이 중심에 선 대형을 깨고 출연자 전원이 1인분을 하는 플레이어가 되어 추리를 본격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든가, 추리는 그냥 방송을 위한 기믹 정도로만 삼고 <핑계고>처럼 익숙한 캐릭터쇼를 대폭 강조하든가, 지금의 <아프트404>와는 다르게 악센트를 찍었어야 한다.

모범 답안도 존재한다. <런닝맨>식 가볍고 과장된 세계관, 설정과 게임 등등 모든 거추장스러운 장치를 걷어낸 유재석의 코미디가 바로 <핑계고>다. 여기서도 마음껏 키링 캐스팅을 하고 면박식 진행을 대놓고 내세우지만 잘만 통한다. 인위적인 세계관에 몰입하도록 분위기를 굳이 조성하고 시청자들을 설득하고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 <아파트404>는 모든 게 설정이다. 특히 1화에서는 제니의 리액션에 집중한다. 그의 표정과 웃음, 존재로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려고 한다. 하지만 '시성비'란 조어도 나온 마당에 제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라고 할 예능 시청자는 몇 없다. 제니의 예능 적응기를 지켜보면서 시청자들이 반응하겠다고 생각하는 건 <패밀리가 떴다>나 <런닝맨> 1기 전성기 때 통할 이야기다. 임영웅을 캐스팅할 것 아니면, 출연자가 아니라 시청자가 재밌어야 한다. 캐릭터쇼를 살리기 위해 추리 예능과 결합하는 방식, 그리고 그 캐릭터쇼의 작동 방식에 대해 이제는 다른 번지수를 찾아야 할 때다. 신규예능 <아파트404>와 장수예능 <런닝맨>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지 <런닝맨>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관계자들의 자문자답이 절실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유튜브,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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