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요린이' '테린이 표현을 쓰는 언론에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어린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은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과 미디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나이가 많은 출연자가 나이가 적은 출연자에게 반말을 하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방송인이나 정치인 등이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반말을 쓰거나 "친구"라고 부르는 모습도, 과거보다는 줄어든 것 같지만 여전히 그리 어색하다거나 무례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기존의 차별적인 문화나 인식을 답습하는 것을 넘어, 언론이 적극적으로 어린이·청소년 혐오를 부채질하기도 한다. 2022년에 일어났던 소위 '민식이법 놀이' 논란이 대표적이다. 여러 언론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또는 유튜브 등을 근거로 '민식이법 놀이라는 게 유행한다더라'라는 보도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도가 어린이들이 자동차 근처에서 뛰어가거나 갑자기 길을 건너는 영상을 소개했을 뿐, 그게 어떤 '놀이'인지, 유행한다면 어디에서 유행 중인 건지, 정말로 강화된 어린이보호구역 법규와 관련성이 있는지 등은 조사하지도 검증하지도 않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어린이들에게 실제로 취재를 한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언론들의 이런 보도는 어린이의 안전을 위해 학교 주변에 지정하는 어린이보호구역 관련 규제가 강화되자, 어린이들이 이를 악용하여 자동차 운전자를 괴롭히고 놀이를 한다는 식의 어린이 혐오 담론에 일조한 것이었다.
언론에는 존중과 평등을 위한 책임이 있다
언론과 미디어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진작부터 제기되었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혐오표현 국민인식조사'에서도 언론이 혐오표현을 조장하는 부정적 역할을 한다는 응답은 49.1%, 혐오표현 대응 정책으로 '언론에서 혐오를 부추길 수 있는 표현이나 보도 자제'를 선택한 응답은 87.2%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언론윤리헌장'에 따르면, 언론은 매체와 분야, 형태에 관계없이 인권을 존중해야 하며,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별에 반대하고, 다양한 사람의 참여를 보장할 책임을 갖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1년 '인권보도 준칙'이 제정되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의 '혐오표현 예방·가이드라인 마련 실태조사'(2018)에 따르면 언론사 기자의 93.2%가 혐오표현 판단 기준이나 처리 절차 관련 규정이 없다거나 잘 모른다고 응답했다. 이후 2019년에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이 선언되기도 했으나, 그 내용에서도 어린 사람을 차별하는 문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라고 했을 때 어린이·청소년의 문제를 잘 떠올리지 못한다. "잼민이"나 "초딩"과 같이 어린이를 얕잡아보고 희화화하는 표현을 사용하거나, "중2병", "사춘기" 같은 말로 어린이·청소년의 행동이나 주장을 평가절하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지만 이를 문제 삼는 경우는 손에 꼽을 만하다. 무언가의 입문자나 초보자를 "~린이"라고 부르는 신조어는 어린이를 서툰 존재로 전제한다는 점 등 때문에 비판받아 왔지만 요즘도 수없이 쓰인다. 어린이·청소년에 대해서는 그만큼 인식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언론과 미디어가 어린이·청소년 인권에 관한 의식과 감수성을 갖추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해 2023년 12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언론과 미디어의 나이 차별적인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 공동의 실천을 제안하는 '나이 위계 없는 언론보도 및 취재 가이드라인'(☞바로가기)을 발표했다. 지음은 2020년부터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 일상 언어 속 나이 차별 개선 캠페인'을 해 왔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하대하지 말 것을 제안하고, 나이 차별적인 언어 문화와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혐오 표현 등에 대해 지적했다. 언론보도 및 취재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캠페인에서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언론과 미디어의 문제를 다루려 한 것이다. 언론과 미디어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공론장이며 공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에, 여기에서부터 어린이·청소년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언론도 사회도 '어른들'만의 것이 아니다
'나이 위계 없는 언론보도 및 취재 가이드라인'은 언론과 미디어의 여러 관행과 현실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있다. 첫 번째 항목인 "나이에 따라 존대, 하대를 다르게 하거나 다른 호칭,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에서부터 "언론은 '어른'을 위한 매체가 아닙니다"라고 지적한다. 언론 매체가 은연중에 어른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린이·청소년이 주인공인 기사의 제목은 유독 "~해 주세요" 등 존댓말 멘트가 많이 쓰이는 것은 공정할까. 어린이·청소년을 향해서는 별도의 경칭 없이 이름을 "○○이", "○○야"같이 부르는 경우도 흔한데(앞서 언급한 '민식이법'도 사실 그런 사례다), 비청소년에게 그랬다면 무례하고 불편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단순한 표현을 넘어 전반적 보도 방식의 문제들도 있다. 어린이·청소년이 직접 관련된 사안에서도 언론들은 어린이·청소년들의 의견에 주목하지 않거나 애초에 취재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유의미하게 경청받고 알려져야 할 의견으로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학교급식 파업 때 초등학생을 취재하며 "밥 대신 빵 먹으니까 어때요?"라고 물은 보도, 기후 위기에 관해 정부와 간담회를 가진 청소년 활동가에게 "누가 가장 친절했나요?"라고 물은 기자 등 단편적이고 즉각적인 답만 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2023년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공격이 심각했던 시기에도, 어린이·청소년들이 경험하는 학생인권 현실에 대해 취재를 한 언론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극히 일부만이 팩트체크나 학생 입장에서의 상황을 다루었다. 물론 가장 근본적으로는 어린이·청소년에 관한 언론의 관심과 보도 자체가 적다는 문제가 있겠다.
