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틀막' 정부의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 기만이다"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방송,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시민의 발언권을 근본적으로 제한하겠다는 게 그들(윤석열 정부)의 국가 경영 철학인 것 같다. 이를 어떤 사회적 합의나 토론도 없이 폭력적으로 관철하고, 그 과정에서 시민과 언론의 표현의 자유가 말살 수준으로 탄압당하고 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윤석열 정부가 반민주·반노동·반소수자 정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후퇴시키고 있다. 인권·사회권 후퇴와 표현의 자유 후퇴는 연관돼 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
최근 윤석열 정부를 가리켜 ‘입틀막 정부’(입을 틀어막는 정부)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표현의 자유 침해가 광범위하게 자행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통령 앞에서 쓴소리한 국회의원과 학생 등이 입이 틀어막힌 채 사지가 들려 쫓겨나고, 대통령의 말을 비틀어 만든 영상은 접속이 차단되며,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언론사들이 무더기로 압수수색을 받거나 공개된 회의의 취재를 거부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윤석열 정부 들어 심각하게 후퇴했다는 우려가 큰 가운데, 한국 정부가 오는 18~20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최한다는 사실에 이목이 쏠린다. 취임 후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줄곧 강조해왔던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3차 회의 서울 개최 소식을 알리며 “민주주의 증진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세계 민주주의 진영의 결집을 위해 미국 주도로 지난 2021년 시작됐으며, 미국 아닌 국가가 대면 회의를 단독 개최하는 건 한국이 처음이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외치는데, 한국 순위 19계단 아래로 급락
그러나 한국이 민주주의를 위한 회의를 개최할 자격이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스웨덴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 브이뎀)가 최근 공개한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지수(LDI)는 2022년 0.73에서 2023년 0.60으로 하락해 국가별 순위 또한 28위에서 47위로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LDI는 선거민주주의, 삼권 분립, 표현의 자유 등을 종합적으로 산출해 0부터 1까지로 나타낸 것인데, 1에 가까울수록 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것을 의미한다.
보고서는 특히 한국을 독재화(autocratization)가 진행 중인 나라로 꼽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권력 남용을 보였다면서 성 평등에 대한 공격과 전임 정권에 대한 강압적인 조치 등이 LDI 지수의 하락을 이끌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건 ‘기만’이라며 주최국으로서 떳떳하게 나서려면 표현의 자유 침해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언론·시민단체들이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약칭 21조넷)’를 결성하고,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 후퇴의 실상을 알리고 나선 이유다.
헌법 21조에 명시된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수호하는 16개 단체는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서울클럽에서 외신기자 등을 상대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언론 △집회·시위 △문화·예술 △인터넷 △공공정보 접근 등 전 분야에 걸친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를 공유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1987년 개헌으로 6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기사·취재 과정 제재받을까 위축…사실상 검열 제도 부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년간 벌어진 언론자유 침해 논란만 해도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출근길 약식회견 일방 중단과 MBC 기자의 전용기 탑승 배제, 공영방송 사장과 진행자·제작진 교체, 언론사 압수수색,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주도하는 정부 비판 보도에 대한 무더기 중징계 등.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제재나 처벌 대상이 아닌 언론까지 위축되는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윤창현 위원장은 “언론인들은 기사나 보도 과정이 나중에 제재를 받게 될 거란 두려움 속에서 언론 활동을 소극적으로 하게 되고, 권력 감시가 위축되는 심각한 문제가 야기된다”며 “사실상 국가 검열 제도의 부활”이라고 말했다.
집회·시위의 자유 또한 마찬가지다. 헌법 제21조 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실상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의 자의적 해석과 경찰청의 자의적 탄압을 통해 집회·시위가 허가제처럼 운영”되고 있으며,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집회·시위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고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지적했다.
야간 집회 규제가 단적인 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국무회의에서 민주노총의 1박2일 도심 집회를 질타하며 엄정 대처를 주문하자 여당 등은 야간 집회·시위를 방해하는 방향으로 집시법과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고, 경찰은 강제 해산으로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 장애인, 성 소수자 등의 시위를 강경 진압하거나 불허하는 일도 잇따랐다. 명숙 활동가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집시법이 무시되고 집회·시위의 자유가 침해된다”며 “현장에선 경찰 말이 곧 법인 양 집시법이 집행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법이 정한 권한을 넘어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게 이 정부의 특징 중 하나다. 윤창현 위원장은 “법률 개정 없이도 국가 기구를 편법으로 활용하거나 시행령을 멋대로 개정해 자의적인 언론자유 탄압이 아주 일상화됐다”며 “권력을 남용해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방식으로 언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게 윤 정부의 특징이자 지난 정부와의 차별점”이라고 밝혔다.
심화하는 ‘비밀주의’…“민주주의 정상회의 세부 정보도 공개 안해”
윤 정부의 ‘비밀주의’도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자유를 제한한다. 일례로 2022년 여러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대통령실 공무원의 이름·소속부서·직위·직급·소관 세부업무 및 조직도를 정보공개 청구했으나, 정부는 ‘직원의 업무 배치가 국가 안보정보 및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며 비공개했다. 1심 법원이 정보를 공개하도록 판결했으나, 대통령실은 항소했다. 김조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대통령실을 비롯한 주요 권력기관의 정보 은폐와 비공개가 심화되고 있다”며 “이는 권력에 대한 대중의 감시를 방해하고 약화시킬 뿐 아니라 사회적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정보 접근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정확한 행사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18일 각료회의가 열린다는 점 등만 알려졌을 뿐 정확한 시간이나 장소가 공지되지 않아 기자회견 계획을 잡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민주주의를 논의한다는 정상회의에서 회의 정보조차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게 합당한가”라고 물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1월 아이린 칸 UN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방한 요청에도 아직 회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병일 대표는 “칸 특별보고관이 공식적으로 방문 의사를 표명한 건 한국의 인권 기준이 국제 인권 기준에 비춰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방증한다”면서 “한국 정부는 칸 보고관의 방문 요청을 승인해서 한국의 표현의 자유 침해 상황에 대한 국제법적 조사를 받아들이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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