취재 과정에서는 어린이·청소년을 특정한 이미지로만 재현하려는 태도 등이 문제로 지목됐다. '나이에 어울리게 청소년다운 말'을 해 달라고 요구한다든지, 교복을 입고 나와 달라든지, 발랄한 모습을 보여 달라는 등의 요구를 하는 사례들이다. 인터뷰에서 청소년을 모두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간주하거나, '선생님/부모님이 허락해 줬느냐' 등 학교 및 부모에 종속된 존재처럼 대하는 질문도 문제 사례로 열거되었다.
더 나아가선, 언론이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그대로 실어 주거나 전파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성이 필요하다. 어린이·청소년이 정치적 의견을 말하거나 활동에 나서면 이를 두고서 '선동/조종당했다'는 투의 기사가 나기 일쑤이다. 설령 정치인이나 단체 등의 주장을 전하는 기사이더라도, 특정한 근거 없이 어린이·청소년의 주체성을 의심하고 폄훼하는 이런 주장을 아무런 반론이나 비판적 태도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린이·청소년들을 가리켜 '요즘 애들은 이렇다' 하는 식으로 집단화·대상화하는 것도 차별과 편견을 재생산하는 대표적 유형이다.
언론과 미디어는 차별이 일어나는 사회적 구조를 밝히면서 문제를 사회 공통의 의제로 공론화시킬 책임이 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성찰하지 않는다면 미디어가 기존 사회의 차별적인 인식과 문화 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재생산할 위험이 크다. '나이 위계 없는 언론보도 및 취재 가이드라인'은 어린이·청소년을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다르게 대하지 말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취재와 보도에서의 양적·질적인 문제 모두를 짚어 낸다. 경험과 사례에 바탕을 둔 가이드라인으로서 현재의 문제점을 확인하게 해 주는 동시에 언론사 조직 및 개인이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말 쓰지 않기'를 넘어서
아무래도 여기서 제기한 언론의 문제점들 중 가장 와닿는 것은 직접적인 비하·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사례들이기 쉽다. 가장 명확하고 직접적인 문제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심은 특정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청소년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태도와 방식은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지위를 규정한다. 특정한 말을 쓰지 말자고 하더라도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인식과 태도, 나이 차별적인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 말은 쉽게 다른 말로 바뀌게 될 뿐이다. "초딩"이 "급식충"이나 "잼민이", "금쪽이" 등으로 변화해 왔듯이.
따라서 '나이 위계 없는 언론보도 및 취재 가이드라인'이 전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단순히 '반말을 쓰지 마라'나 '민식이법', '~린이' 같은 말을 근절하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실천은 어린이·청소년을 대하고 비추는 언론과 미디어의 모습에 어떤 차별과 편견이 담겨 있는지를 점검하고 이를 바꿔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어린이·청소년이 이 사회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다. 어린이·청소년이 배제되지 않으며, 차별·보호의 대상이 아닌 참여의 주체가 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한다는 것이 이 가이드라인에 담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그동안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언론과 미디어의 보도와 재현 방식은 페미니즘 등 다양한 운동 영역으로부터 문제제기를 받아왔다. 그리고 여성이나 인종에 관해서는 상당 부분 변화하기도 했고, 그 변화는 수용자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나이 위계 없는 언론보도 및 취재 가이드라인'이 나이에 관계 없이 평등한 언론의 원칙과 방향을 제시했다면, 언론과 미디어는 이를 참고하여 새로운 사회적 변화와 실천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선, 언론 종사자 교육 프로그램을 개선하면서 많은 이들이 어린 사람을 하대하지 않는 취재 및 보도 방식을 배우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언론 종사자 이외에도 사회 전반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언론과 미디어에서부터 어린 사람을 공정하고 평등하게 대우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어린이·청소년이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키울 수 있게 함으로써 변화는 연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빈둥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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